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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송정운(次寒松亭韻) - 이무방(李茂芳

Bawoo 2017. 2. 13. 22:46




차한송정운(次寒松亭韻) -시 '한송정'을 따라 짓다

                                              

                                                   이무방(李茂芳

 

亭依松麓斷 (정의송록단)정자는 산기슭 끊어진 곳 소나무 언덕에 기대 서있고

東望海無門 ( 동망해무문)동쪽으로 보이는 바다 멀리 아득하구나

境靜仙在 (경정선종재)지역 고요하니 신선의 자취 뚜렷하고 

沙明鳥篆存 (사명조전존)모래밭엔 새 발자국이 분명하다

碑心苔暈綠 (비심태훈록)비석 뒷면엔 이끼가 파랗고

石面雨痕昏 ( 석면우흔혼)바위에는 비 흔적이 희미하다

一掬泉無渴 (일국천무갈)한 웅큼의 샘물이 마르지 않으니

源乎天地根 (원호천지근) 천지 뿌리의 근원이로다.




차운 [次韻]  [문학] 남이 지은 시에서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지음


자취 종

산기슭 록/① 산기슭 ② 산감(山監) ③ 숲 ④ 산림 간수(山林看守)

움킬 국/① 움키다 ② 두 손바닥 ③ 단위 ④ 두 손으로 움켜 뜸




한송정 (寒松)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위치한 차 유적지의 정자. | [개설] 『동국여지승람』에 한송정을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述郞仙人)들이 놀던 곳이다’라고 기록하였다. [명칭유래] 일명 녹두정(綠豆)이라고도 불렀다...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한송정(寒松)

고려 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 구성 및 형식 950년(광종 1)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 권71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오언절구의 한문으로 된 해시(解詩)와 함께 그 내력이 수록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도 옮겨져 있다. 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예 습작]


이무 [李茂芳]

(석지(釋之), 문간(文簡))

1319(충숙왕 6)∼1398(태조 7).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 개설 본관은 광양(光陽)이고, 자는 석지(釋之)이며, 찬성사에 증직된 인영(仁英)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충목왕 때 급제, 전교교감(典校校勘)에 오르고, 공민왕 초년에 외직으로 나가 순창군(淳昌郡)을 다스렸다. 이 때 고관 중에 사사로이 토산물을 청구하는 자가 있었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 뒤 헌납(獻納)이 되었으나 당대의 권신 김용(金鏞)에게 접근하지 않아 미움을 받았다.


당시의 제도에 봉릉(封陵)을 할 때에는 반드시 집의를 시켜 서명하게 했는데, 서명한 사람은 크게 출세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모두 이를 회피하였다. 그러나 장령(掌令)으로 정릉(正陵 : 魯國公主의 능)을 봉하게 되었을 때, 집의 홍원철(洪原哲)이 서명을 꺼리므로 대신 서명해 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어머니의 상중에도 불구하고 기복(起復 : 喪中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상제의 몸으로 벼슬자리에 나오게 하는 일)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므로 이를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 뒤 민부상서(民部尙書)·대사헌을 거쳐 추충좌명공신(推忠佐命功臣)의 호를 받았고, 이어 밀직학사(密直學士)로 승진하였다.

1372년 (공민왕 21) 계림부윤이 되어 풍년이 들자 백성들에게 어염(魚鹽)을 팔아 의창(義倉)을 설치해 진대(賑貸)를 준비하였다. 그 공적이 순찰사 최영(崔瑩)에게 인정되어 판개성부사로 승진하였고, 여절공신(礪節功臣)이라는 호가 더해졌다. 1374년 정당문학으로 지공거(知貢擧)를 맡았다.


우왕 초에는 서연관(書筵官)이 되었다가 1376년(우왕 2) 시중 경복흥(慶復興)과의 알력으로 파직되어 광양군(光陽君)에 봉해졌다. 1379년 문하평리(門下評理)로 명나라에 가서 공물을 바치고, 진정표(陳情表)를 올려 공민왕의 시호와 우왕의 작명(爵命)을 청했으나 명나라의 거부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창왕이 즉위한 뒤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올랐고, 공양왕 때는 추충여절찬화공신(推忠礪節贊化功臣)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문인(門人) 조준(趙浚)의 천거로 검교문하시중이 되고, 광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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