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泛溪(범계) - 매요신(梅堯臣)

Bawoo 2017. 7. 2. 22:19


泛溪(범계)-개울에 배 띄워

                                                         - 매요신(梅堯臣)

 

中流淸且平(중류청차평) : 강 가운데 물결은 맑고 잔잔하여

捨楫任舟行(사즙임주행) : 노를 놓고 배에 맡겨 간다

漸近鷺猶立(점근로유립) : 배가 가까워져도 백로는 그대로 서있고

已遙村覺橫(이요촌각횡) : 멀어진 마을은 비스듬이 빗겨있다

何妨綠樽滿(하방녹준만) : 어찌 꺼리랴 술항아리에 녹음 가득함을

不畏晩風生(불외만풍생) : 저녁 바람 불어도 두렵지 않도다

屈賈江潭上(굴고강담상) : 굴원과 가도는 강가에서도

愁多未適情(수다미적정) : 근심 많아 마음 편치 못했다오.

매요신(梅堯臣, 1002년~1060년)은 중국 북송의 시인이다. 자는 성유(聖兪), 호는 완릉(宛陵). 구양수와

함께 송시의 개척자이다. 관리로서는 불우하여, 오랫동안 지방관리를 계속하다가 49세 때 겨우 진사에

급제, 구양수의 소개로 도관원외랑道官員外郞)이라는 중앙의 관직을 얻었다. 송(宋) 초에는 이상은과 유사한 ‘서곤체(西崑體)’의 화려한 시가 유명했으나, 거기에 대해 그의 시는 평담(平淡)을 신조로 하여 사상적 깊이를 가진 작품을 탄생시켰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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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성유(聖兪). 그의 시는 '고문' 운동과 관련된 새로운 시 형식을 출발시키는 데 기여했다.

매요신은 송의 다른 관료출신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진출했지만 정치 경력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관직에 있으면서 관리이자 고문운동의 대표적 옹호자였던 구양수(歐陽修:1007~72)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들 고문운동 주창자들은 성리학적 이상의 영향을 크게 받아 문학이 현시대의 생활을 반영·비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매요신은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시의 초점으로 삼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소재를 찾았다.

당시에는 사(詞) 형식이 유행했는데, 이것은 애정을 노래한 민요에서 유래되어 정교한 표현과 과장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매요신은 이를 거부하고 과거의 '율시'(律詩)로 돌아가, 보다 평이하고 산문적인 형식을 완성하여 그의 주제의식과 소재에 보다 적합한 '자유로운' 목소리를 완성했다.[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