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대(明代) 화가 구영(仇英)의 <위성곡의(渭城曲意)> 선면(扇面) (設色金箋, 17×51cm)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위성조우읍경진 객사청청유색신
권군갱진일배주 서출양관무고인)
위성의 아침에 비 내려 먼지 적시니
객사의 푸른 버들 더욱 산뜻하구려
그대에게 권하노니 한잔 더 들게나
서쪽으로 양관을 떠나면 벗이 없나니
☞ 왕유(王維/唐),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일명 <위성곡(渭城曲)> 또는 <양관곡(陽關曲)>
◇
명대(明代) 화가 최자충(崔子忠)의 <西出陽關>
- 남송(南宋)의 위경지(魏慶之)가 편찬한 시화집(詩話集)인 ≪시인옥설(詩人玉屑)≫에는 <증별(贈別)>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북송(北宋)의 곽무천(郭茂倩)이 펴낸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위성곡(渭城曲)>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 명나라 때의 시인 호응린(胡應麟)은 왕유(王維)의 이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성당(盛唐) 절구의 압권(壓卷)'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 위성(渭城): 진시황이 도읍으로 삼았던 함양(咸陽)을 말한다. 함양은 옛날 섬서(陝西)성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당나라 때 위성(渭城)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변방의 양관(陽關)으로 떠나는 사람을 위하여 이곳에서 송별연을 베풀고 이별하였다 한다.
- 당(唐)나라 때 수도 장안(長安)을 끼고 흐른 위수(渭水)에는 세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동쪽, 중앙, 서쪽의 소위 삼위교(三渭橋)다. 동쪽에는 맹호연(孟浩然)이 매화를 찾아 설산(雪山)으로 들어갈 때 건넜다는 유명한 파교(灞橋)가 있었다. 파교는 장안성 동쪽에 있었다 하여 달리 '동교(東橋)라 불렀다.
서쪽, 정확히 서북쪽 교외에는 서위교(西渭橋)가 있었다. 흔히 함양교(咸陽橋)라 부르는 이 다리 근처에 바로 왕유(王維)가 원이(元二)를 전송한 객사(客舍)가 있었다.
◇ 명대(明代) 화가 왕성(王聲)의 <西出陽關> 扇面 (設色金箋, 18×53cm)
- 陽關: 고대 중국 서쪽 요지인 감숙(甘肅)성 돈황(敦煌)의 옥문관(玉門關) 남쪽에 있어 陽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대 동양에서는 산의 남쪽, 강의 북쪽 기슭을 양(陽)이라 했다. 볕이 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산의 북쪽, 강의 남쪽을 음(陰)이라 했다. 햇빛이 곧장 비치지 못하니 그늘진 곳이기 때문이다.
국경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된 관문(關門)도 산과 같은 범주에 포함시켰기에 옥문관 남쪽의 관문은 陽關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념이 실제로 지명(地名)에 반영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심양(沈陽)·분양(汾陽)·형양(滎陽)·회양(淮陽)·양양(襄陽) 등이 좋은 예다.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漢陽)도 마찬가지이다. 한강(漢江)의 북쪽 기슭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강남은 漢陽이 아니라 한음(漢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청말근대 화가 왕동유(王同愈)의 <양관적설(陽關積雪)> (設色絹本, 108×35cm)
◇ 근현대 중국화가 하천건(賀天健)의 <양관삼첩 효풍잔월(陽關三疊 曉風殘月)> 扇面 (1943年作, 設色紙本, 14×43cm)
◇ 근현대 중국화가 주매촌(朱梅邨)의 <현상양관성(弦上陽關城)> (1983年作, 設色絹本, 97×27cm)
◇ 현대 중국 서법가 유병삼(劉炳森)의 예서(隸書) <왕유시(王維詩)> 경심(鏡心) (1984年作, 水墨紙本, 176×9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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