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休吾老齋(퇴휴오노재):오로재에 돌아와 쉬면서
-鄭種(정종)
[서예 습작]
世間從富不從貧(세간종부불종빈) : 세상 사람들 부귀는 좋다하고 가난은 싫다하네
藏踪幽谷耳聾人(장종유곡이롱인) : 그윽한 산골에 돌아와 귀 막고 사노라
猶有乾坤無厚薄(유유건곤무후박) : 하늘의 섭리는 같아서, 박하고 두터움의 차별 없으니
數椽茅屋亦靑春(수연모옥역청춘) : 오막살이 초가에도 좋은 날이 많도다.
鄭種(정종)
?∼1476(성종 7). 조선 전기의 무신.
1442년(세종 24) 무과에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11월 이징옥(李澄玉)의 난 때 종성절제사로서 이를 포살(捕殺)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책록되고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행종성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가 곧 행상호군(行上護軍)이 되었으며, 이듬해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세조 3) 3월 충청도절제사가 되고, 1461년 10월에는 중추원부사로서 홍익성(洪益成)과 함께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3년 경상좌도도절제사를 지내고,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는 율원군 종(栗元君從)의 휘하로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출전하여 평정에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행충무위상호군 겸 오위장에 임명되었다.
처음 칠산군(漆山君)에 봉하여졌다가 곧이어 동평군(東平君)으로 개봉되었다. 이어 충청도도절제사를 거쳐 경주부윤이 되었다. 1472년(성종 3) 한황(旱荒)이 계속되어 농작물에 대한 손실을 조사하였으나, 이에 착오가 많은 책임을 물어 파직되고, 포천으로 정역(定役)되었으나 1476년 정월에 풀려났다. 성주의 반암사(盤巖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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