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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題(우제)-尹斗緖(윤두서)

Bawoo 2016. 12. 23. 20:58


偶題(우제)우연히 짓다

                                                           -尹斗緖(윤두서)


小閣無塵霽景明(소각무진제경명) : 자그마한 누각엔 먼지 하나 없고 경치는 발기만 한데
簾波不動惠風輕(염파부동혜풍경) : 화창한 봄바람 가려이 불어도 발은 흔들리지 않네
滿地綠笞如舖錦(만지녹태여포금) : 땅에 가득한 푸른 이끼 비단을 펼쳐놓은 듯 하고
丁香花下午鷄鳴(정향화하오계명) : 꽃핀 정향나무 아래선  낮닭이 우누나


惠風:화창하게 부는 봄바람


정향나무





  • [서예 습작]

     

    • 윤두서 (효언, 尹斗緖)

      1668(현종 9)∼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 개설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1774년(영조 50)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자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 장남인 윤덕희(尹德熙)와 손자인 윤용(尹熔)도 화업(畵業)을 계승하여 3대가 화가 가문을 이루었다.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졌다.

      해남 윤씨 가문의 종손으로서 막대한 경제적 부를 소유하였으며 윤선도와 이수광(李睟光)의 영향을 받아 학문적으로도 탄탄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가풍을 이어 과거시험에 매진하였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해남 윤씨 집안이 속한 남인 계열이 당쟁의 심화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남은 일생을 학문과 시서화로 보냈다. 1712년 이후 고향 해남 연동(蓮洞)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1715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시 정보 -책 한국 한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