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田園卽事 -鄭斗卿

Bawoo 2018. 1. 30. 22:42

田園卽事

                                                                                             鄭斗卿

 

萬樹煙花一巷微 (만수연화일항미) 아름다운 봄경치에 둘러쌓인 마을 하나 어렴풋이 보이니

百年天地此幽棲 (백년천지차유서) 세상살이 백년 은거할 곳 바로 여기라

每驚樵客來尋洞 (매경초객래심동) 나무꾼 찾아들 때마다 놀라긴 하지만

却喜林僧訪過溪 (각희림승방과계) 시냇물 건너 오는 산승 보면 반갑다.

庭畔開樽春鳥語 (정반개준춘조어) 뜨락에 있는 술독 열자 봄새들 지절대고

窓間隱机午鷄啼 (창간은궤오계제) 창 사이에 기대 앉으니 낮닭 우는 소리 들린다

比來懶惰詩兼廢 (비래나타시겸폐) 요사이 게을러져 시 짓지 않았는데

得句今朝覓紙題 (득구금조멱지제) 이 아침 한 구절 떠올라 종이 찾아 적어 본다



卽事1. 2. 임하다 3. 맡다/煙花①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 ② 꽃불 ③ 불꽃 ④ 옛날, 기생

① 거리 ② 궁궐 안의 통로나 복도 ③ 마을 ④ 문 밖/ 微:어렴풋하다. 희미함.






정두경
(군평(君平), 동명(東溟))

1597(선조 30)∼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 내용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회(晦)이며, 어머니는 광주정씨(光州鄭氏)로 사헌부장령 이주(以周)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이다.

할아버지 지승(之升)과 증조부 담(䃫), 종증조부 염(Ꜿ)·작(碏)은 모두 시인으로 이름이 났다. 14세 때 별시 초선(初選)에 합격하여 문명을 떨쳤다. 1626년(인조 4) 문학으로 이름있는 중국의 사신이 왔을 때 그는 벼슬없는 선비로서 부름을 받아 김류(金瑬) 등과 함께 중국 사신을 접대하였다.

1629년 별시문과에 장원, 부수찬·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북방의 호족(胡族)인 청나라가 강성하여지자 「완급론(緩急論)」을 지어 무비(武備)의 급함을 강조하였다. 병자호란 때 척화·강화의 양론이 분분하자, 그는 10조(條)의 소를 올려 대책을 강조하고, 또 「어적10난(禦敵十難)」이라는 글을 지어 올렸으나 조정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그 뒤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고 「법편(法篇)」·「징편(懲篇)」 등 2편의 풍시(諷詩)를 지었다. 효종이 즉위하자 임금이 하여야 할 절실한 도리를 27편의 풍시로 지어올려 효종으로부터 호피(虎皮)를 하사받았다.

그 뒤 1656년(효종 7)에 「칠조소(七條疏)」와 「원이설(原理說)」을 지어 올렸다. 1669년(현종 10) 홍문관제학을 거쳐 예조참판·공조참판 겸 승문원제조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노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조판서·대제학을 추증하였다. 저서로는 『동명집』 26권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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