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淸平李居士
- 곽여(郭輿)
淸平山水冠東濱 [청평산수관동빈] 청평의 산수는 해동에서 으뜸인데
邂逅相逢見故人 [해후상봉견고인] 이곳에서 옛 벗을 만났구려
三十年前同擢第 [삼십년전동탁제]삼십년 전에 우리 함께 과거에 급제했는데
一千里外各棲身 [일천리외각서신] 천리 밖에 서로 떨어져 살았구려
浮雲入洞曾無累 [부운입동증무루] 뜬 구름 골짜기에 드니 더러움 없고
明月當溪不染塵 [명월당계불염진] 밝은 달이 내를 비춰 티끌 하나 없구나
擊目忘言良久處 [격목망언양구처]서로 말을 잊고 한참 바라보는데
淡然相照舊精神 [담연상조구정신 ] 담연히 서로 통하는 옛 정이여!
청평(淸平) : 춘천(春川) 북쪽에 있는 청평산. 경운산(慶雲山)이다
冠 관(갓/으뜸),
東濱 동빈(동쪽 물가/해동/우리나라를 의미),
棲 서(살다/깃들다)
累 루(묶다/번거로움/근심),
良久 양구(매우 오램/한참지남),
淡然 담연(욕심이 없고 깨끗하다)
詩에 등장하는 李居士이거사는 李資玄이자현을 말하며, 李子淵이자연의 손자이다.
이자현은 고려 선종 때 벼슬을 버리고 청평산에 은거하여 文殊院문수원을 짓고
그 곳에서 禪선을 닦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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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에 곽여(郭輿)가 지은 한시. 작자가 이자현(李資玄)에게 준 칠언율시로, ≪파한집 破閑集≫·≪삼한시귀감 三韓詩龜鑑≫·≪동문선≫·≪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며 서로 글자의 이동이 있다.
곽여는 예종의 초치에 오건(烏巾)과 학창(鶴氅)을 걸친 도가 행색으로 나타나 금문우객(金門羽客)이라 불린 인물로, 술사 은원충(殷元忠)을 따라 선풍(仙風)을 추구하였던 이자현과는 동년(同年)이다.
이자현이 청평의 문수원(文殊院) 곡란암(鵠卵菴)에서 묵좌하고 있을 때, 안찰사로 관동에 갔던 곽여가 그를 방문하여 이 시를 주었다고 한다. ≪파한집≫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련 시화가 전한다.
≪동문선≫에 실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청평 산수는 해동에 으뜸이라/그리던 그 벗을 여기서 만나다니/동년 급제 후 어느새 서른 해/천리 멀리도 떨어져 지냈구려/뜬구름 골에 들어 더러임 없고/밝은 달 내를 비춰 티끌 하나 없네/마주보고 말없길 서로 한참에/마주 비치는 해맑은 두 마음
(淸平山水冠東濱 邂逅相逢見故人 三十年前同擢第 一千里外各栖身 浮雲入洞曾無累 明月當溪不染塵 擊目忘言良久處 淡然相照舊精神).”
이 시는 우정의 교환과 함께 선풍에의 흠모의 뜻을 나타내었는데, 경련(頸聯)은 경(景)을 통하여 이자현이 도달한 선풍의 경지를 암시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예 습작]
곽여 (郭輿, 1058년 ~ 1130년)은 고려의 문신, 시인이다. 자는 몽득(夢得), 본관은 청주(淸州).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內侍部)에 속했다가 함문 지후(閤門祉侯)를 거쳐 홍주(洪州)를 다스리고, 예부원 외랑(禮部員外郞)이 되었다. 벼슬을 그만두고 금주(金州)의 초당(草堂)에 돌아가 시작(詩作)에 골몰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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