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천상병, 「새」

Bawoo 2016. 1. 28. 10:44

 

천상병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시_ 천상병 -1949년 마산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2년 시 「갈매기」를 《문예》지에 게재한 후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64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약 2년 간 재직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 유고시집 『새』가 발간되었으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유고시집이 발간된 특이한 시인이 되었다. 시집 『주막에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등이 있다.

낭송_ 전영관 - 시인.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산문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가 있다.


배달하며

죽어 새가 된다면 나쁘지 않으리라.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있다면 그 마음 복된 마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또 그러한 삶의 후생이 혹 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청명한 봄날 산 아래 보리밥집에서 밥을 먹고 나섰을 때 뜰 앞의 나뭇가지에서 홀로 울던 새의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들은 적 있다. 생태적 해석은 모르겠으나 외로운 이의 외로움, 즐거운 이의 즐거움에 대하여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새는 날아갔다.
그렇게 훌쩍 날아가는 것이 한 생이겠지. 좋고 나쁜 일이 인생이지. 이 봄에 처연히 우는 새를 만난다면 나는 천상병 선생님 아니십니까 하고 인사하겠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출전_ 『주막에서』(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