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한 채에 아버지 두 아이가 살고 있다. 소녀와 소년. 소녀는 열여섯 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다.
오늘은 어머니 제사날. 소녀는 동생에게 대님을 만들어주지만 동생은 하교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 짝을 잃고 속이 상한 나머지 나머지 한 짝을 바다에다 던져 버린다. 누나인 소녀가 뒤늦게 잃어버린 대님을 찿아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소녀가 제수를 준비하고 있는 저녁 무렵 비단장수 아낙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하룻밤 묵을 요량으로 이 집을 찿아온다. 소녀는 제수 준비를 도와 줄 사람이 나타나 반갑기 그지 없지만 정작 아버지는 방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에전에 손님이 왔을 때는 방에 군불도 때주고 그랬는데.
비단장수 여인은 젊은 시절 어부였던 소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다. 거의 정혼까지 간 단게에서 선주 아들의 첩으로 팔리다 싶이 시집을 가고 이에 마음을 다친 소녀 아버지는 마을을 떠나 떠돌다가 죽은 아내와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하며 소녀와 소년, 두 아이를 두었던 것이다. ]
*대님은 인연의 끈을 상징하기 위한 작가의 위도가 담긴 설정인 둣 하다. 문체에서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원작 처음 부분]
1
해가 초겨울 추위에 오그라들어 오후는 잿빛이었다. 바다 위에는 우는 갈매기도 있었고 날아가 버리는 갈매기도 있었다.
산등이 뚜욱 잘라지고 마악 바다가 시작되는 언덕에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횡대 지어 오는 백마 무리 같은 파도의 마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에게 그 바다와 파도는 심상한 풍경에 지나지 못했다.
[원작 마지막 부분]
청년은 가만히 문을 열고 처녀의 방문을 내다보았다. 처녀의 방에는 불이 없었다.
파도에 지친 무기력한 오십대는 선주의 아들에게 딸을 팔고, 바다에서 희생되는 어부의 명단에서 제 이름을 지운 것이다. 조그만 항구의 황태자와 공모자들은 이렇게 해서 청년의 진실에다 모래를 끼얹은 것이다.
어둠이 지키는 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청년은 바다에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는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청년이 조그만 전마선 한 척을 밤바다에 띄운 것은 며칠 뒤의 일이다. 소박한 사랑의 약속을 빼앗긴 이 절망한 청년의 발 밑에서 바다가 전마선을 저어 주었다. 물풀의 씨앗처럼 청년은 이렇게 그 마을을 떠났다. 슬픔을 잊으려고 청년은 만나는 섬과 별의 이름을 외웠다.
물풀의 씨앗이 다른 물가에서 뿌리를 내리듯이 청년도 다른 해변에서 생활을 꾸몄다. 그리고는 가슴에 둥지 튼 적막을 신경통과 함께 다독거리며 나이를 먹었다.
아내를 얻고 생활을 마련했으나 그의 사랑은 본능의 나무에서는 꽃을 피워 주지 않았다.
아내가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아 주고 죽었으나 그는 아내 몫으로 바다에 돌을 던진 적은 없다. 아내의 제삿날은 아무 일 없이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4
어허...
그 처녀가, 선주 아들의 첩이 되었던 그 처녀가, 뜨내기 비단 장수로 늙은 채 어둠에 쫓겨, 이제는 중늙은이가 된 옛날의 그 청년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한 어머니의 혼백을 위해 딸이 초저녁에 빨랫줄을 걷은 그 마당으로, 아버지의 첫사랑이 고개도 숙이지 않고 들어선 것이다.
비단 장수가 아이와 누나에게 뱉어 내는 무신경한 사투리는 큼지막한 돌멩이가 되어 아버지의 추억 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아버지, 메 다 지었어요. 곧 닭이 울 텐데요.”
누나는 문고리를 달그락거리며, 갈아입은 옷의 옷고름을 만지작 거렸다.
“오냐, 닭 울리면 큰일이지.”
아버지가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그 날 그 집에 한 손님이 두 얼굴을 하고, 혹은 두 손님이 한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이윤기(李潤基, 1947~2010) 소설가, 번역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번역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하였다. 번역 작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대화를 생동감 있게 재현하며 우리말다운 표현을 잘 구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비 넥타이’, ‘두물머리’, ‘하늘의 문’, ‘햇빛과 달빛’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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