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行
―聖齋 李匡呂
湖村收宿雨 (호촌수숙우) 호수가 마을에 지난 밤부터 내리던 비 그치니
波色澹淸晨 (파색담청신) 물결 담박하고 맑은 새벽이로구나
岸岸蓬底濕 (안안봉저습) 호수가 언덕 숲은 비에 젖어 있고
沙上不見人 (사상불견인) 모래벌 위에는 보이는 이 없도다
宿雨:여러 날 계속하여 내리는 비/ 지난
澹:물이
蓬 쑥 봉 ① 쑥 ② 초목이 우거진 모양 ③ 굽다 ④ 풀숲
이광려(李匡呂, 1720년 ~ 1783년)는 조선 영조 때의 학자이다. 자는 성재(聖載), 호는 월암(月巖) 혹은 칠탄(七灘), 본관은 전주다. 효민공 석문(石門) 이경직(李景稷)의 현손이며 황해감사 서간(西澗) 이진수(李眞洙)의 차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는 인품도 훌륭했고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또 문장이 뛰어나 따르는 제자가 많았고, 사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광려의 문장에 대해서 이만수(李晩秀)는 “국조(國朝) 300년의 문교를 받아 이광려 선생을 낳았다.”고 하며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은 그의 문인(門人)에게 그대로 전해져 신대우(申大羽)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한편, 그는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하던 당시의 시대 흐름 속에서 일찍부터 책을 통하여 고구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습득했다. 1763년(영조 39)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趙曮)이 대마도로부터 고구마를 들여오자 곧 재배에 착수하였으나 기술이 부족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시도는 당시 동래부사(東萊府使)였던 강필리(姜必履)에게 자극을 주어 고구마재배에 성공을 거두게 한 밑바탕이 됐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 길이 없으나 같은 시대에 살았던 문인들의 평가를 통해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이참봉집(李參奉集)』이 있다.
참고문헌
- 『이계전서(耳溪全書)』
- 『이삼봉집(李參奉集)』
- 『청비녹(淸脾錄)』
- 『낙하생고(洛下生藁)』
- 『항해병함(沆瀣丙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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