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소설 소나기의 작가 고 황순원 선생의 문학관이 있는 소나기 마을에 다녀오다.

Bawoo 2013. 10. 30. 00:21

1.

오늘은 대학 졸업반인 늦동이 외아들의 S사 입사시험이 있는 날.

이곳 저곳 입사 지원서를 내며 취업을 위해 애쓰는 아들의 모습에서

매스컴에 오르 내리는 청년 취업난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데,

 

2.

모처럼 찿아온 시험 기회가 애비인 나나 집사람이나 반갑긴 하지만

시험장이 집에서 너무 먼 강동구에 있어 결국은 고등학교 때 등하교를

책임져주던 시절로 돌아가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취업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들의 마음 고생에 비하면 시험장에 데려다 주는 노고야 뭐 별것도 아닌 일이다 싶은게 나를 비롯한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생각하면서...

 

3.

 시험장을 향해 집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경인고속도로,올림픽 대로를 거쳐 가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길은 막힘이 없이 잘 뚫려 있어

시험장인 모 고교가 있는 곳에 다다르니 시험 예정 시간인 8시 30분 보다

20여분 일찍 도착,부모의 책무를 일단 마치고 아들 몫인 입사시험을 치르는 일은 

잘치르기만을 바라고 우리 부부는 시험장을 떠났다.

 

4.

그리곤 기왕  차 가지고 나왔으니 바람이라도 쏘이고 가자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맞아

일단 양평 쪽으로 차를 몰았다.

길 안내는 네비 아가씨한테 맡기고서...

 

5.

그런데 방향만 양평 쪽으로 잡았을 뿐 딱히 어디로 갈 것인지 선뜻 떠오르는 곳을 못 정하고 있는데 불현듯

양평 못미쳐 고 황순원 선생의 문학관이 있는 소나기 마을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 있다는 것이

이정표와 책을 통해서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6.

그래서 두분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좀 더 먼 소나기 마을부터 먼저 들르는것으로 계획을 잡고서리...

 

7.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 누구를 제일 좋아하냐는 어린 아이 같은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한다면 난 단연코 황순원 선생이다.

20대 젊은 시절 나 보다 한세대  이전의 작가들 작품을 거의 빠짐없이 읽어 보았고 감동도 많이 받긴 했지만 작가 자신을  호감을 갖고 좋아해 본 적은 거의 없다.

단편 '모범 경작생'을 쓰신 고 박영준 선생이나 '오발탄'을 쓰신  고 이범선 선생한테는 직접 강의도 들었었으나 좋하한다는 마음보단 어렵고 먼 존재로만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황순원 선생을 좋아하게 된데는 아무래도 성장기 시절에 접한 선생의 '소나기'란 소설에서 받은 감동이 나이를 들어도 기억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때문이 아닌가 싶다.거기에다 평생 시,소설외에는 잡문 한줄 안쓰셨고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보직 한번 맡지 않고 평교수로 지내면서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에만 힘쓰셨다는 선생의 고고스런 삶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동경심 같은게 작용한 탓이 아닐까 싶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기념관이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수도없이 지나치면서도 이제서야 가 볼 생각을 그것도 갑작스레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내 여행 습관 탓이다.

 

9.

젊은 시절을 여행이라는 것은 전혀 해본 적 없이 지낸 내가  국내여행이랍시고 시작한 것은  내차를 갖게 된 40초반의 일이다.

그때 여행 목표는 휴가를 이용하여 전국을 차로 일주하는 것이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전 지도를 보면서 서해안,남해안,동해안으로 일주를 했었다.해뜨면 운전하고 해지면 잠자는 방식으로.

 

10.

이러한 여행방식은 집사람이 몸이 안좋아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던 몇년을 제와하곤 재작년인가 차가 큰 고장을 일으키기 전 까지 거의 매년 여름방학 때만 되면 반복되었는데 덕분에 남쪽 거의 전 지역을 휘젓고 다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여행 방식은 달리는 차안으로 들어오는 경치를  주마간산식으로  보고 다니는 것이어서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유명 유적지라든가 관광지를 그냥 지나치게 되는 문제점이 있었다.그러나 워낙 안가본 고장이 많은 터라 우선은 주마간산식으로라도 전국을 휘젓고 다니고 싶었었고 아직도 못가본 지역에 대하여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11.

그러나 무심히 흐르는  세월은 이러한 여행 방식을 한없이 가능하게 놔두질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장시간 운전하는 자체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새차로 바꾼 금년에도 최소한의 여행만으로 만족하고 말아야 할 정도로 여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12.

황순원 선생의 문학관이나 다산 선생 유적지를 갈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이러한 세월의 힘 앞에 굴복한 내 시원치 않은 체력 탓이다.

집사람이 퇴직하는 몇년뒤엔 이제까지 해왔던 주마간산식의 여행이 아니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 유적지들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순서대로 찿아 다니던 신정일님의 '신택리지'에 나온 고장을 찿아 다니던 결행 하리라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어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자발적인 여행이 아니라 아들의 취업시험 뒷바라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움직인 탓에 예정에 없이 하게된  여행인지라 여행 거리를 최소한으로 잡게 되었고 그 결과 서울 강동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교외 지역 내에 가 볼만한 곳을 머리 속에 떠올리다 보니 두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각이 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두분 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분들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찿아가 볼 수 있었고...

 

 

 

13.

길을 잘 모를 때는 네비 아가씨가 이리도 고마울 수 없다.

잘 아는 길을 갈 때는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여 실소를 머금케도 하지만 모르는 길이야 최선의 도우미가 아닌가 싶다.네비 아가씨의 안내를 들으며 마음 편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아뿔사 소나기 마을로 들어 가는 진입로를 노쳐 버렸다.'

'별 수 있나.되돌아 나오는 수 밖에'.네비 아가씨는  얼마 더 가서 유턴하라고 상냥하게 알려 준다.

 

14. 

양평과 서울을 오가는 큰 길은 수도 없이 다녀 본 길이다.그러나 이 큰 길을 벗어나 남쪽이던 북쪽이던 방향을 잡고 안쪽 지역으로 가본 적은 전혀 없다.특히 양평과 서울 사이 지역은...멀리 설악산이나 홍천,인제쪽을 향해 가기  위해 경유하기만 바빴지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15.

내 기억으론 소나기 마을을 가기 위해 큰 길을 벗어난 이번이 처음이지  싶은데 양평 쪽에서 서울로 가는 큰 길을 벗어나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북한강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다다르자  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확 달라진다. 북한강 줄기가 왼편으로 보이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너무나 아늑하고 평화스럽다.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지역에 들어섰을 때의 지저분한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어 연고만 있다면 머물러 살고 싶은 충동을  절로 들게 한다.

 

16.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경치에 감탄하며  20여분 쯤을 이정표와 네비양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달려 가니 이윽고 소나기 마을 입구가 보인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텅빈 주차장에 여유롭게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리니 도회지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맑은  공기가 가슴을 상쾌하게 해준다.어쩌다 정말 우연히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해주는 곳에 들르게 되면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데 살아 생전에 그런 기회가 있게 될런지 잘 모르겠다.

집사람이 은퇴하는 몇년 뒤에나 혹 기회가 생길런지...

 

11.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소나기 마을 이정표를 뒤로 하고 10여분 정도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문학관이 오른쪽 산자락에 현대식 건물로 들어서 있다.양평군에서 주도를 하여 세웠다고 하는데 선생이 양평군에 실제 연고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향이 이북인 분이고 경희대에서 평교수로 정년을 맞을 때 까지 재직하시는 동안 서울에서 줄곧 사셨을텐데 왜 양평에 선생의 문학관이 생겼는지 좀 궁금했다.그래서 문학관에 근무하는 해설사 분 한테 물으니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배경이 양평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소녀의 할아버지인 윤초시네가 소녀의 아버지인 손자의 사업 실패로 살던 집을 처분하고 양평 읍내로 이사가게 되었다는 귀절이 오늘(10/26) 도서관에 들른 김에 옛 생각을 하며 읽어 본 '소나기' 작품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주차장이 있는 곳에 서있는 문학촌 안내 제암과 안내도

 

 

 

 

*문학촌 건물 전경: 3층으로 되어 있는 것 같으며 주 전시장은  2층에 있고 자칫 지하 층으로 착각할 수 있는 1층엔 매점과 부대 시설 ,3층엔 선생의 일대기를 10여분 동안 해설해주는 해설장과 휴식 공간이 있다..

 

 

 

 

*2층 주 전시장에 마련되어 있는 고 황순원 선생 흔적들

 

*선생의 서재를 재현해 놓은 모습

 

 

*선생의 유품들;친필 원고 ,필기구 ,발간된 책들이 전시되어 있음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해 있었던 원두막과 수숫단 집을 재현해 놓은 곳.

 

*환순원 선생의 묘소:문학관 바로 옆에 평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젊은 시절 만나 평생을 해로한 부인께서는 아직 생존해 계신다.묘석 뒷면에 생년이 기록되어 있는데 몰년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는데 아마 100세가 넘으신 것 같다.

 

 

*뒷 얘기:

 

*요즘 청소년들이  읽는 소설 소나기의 감동이 어떤지는 잘모르겠으나 선생보다 한 세대 뒤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60중반인 50년 초 출생 세대에게는 소나기가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우리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배경에서 그냥 순수한 마음의 소년과 소녀가 주고 받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미완으로 끝났기에 그래서 더욱 마음을 애틋하게 해주고 가슴 속에 긴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로 내겐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 어린 시절의 감동을 다시 느껴 보려고 도서관에 가서 소나기를 읽어 보았으나 어린 시절의 그런 감동은 오지 않았다.아마도 무심하게 흘러버린 세월 탓에 무뎌져 버린 감정 탓이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뭔가 허전했다.어린 시절 그토록 아끼던 쇠구슬을 어디에서 잃어 버렸는지도 모르는새 내 품에서 떠나보냈을 때의 아쉽고 허전한 마음............................

 

그리고 선생의 문학관에 다녀온 당일 영화로 된 '소나기'를 구해 보았다.영화는 1978년 내가 28세인 때 제작된 것인데 원작인 소설이 쓰여진 1953년과는 무려 25년이라는 시차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로 보는 소나기는 그리 감동적이질 않았다.글로 표현된 소설이 읽는 이의 마음을 통해 소설 속의 인물을 자기가 원하는 인물상으로  상상하여 그려 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실제 인물이 나와 대사를 하고 연기를 하기에 보는 이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데 제약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연기자들의 연기 실력도 물론 중요할테고..아무튼 문학관에서 만화로 짧게 제작한-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20분 미만 같다- 소나기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던 감동은 영화로는 못 느꼈다.정확히 연도는 모르겠으나 손예진과 조승우가 주연한 '클래식'이란 영화에 소나기 내용의 일부를 차용한 것도 기억이 난다.

 

*만화로 제작된 소나기 영상인데 너무 조금 찍혔네요.그래도 아까워서리 올렸습니다.^^

 

 

 

 

 

*황순원 선생을 기리는 문학관을 둘러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어떤 이유에서건 후대에서 그 이름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어 두고두고 기려주는 삶을 산 분들은 ' 저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라고 말이다.황순원 선생의 경우 국민 모두가 읽고 성장했을 '소나기'라는 단편 소설에 양평이란 고을 이름이 등장한다는 이유 하나로 연고도 없는 양평군에서 문학관을 세워 기려주고 있으니 이 또한 큰 복이 아니겠나 싶었다.작고하신지 얼마 안돼 고인이 생전에 쓰시던 유품-필기구,작품 원고,입던 옷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후대 사람들이 두고두고 보며 추억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이 또한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강촌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에 갔을 때는 너무 일찍 세상을 뜨신 탓인지 유품은 별로 없고 소설속의 배경을 건축물화 해놓은 것들 위주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서 많이 비교가 되었다.

선생은 소나기란 소설이 교과서에서 사라지지 않는한은 후대 사람들에게도 길이길이 기억이 될 것이니  소나기란 단편 소설 한편만으로도 성공한 삶을 사신 것 같아 한없이 부러웠다.

 

*문학관은 입장료로 1인당 2천원씩을 받고  있었는데 이것만으론 문학관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양평군에서 군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거나 문학관 유지에 관심이 있는 독지가나 기업의 지원이 없이는 독자 경영은 어렵다고 생각되었으나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내 마음대로의 추측일 뿐이다.아무튼 세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던 뜻있는 분이나 기업체가 후원을 하던 기왕에 세워논 문학관이니 잘 운영되어 황순원 선생께 관심있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는 좋은 견학처가 되었으면 싶었다. 후대 사람들이 기념관을 세워 기려주는 삶을 살고 가신 선생을 엄청 부러워하면서....^^

 

 

2013년 10월 12일 다녀온 소감을 10월 29일에 마무리하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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