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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그리고자 하는 욕망에 힘입어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차곡차곡 회화에 담겨 왔기에, 몇 장 명화를 주의 깊게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히 격동의 세계사를 짐작할 수 있다. 유미주의와 예술지상주의 이전,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영역으로서 회화를 감상하고 독해하는 길을 안내하는 『시대를 훔친 미술』은 지엽적인 미술사가 아닌 총체적 세계사를 소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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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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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마주할 순간들 5쪽
‘세계의 살’을 다루는 예술,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 21쪽
1 찬란한 노을로 물든 중세의 가을 39쪽
2 피렌체 르네상스, 위대한 융합의 순간 63쪽
3 로마 교황청의 르네상스 85쪽
4 두 개의 유럽을 만들어 낸 종교개혁 103쪽
5 반종교개혁과 바로크미술 125쪽
6 황금시대 네덜란드 시민들의 공적인 삶 147쪽
7 황금시대 네덜란드 시민들의 사적인 삶 169쪽
8 절대왕정의 강력한 왕들 187쪽
9 자유의 나라 미국의 독립 207쪽
10 프랑스대혁명의 발발 231쪽
11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일깨운 나폴레옹전쟁 251쪽
12 계속되는 혁명의 물결 271쪽
13 주인공이 된 노동자와 농민 295쪽
14 인상주의가 그린 장밋빛 인생 317쪽
15 나쁜 여자들의 전성시대 347쪽
16 여자, 동양, 노예 그리고 제국주의 369쪽
17 들끓는 친부 살해의 욕망들 389쪽
18 전쟁에 열광한 예술가들 407쪽
19 열광으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난 러시아혁명 429쪽
20 민족주의의 발흥 451쪽
21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 광란의 1920년대 479쪽
22 이념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 499쪽
23 전쟁은 이제 그만! 521쪽
참고 문헌 545쪽 <이상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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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출간한 '시대를 훔친 미술'(이진숙)은 미술을 매개로 읽는 총제적 세계사다.
단지 미술사가 아니다. 그림으로 읽는 인간과 세계의 역사다. 피렌체 르네상스부터 프랑스혁명, 두 차례 세계대전, 미국 대공황까지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에 가깝다.
또 새로운 회화장르를 개척한 선구자적 명작의 향연이며, 예민한 화가의 초상을 통해 예술가가 교묘한 장기를 지닌 장인이기 이전에 한 시대를 살았던 사회의 구성원이자 시대를 고찰했던 기록자임을 드러낸다.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욕망은 회화에 담겨있다. 러시아 문학과 미술을 전공한 성실한 평론가 이진숙은 특유의 담백한 기술로 세계사의 주요한 기점들을 일련의 회화로 설명한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1510)에서는 화려한 피렌체 르네상스를, 프란시스코 고아의 '전쟁의 참화'(1815) 연작을 통해서 나폴레옹전쟁과 그 참상을,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2)에서는 프랑스혁명의 열기와 생명력을 직관적이고도 흥미롭게 밝힌다.
예민한 화가의 초상은 예술가로 박제된 그들에게 인간적 숨결을 더한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도 스페인 독감을 앓았다.(중략) 혹독한 병을 앓을 때 뭉크는 '스페인 독감을 앓을 당시의 자화상'을 그렸다.(중략) 극도로 수척해진 모습으로 입을 벌린 채 관람객을 향한 그의 얼굴은 젊은 시절 그렸던 '절규'를 연상시킨다."(427-428쪽)
이진숙은 길 잃은 현대인이 미술 속에서 삶의 행로를 모색하길 바란다. 그는 예술을,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인류의 오래된 꿈을 확인하고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
책 표지로 사용된 그림은 2008년 올해의미술인상을 수상한 한국 회화계의 젊은 주역 홍경택의 '모놀로그'(2008)다. 556쪽, 3만원, 민음사.
뉴시스통신사 신진아 기자jash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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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서점에 가면 미술 관련 서적이 차지하는 공간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술사에 통시적으로 접근하는 서적도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사의 통시적 접근은 전체를 조망하긴 좋지만 자칫 평이한 서술로 딱딱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학부 때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러시아 트레차코프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에 감동,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미술평론 및 각종 강연활동 등으로 대중과 소통해온 저자가 교과서적인 접근을 넘어 미술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역사를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국에 갔을까. 저자에 따르면 14세기 단테가 쓴 '신곡'에는 두 위대한 철학자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탓에 지옥에 배치돼 있다.
하지만 16세기 초 교황의 집무실 역할을 한 바티칸 서명실에는 두 철학자가 등장하는 라파엘로의 명작 '아테네 학당'이 그려져 있다. 교황의 집무실에 이교도라고 할 수 있는 두 철학자가 등장한 그림은 파격적이다.
이는 "신학은 신성한 것에 대한 지식이요, 철학은 이 세상 것에 대한 지식"이라는 말처럼 '신학'의 전일적인 지배를 포기한 교황청의 생각을 보여주는 변화이자 역사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화가 고흐는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족해체는 급격히 이루어지고 노동자 계급의 가족이 모여 소박하게 저녁을 먹는 풍경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고흐가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은 노동을 마친 노동자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감자를 권하는 '남자의 손'은 노동과 노동으로 얻은 식사의 소중함을 표현한다.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1867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통해 저자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둘러싼 복잡한 세계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프랑스의 팽창주의와 식민지 멕시코, 괴뢰정부의 수장인 오스트리아 왕자 막시밀리안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외에도 밀레의 '이삭줍기'.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등 우리가 익숙하게 본 다양한 작품을 인간과 시대 상황, 역사 등과 연결해 고루한 미술이 아닌 살아있는 미술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대를 훔친 미술=이진숙 지음. 민음사 펴냄. 556쪽. 3만원.
머니투데이 -이상헌 기자 agai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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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대리석상 다비드는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사실은 당대의 정치 상황이 반영된 작품이다.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피렌체 시의회는 피렌체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미켈란젤로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희망찬 표정이 아니라 굳은 표정을 짓는다. 격변의 시기에 피렌체 시민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메디치 가문을 위해 만들었던 청동상 다비드는 쓰러진 골리앗의 머리를 발치에 둔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예술작품이 영원불변의 미를 추구한다지만 미술작가도 사람이고, 작품에는 인간의 욕망과 역사의 흔적이 남는다. 저자는 서양 근대미술 작품을 제작된 시대상과 연결해 설명한다. 중세 프랑스의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부터 현대 독일의 케테 콜비츠가 조각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지난 역사를 증언한다.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청동상 다비드는 골리앗의 머리를 발치에 둔 승리자로 그려졌다. 민음사 제공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상 다비드는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피렌체 시민들의 위기감을 반영한 듯 경계하는 얼굴이다. 민음사 제공
책에 따르면 그림은 정치적 선전 수단이 되기 쉽다. 구교와 신교 사이의 종교 전쟁이 벌어진 17세기 그림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바로크 미술은 절대왕정의 위엄을 표현하는 데 동원됐다. 1793년 자크 루이 다비드는 욕조에서 살해당한 혁명가 장 폴 마라를 순교자로 묘사하는 그림으로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을 찬양했고 1832년 외젠 들라크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민중 혁명을 긍정했다.
때로 화가는 중첩된 의미를 숨겨놓는다. 미국 화가 이스트먼 존슨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858년 '남부 흑인들의 삶'을 그렸다. 흑인들이 집 마당에 둘러앉아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 그림을 남부인들은 "흑인들은 현재 처지에 만족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 쓰러져가는 흑인의 집 뒤로 단단하게 지은 2층집 창문에서는 백인 여성이 흑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흑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엄연한 감시와 차별이 있음이 드러난다. 존슨의 그림은 해리엇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흑인 인권 문제를 제기한 작품으로 역사에 남았다.
책은 서구의 유명 회화를 중심으로 인류사를 따라가는 한편 생소한 작품도 조명한다. 소비에트 혁명 후 러시아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묘사한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이 대표적이다. 조선의 민화는 멕시코 혁명을 기록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와 함께 피식민지 국민의 의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소개됐다.
한국일보 -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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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화의 완성자'라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세상을 뜨기 직전 완성한 그림 '돌아온 탕아'(1669년)는 나눠준 재산을 탕진하고 병들어 돌아온 탕아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을 담고 있다. 말없이 아들을 보듬는 아버지며 그 옆 불만 가득한 눈초리의 맏형을 보면 그저 어느 가정의 엉클어진 관계를 묘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섬세한 손, 그 손끝에 전해지는 아들의 몸, 그리고 아버지와는 달리 동생을 원망하는 형의 표정은 가장 깊은 용서와 숭고한 화해의 순간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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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류가 의미를 찾고, 의미를 살고, 그 의미의 핵심을 후대에 전하는 과정'으로 일컬어진다. 그 차원이라면 미술작품도 그저 장면의 단선 포착이나 유미적 묘사에 그칠 수 없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명제가 설득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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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은 바로 그 점에 착안해 그림 이면의 그림을 알뜰살뜰하게 설명해 흥미롭다. 책은 유명 작가들의 회화를 시대별·언어권별로 그러모아 펼쳤지만 단순히 회화사나 작가의 연대기적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감상의 매듭짓기는 바로 역사성의 강조이다. 중세 암흑기부터 르네상스, 종교개혁, 절대왕정 시대, 미국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 식민지 경쟁, 제 1·2차 세계대전…. 격랑 속에 부대껴 살았던 화가의 눈빛과 고뇌, 어두운 그늘이 다양한 회화에 얹혀 전해진다. 그리고 그 회화에는 어김없이 숨은 역사와 복안의 메시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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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에마누엘 로이체가 그린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들여다보자.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미국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독립전쟁 중 영국군을 기습하기 위해 얼어붙은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독립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작품속 강은 라인 강을 모델로 삼았다. 로이체가 미국 독립전쟁을 1850년대 독일과 연관 지은 것이다. 로이체는 당시 자신이 지원한 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독일 진보주의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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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담긴 '언외의 지혜'는 바티칸의 교황집무실 기능을 했던 서명실 벽화에서도 묻어난다.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라파엘로에 의뢰해 그린 벽화는 천정의 시학·철학·법학·신학을 의인화한 그림, 마주 보이는 벽의 기독교적 테마가 담긴 '성체에 대한 논쟁', 그 맞은편의 '아테네 학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교도 철학자와 신상들이 대거 등장한 셈으로 이는 교황청 스스로가 신학의 전일적 지배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메디치가문 출신 교황과 세력 득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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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림 주체인 화가는 세상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책에는 순수를 고집한 부류와 세류에 가담하거나 지지한 인물들이 흥미롭게 비교된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유럽 확장정책에 편승한 '오리엔탈리즘' 구현에 나선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터키탕'이며 장 레옹 제롬의 '목욕탕'이 서구인들의 정복욕을 부추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주장한 마리네티는 전쟁을 '인류의 유일한 위생학'이라며 전쟁 미화를 거들었고 카를로 카라는 '개입주의자 선언문'을 통해 전쟁 선동 구호를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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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행해진 유대인 학살과 학대를 고발한 샤갈의 '하얀십자가'며 "민족에 영광을 가져다주겠다"고 외쳐대는 히틀러를 거대자본의 뒷돈을 받는 부패 정치인으로 묘사한 존 하트필드의 '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는 그 반대의 작품들로 다가온다. 저자는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해 "예술에는 현실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함께 담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꿈은 한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 지지하고 함께한 공동체의 꿈이기도 하며 후대가 놓치지 않고 이어나가야 하는 꿈이라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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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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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나온 듯한 남자들의 행진이 당당하다. 짜놓은 듯한 대열은 아니지만 질서가 정연하고, 참가자들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가 1901년 그린 '제4계급'의 주인공은 공장 노동자들이다. "제4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은…빛의 세계로, 역사의 무대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노동자들의 행군이 단순한 시위나 폭동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개진임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이며 성모(聖母)를 연상시키는 젊은 여인을 통해 "이제 성모는 하강하여 노동자들의 곁에 임하였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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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는 노동자들의 힘찬 행진을 묘사한 '제4계급'을 1901년 완성했다.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그림은 180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와 정치적 요구가 신장되어 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노동자와 농민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시절의 그림이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1848년 혁명(프랑스 2월 혁명을 비롯해 빈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전 유럽의 반항운동) 이후 노동자와 농민은 서서히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했다. 이해 영국에서는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이 벌어졌다. 1875년 개혁 성향 독일 사회민주당, 1882년 프랑스의 노동당, 1892년 이탈리아의 노동당이 창당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파리에서 제2인터내셔널을 결성했다. 8시간 노동제 보장, 참정권 확보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저자는 서문에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되는 세대는 늘 자신에게 맞는 표현법을 찾아 왔다. 이는 예술사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적었다. '제4계급'은 노동자, 농민이 모색한 표현법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분명 이전 그림과는 달랐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와중에도 화가들은 도시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했던 때가 있었다. 표현을 한다고 해도 직업이 모호한, 무기력한 모습일 뿐이었다. "인간적인 정수를 보여줄 만한 위대한 노동을 아직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을 그리려는 화가가 공장에 가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비규환의 비참한 지옥이었을 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1년작 '유디트1'. 성적 욕구의 권리까지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의 변화된 면모가 드러난다.
민음사 제공그림에 담긴 시대를 찬찬히 뜯어보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살아온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인간 행위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밝혔다. "역사적 사건에 예술을 일대일로 대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시대'에 담긴 인간적인 가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예술의 몫이었다며 독자들을 '시대를 훔친' 수많은 미술 속으로 이끈다.
장레옹 제롬의 '로마의 노예시장'에서는 "수동적인 여인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욕망"을 읽어낸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소개하면서는 다양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주의가 20세기 초반 물리학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1878년 작품인 펠리시앙 롭스의 '창부정치'는 악령이 씐 존재로 인식되는 돼지에 이끌리고 있는 벌거벗은 여자를 표현했다. '창부정치'는 "무지몽매한 여자가 예술과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화가의 인식을 드러낸다. 산업화와 도시의 성장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 전통 가치관 붕괴의 중요한 징후가 여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심과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1년작 '유디트1'에 이르면 여성은 육체적인 성적 욕구의 권리까지도 당당하게 요구한다. 클림트의 시도는 순결하고 순진해야 했던 이전의 여성상과는 배치되기에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여성 참정권의 인정과 더불어 여성의 욕망할 권리는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술을 미술로만 보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역사로 읽어내는 재미가 만만찮은 책이다.
세계일보 -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