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Symphony No.97 in C major
하이든 교향곡 97번
Franz Joseph Haydn
1732-1809
Leonard Bernstein,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1975.04
하이든의 교향곡 97번은 하이든의 첫 번째 런던 체류 기간 중 마지막 작품이다. 하이든은 1791년에 영국에 도착해 바로 그 해에 교향곡 96번과 95번을 작곡한 후 이듬해 3월까지 93번과 98번, 94번을 연속으로 내놓았다. 계속해서 창작력을 소모한 하이든은 약속된 여섯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공연기획자 잘로몬은 그 해 4월 음악회에서 하이든의 새 교향곡을 선보일 수 있기를 원했으나 그때까지 하이든의 새 교향곡이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미 선보였던 교향곡 98번과 94번, 93번을 4월 음악회에서 다시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이든은 작품 독촉과 작곡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4월 한 달 동안 새 교향곡 작곡에 매달렸다. 당시 하이든이 교제하고 있던 레베카 슈뢰더 부인이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의 하이든이 새 교향곡 작곡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고심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이 어젯밤 무려 5시간이나 서재에서 작업을 하느라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리한 일로 건강을 해칠까 두렵군요. 그동안 그토록 훌륭하고 매혹적인 작품들을 많이 써놓았는데 왜 이렇게 또 자신을 괴롭히나요? 저는 당신 건강이 너무나 걱정됩니다. 나의 애정을 당신께 보냅니다. 서재에서 한 번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마세요.”
힘겨운 작곡 과정을 거쳐 마침내 교향곡 97번을 완성한 하이든은 1792년 5월 3일, 마침내 런던의 하노버 스퀘어 룸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직접 이끌며 그의 새 교향곡을 선보였다. 당시 음악회에 대한 상세한 리뷰는 남아 있지 않으나 그 연주회 이후 이 교향곡은 잘로몬의 연주회에서 10회나 반복 연주되어 하이든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연주회 가운데 6월 6일의 음악회에선 교향곡 97번의 몇몇 악장들이 반복 연주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아마도 이 교향곡은 영국 청중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특수한 바이올린 주법이 만들어낸 놀라운 음향
그러나 오늘날 하이든의 교향곡 97번은 ‘런던 교향곡’ 12곡 가운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 중 하나다. 아마도 이 교향곡에는 다른 교향곡들처럼 ‘시계’나 ‘놀람’ 등의 재미난 부제가 붙어 있지 않은데다 호른의 음역이 다른 교향곡보다 낮은 편이어서 음향의 화려함이 덜한 까닭도 있는 것 같다. 이 교향곡은 하이든이 좋아했던 C장조 조성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편성되어 있어 팡파르 풍의 축제적인 음악이지만 호른의 음역이 낮아 화사함이 덜하다. ▶‘술 폰티첼로’라는 특이한 바이올린 주법이 2악장에 등장한다.
교향곡 90번을 비롯한 하이든의 다른 ‘C장조 교향곡’에선 호른의 변조관을 이용해 고음의 호른 음색이 돋보이나 교향곡 97번에선 그와 같은 변조관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하이든은 매우 독특한 주법을 사용해 이 교향곡만의 특별한 음색을 만들어냈으나 그마저도 악보 편집자들에 의한 악보 왜곡으로 인해 한동안 이 작품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
사실 하이든의 교향곡 97번은 시대를 앞선 파격적인 연주법과 독특한 음향 감각이 나타난 특별한 작품이다. 이 교향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주법은 2악장의 세 번째 변주에서 현악기들이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라는 독특한 주법이다. 이것은 현악기의 줄을 지탱하고 있는 브리지 쪽 가까이서 활을 그어 연주하는 연주법으로 매우 카랑카랑한 금속성의 음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술 폰티첼로’는 현대 바이올린 독주곡에서는 간혹 사용될 뿐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음악작품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특수 주법이다. 이런 주법이 이미 하이든의 18세기 교향곡에 사용됐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이든은 고전적인 변주 형식의 2악장에서 일부러 현악기의 날카롭고 거친 음색을 선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특수 주법은 교향곡 97번의 악보가 출판되는 과정에서 편집자에 의해 삭제되어 1960년대까지도 2악장의 ‘술 폰티첼로’ 주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일반 주법으로 연주되었다. 또한 3악장 ‘트리오’ 부분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솔로 역시 악장의 독주가 아닌 제1바이올린 전체 합주로 연주되는 것으로 왜곡되어 3악장에서 가장 매혹적인 바이올린 솔로가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오늘날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하이든의 원래 의도대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이 교향곡의 개성적인 음향세계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Sergio Alapont/RAI NSO - Haydn, Symphony No.97
Sergio Alapont, conductor
Orchestra Sinfonica Nazionale della RAI
Auditorium Rai, Turin
2011.05
베토벤 교향곡 1번에 영향을 준 작품
1악장: 아다지오 비바체
1악장에선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형식미가 돋보인다. 1악장의 서주는 매우 평범하게 시작되는 듯하지만, 둘째 마디에서 갑자기 작은 소리로 예기치 못한 감7화음이 나타나 가슴 뭉클한 감정의 격변을 일으킨다. 어떤 이들은 이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화음이야말로 하이든 특유의 유머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이든은 단지 유머 구사에 그치지 않고 이 특별한 서주의 음악을 빠른 주부와 관련시켜 매우 정교하게 이 악장을 구성해간다. 마치 소설에서의 ‘복선’ 기법처럼 서주의 첫 부분에 놀라운 음악적 사건이 미리 암시된 후 빠른 템포의 주요부 곳곳에 다시 서주의 사건이 재등장하며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2악장: 아다지오 마 논 토로포
2악장은 하이든의 느린악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변주 형식을 취하고 있어 평범한 듯 보이지만, 현악기의 ‘술 폰티첼로’ 주법이 사용된데다 고전적인 악절 구조에서 벗어난 변칙적인 면이 나타나고 있어 작곡가 하이든의 대담성을 느낄 수 있다.
3악장: 미뉴에트. 알레그레토
3악장은 전통적인 미뉴에트 춤곡으로 되어있으나 미뉴에트 악장에서는 드문 변주 스타일의 전개와 매혹적인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4악장: 피날레. 프레스토 아사이
빠른 4악장에선 과감한 전조가 나타나는데다 특히 확장된 종결부에 연극적인 제스처가 나타나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다. 후에 베토벤은 하이든의 교향곡 97번에 큰 영향을 받아 그의 교향곡 1번 1악장의 주제를 하이든 풍으로 작곡하기도 했다.
추천음반
하이든 교향곡 97번의 추천음반으로는 귄터 헤르비히와 드레스덴 필하모니(CCC), 에두아르 반 베이눔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Naxos),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Warnaer Classics),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 궁 음악가들(naive)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