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효과승사(曉過僧舍)-유방선(柳方善)

Bawoo 2017. 2. 15. 21:10




曉過僧舍

                                                            -유방선(柳方善)


東嶺上初暾(동령상초돈) : 동쪽 고개에 아침 해 돋으니
尋僧扣竹門(심승구죽문) : 스님 찾아 대사립문을 두드린다
宿雲留塔頂(숙운류탑정) : 밤을 새운 구름은 탑 위에 머물러 있고
積雪擁籬根(적설옹리근) : 쌓인 눈은 울타리 밑을 덮었구나
小徑連深洞(소경련심동) : 오솔길은 깊은 골짜기로 이어져 있고
疏鍾徹遠村(소종철원촌) : 성긴 종소리 먼 마을까지 울린다
蕭然吟未已(소연음미이) : 외롭고 쓸쓸하게 읊기를 그치지 않으니
淸興到黃昏(청흥도황혼) : 맑은 흥과 운치가  저녁까지 이르른다


暾:아침해 돈

扣:두드릴 구/① 두드리다 ② 당기다 ③ 덜다 ④ 굽히다

蕭然:외롭고 쓸쓸하게

청흥 [淸興]  맑은 흥과 운치=


[서예 습작]


유방선 (柳方善)1388(우왕 14) ~1443(세종 25)

조선초의 문인. | 본관은 서산.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아버지는 서령부원군 기(沂)이고, 어머니는 이색의 손녀이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어 신동으로 불렸으며, 당대 문장과 이학으로 이름이 높던 변계량·권근 문하에서 총애를 받았다. 1405년(태종 5) 국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했다.1409년(태종 10)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관련됨으로써 연좌되어 서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음해 영양으로 이배되었다.

1415년 잠시 풀려났으나 다시 모함을 받고 유배되어 1427년까지 1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중 학행이 뛰어났다고 하여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했고, 세종은 집현전 학사를 보내고 스승 대우를 하는 등 각별히 아끼고 등용하려 했으나 병에 걸려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다.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후진 양성에 힘써 서거정·이보흠 등 걸출한 학자를 배출했으며 이안유·조상치·이취·정거·최원도 등 경학에 밝은 선비들과 교유했다.

만년에는 〈주역〉에 심취했고, 산수화를 잘 그렸다. 그의 시는 음풍농월을 배제하고 성리학에 기반을 둔 천지, 만물, 인간사의 이치를 담아내는 데 치중했다. 당시 비서성(秘書省)에 소장된 〈여지록 與地錄〉 중에 16여 편의 시문이 실릴 정도로 문명이 높았으며, 시풍은 충담고고(沖澹高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곡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 〈태재집〉(5권 1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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