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몸 수줍은 듯 고개 숙여(弱質羞低首-약질수저수)
추파를 던져도 대답이 없네(秋波不肯回-추파불긍회)
마음은 부질없이 설레건만(空聞波濤曲-공문파도곡)
운우의 정은 풀지 못했소(未夢雲雨臺-미몽운우대)
너는 자라면 이름을 떨칠 것이나(爾長名應擅-이장명응천)
나는 이미 늙음의 길에 들어섰네(吾衰閤己開-오쇠합기개)
미인에게는 임자가 따로 없으니(國香無定主-국향무정주)
영락없이 가엾겠구나(零落可憐哉-영락가련재)
2.
타고난 자태 선녀인 양 침착하고 고상하여
(天姿綽約一仙娥-천자작약일선아)
서로 알기 십년에 마음 움직임도 많았네
(十載相知意態多-십재상지의태다)
내 본시 목석같은 사내는 아니나
(不是吳兒腸木石-부시오아장목석)
병으로 쇠약해 화려한 꾸밈을 사양했을 뿐이네
(只緣衰病謝芬華-지연쇠병사분화)
*1번 시는 율곡선생이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한 1574년(39세)에 관기인 유지(당시 16세)에게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해 써준 시이고,
2번 시는 8년 뒤(유지 24세)인 1582년 (47세)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해주에 갔을 때 유지를 다시 만나 써 준 것이라고 합니다.
글의 내용으로 봐서는 육체관계는 없이 그냥 예뻐만 해 준 것으로 보여 선생의 고결한 인품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데 선생이 병약했던 것과 혹 관계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선생은 2년뒤인 49세에 세상을 뜨셨고 시의 내용에도 자신의 병약함을 나타내신 것으로 보아 그리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이는 선생의 고결하신 인품을 욕되게 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고 그냥 농담삼아 써봤습니다.^^
선생이 별세하신 후 기생 유지는 구월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고 하며 '이화여대 박물관'에는 선생께서 유지에게 보낸 편지가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출처:한국 명문가의 문화유적'이란 책 율곡 이이편에서 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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