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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의 特徵과 展開樣相
金美善*
目次
1. 硏究의 方向
2. 禪詩의 槪念과 特徵
3. 禪詩의 展開樣相
4. 佛敎文學史的 位相
1. 硏究의 方向
본 논고에서는 「韓國 禪詩의 특징과 전개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선행연구를 통하여 선시의 개념을 정리하고 한국 선시의 특징을 선수행의 觀法 중 하나인 ‘反觀三昧’를 통한 禪語의 세계에 초점을 두어 고찰하기로 하겠다. 그 이후 그러한 한국 선시의 특징은 어떠한 禪脈을 이루며 전개 되었는지의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1) 종래로 선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 [不立文字]라고 하였으니 不立文字의 세계인 禪家에서 不離文字로 빚어진 禪詩의 위상을 찾는 일이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불가에서는 禪․敎․律 三學이 鼎足으로 중요시되어 왔다.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에는 반드시 선정에 드신 후에 설한다. 즉 禪定은 깨달음의 바른 지혜를 낳는 원천이며 바른 行인 戒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방대한 경전을 통하여 설하신 연기법의 이치는 이 선정의 행을 통하지 않고서는 체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깨달음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수레가 곧 禪이고 이 선은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문자를 쓰면 그 자리에서 깨달음의 空寂이 깨어지기에 달마대사는 ‘不立文字․敎外別傳․直指人心․見性成佛’ 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不立文字의 깨달음의 宗旨를 전하려면 어쩔 수 없이 文字를 통하지 않고는 전할 수 없는 일이다. 달을 보라고 하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들어야 하는 경우인 것이다. 이에 禪家에서 文字는 문자로 말할 수 없는 경지를 말하기 위한 절대적 도구로 쓰여졌고 단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 것이지 손가락 끝을 본다면 그것은 本體의 지혜를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을 건너려면 배를 띄워야 하고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둬야지 그 배를 등에 지고 산을 오른다면 그것 또한 본체를 떠난 일이 된다. 선가에서 문자란 이러한 선지를 전하고 전하여 받는 필수불가결한 도구이며 단지 이 도구인 문자에 집착하거나 하면 그것은 바로 달이라는 진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고 한 치앞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달을 본다는 망상에 잡히게 되는 것과 같이 된다.
이에 필자는 선가의 선시를 연구하며 선가의 득도의 경지인 불립문자의 경지로 가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불리문자 세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오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불리문자의 세계인 禪詩를 먼저 선행 연구를 통하여 선시의 개념을 정리하고 한국선시의 특징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선가의 法脈에서 동시에 선시의 발달과정을 볼 수 있기에 선가의 법맥을 토대로 하여 선시의 전개양상에 접근하여 이러한 한국 선시가 불교문학사적으로는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자리매김하여 보고자 한다. 먼저 선시의 개념과 선시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1) 본 학회에서 “韓國 漢詩의 特徵과 展開 Ⅲ”이라는 기획 주제 아래 필자가 받은 원래의 발표문 제목은 「한국 불교시의 전개와 특징」이었다. 이에 지금까지 필자가 불교 선시를 연구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선시의 특징과 전개 양상」으로 범위를 좁혔음을 밝혀 둔다.
‘佛家詩’ 와 ‘佛敎詩’란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혹은 혼용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불가시’는 창작주체를, ‘불교시’는 작품내용을 기준으로 한 용어임을 아울러 밝혀둔다.
즉 ‘불가시’라 하면 창작 주체가 승려로 국한되며 ‘불교시’는 창작 주체가 儒佛을 통섭하고 작품의 내용이 불교사상을 내포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에 본 논고에서 ‘한국 불교시’를 다루자면 범위가 너무 범범하여 창작주체를 승려로 좁혀 ‘佛家詩’로 하고 ‘불가시’에서도 수행자의 悟道의 경지를 詩化한 ‘禪詩’로 다시 좁혔다. ‘한국 불교시의 전개와 특징’의 범위는 후고로 본 논고를 바탕으로 후고로 미루기로 한다.
2. 禪詩의 槪念과 特徵
(1) 禪詩의 槪念
上求菩提와 下化衆生이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라면, 불교문학의 목표 역시 동일하다고 하겠다. 불교의 목적인 깨달음을 위한 정신적 수행 방법이 禪이라면 미혹과 번뇌로 인해 가려진 佛性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禪의 구현 방법에서는 철저하게 문자를 배격하고[不立文字] 오직 마음과 마음에 의한 표현이 그 전수방법[以心傳心]이다. 인간과 자아에서의 경이의 세계를 시적인 영감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바로 禪詩라 할 때, 선시는 絶慮忘緣, 不立文字라는 禪理와는 어떤 함수를 지니는가.
선시의 어원은 梵語 Gata로부터 비롯된다. 중국에서는 이를 伽陀, 偈陀로 음역하였고 偈라고도 했다. 意譯으로는 偈頌 또는 頌이 되는 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Gata는 佛典의 散文體로서 佛德을 찬탄하거나, 산문을 마무리하는 운문형식이었다. 이것이 후에 와서는 詩偈․頌古․歌頌을 통칭하는 게송, 즉 선가들이 지은 모든 운문을 선시라 부르게 된다.2)
宋赫교수는 선시는 시적 관심과 불교적 관심이 서로 다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유기적인 것임을 확인하고, 불교적 관심과 그 사상이 시의 언어 구조와 잘 융합된 작품일수록 우리 시문학상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기록되는 작품이라고 하였다.3)
먼저 우리나라 선시연구자들의 선행연구 업적을 살펴보면, 印權煥 교수는 전문적 저술로는 처음으로 선시를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우선 크게 일반적인 불교시와 불교시 속의 한 특수 분야로서 선시를 상정하고 있다. 여기서 일반적인 불교시란 이른바 불교적 작품으로 승려이든 아니든, 敎僧이든 禪僧이든 구분을 하지 않고 그 내용이 불교적 발상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의 범칭으로 보았다.
반면 선시는 그 범위가 훨씬 좁아져서 선적인 세계나 체험, 그 증도나 사유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선가의 승려들을 그 작가군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고려시대 선시 발흥의 사상적 모태로서 知訥의 선사상을 말하고, 여기서 발원된 선시의 원천이 慧諶에 의해 개화되어 一然, 冲止로 이어지며, 이어 景閑, 普愚, 慧勤으로 전승되었다고 보아, 이들의 생애와 작품들을 불교시가문학, 곧 선시라는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4)
李鍾燦 교수는 보다 심도 깊은 선시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 역시 선시를 일단 선의 시적 함축으로 설정하고 선사의 작품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禪詩論」에서는 선시의 발원, 게송의 문학성, 선시와 게송, 선시의 수사, 선시의 유형을 고찰하고 있고, 「고려 선시의 이론과 실제」에선 고려 禪師인 知訥․慧諶․冲止․景閑․普愚․慧勤의 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다.5)
權奇浩는 선시를 특정 대상을 의식한 것이 아닌 모든 대상을 떠난 순수한 의식인 마음 그 자체를 찾으려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그와 비슷한 색깔의 문학들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즉 도가의 시, 다다이즘의 시, 초현실주의의 시, 신비주의의 시, 기독교의 시와의 대비가 그것이다.6)
이러한 선시 일반의 연구를 보면, 선이란 불교의 목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정신적 수행방법으로 대체적인 의미는 本體에 대한 頓悟, 또는 自性에 대한 직관적 覺을 뜻한다7)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생이나 삶에 대한 선의 參究자세는 시인의 예리한 관찰과 직관으로서 인생의 본질을 투시하고 이를 미적 감각으로 시화하려는 창작원리와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金雲學은 『佛敎文學의 理論』에서,
"禪僧과 文學者는 그 표현의 원천이 되는 창작 정신에 무언가 일치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불교는 諸法의 實相을 諦觀하는 것이고, 문학은 인간의 가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역에 있어선 이 양자가 구별되는 것 같지만, 좀더 고차원적 입장에서 보면 문학자는 예술적 직관에 의해서 자기를 투영, 시화하는 것이다. 즉 자기에 의해서 자연을 특수화․개성화하는 것이요, 선승은 종교적 자연에 의해서 자연과 자기를 一如로 하고 主客未分의 구체적 생명으로 만물과 나를 일체의 절대경으로 한 것이다. 그 근저를 보면 문학자의 문학작품도 선승의 詩偈도 다 구체적 자기의 무한의 전개에 불과한 것이다.8)"
라고 선시의 개념과 성격을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시인이 예술적 직관에 의해서 자연과 자아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나, 선승이 物我一體의 절대경지에서 불교의 제법실상을 체관하는 것을 동일한 차원에서 보고 있다.
이러한 선시의 개념을 또한 宋代의 嚴羽가 “시를 논함은 선을 논함과 같고, 禪道는 오직 妙悟에 있으며, 詩道 또한 妙悟에 있다”고 설파한9) 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선과 시의 바탕은 모두 일상의 논리와 사상체계에 의해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라는 방편을 통해서 이 양자의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인식의 도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선과 시는 종교와 사상, 문학과 예술로서 그 영역을 달리하면서도 양자가 직관을 통해 추구하는 정신적 원천에서의 상통성과 그 격이 언어로 표현된 禪語와 詩語는 모두 일상성을 초월한 극도의 상징적 표현을 지닌다는 점에서 선과 시는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가에서는 시의 형식을 빌려 선의 묘체를 말하고자 하였고, 詩家에서는 선의 높고 깊은 사유방식을 빌려 作詩의 차원을 한층 높이고자 하였으니 이른바 相補關係인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金나라의 元好問이 「答俊書記學詩」에서 “시는 禪家에 비단 꽃을 덮어 주었고, 선은 시가에게 좋은 칼을 다듬어 주었다.”10)라고 한 말은 선시의 개념을 이해하기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선과 시가 합류하게 된다는 인식의 바탕에서 시작된 선시의 개념은 嚴羽의 「以禪喩詩」를 거쳐 王魚洋의 「詩禪一致」로까지 발전되어11) 선시론의 한 줄기를 형성하였다.
결국 선에서 보면 ‘선의 시적 수용’이고, 시에서 보면 ‘선의 시적 함축’이라 하겠다.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불가의 선시에는 전자라 할 수 있는 오도송이나 게송과 같이 직접적으로 선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고, 후자라 할 수 있는 유유자적한 생활의 경지를 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개념의 선시가 갖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2) 李鍾燦, 「高麗禪詩硏究」, 한양대학원 박사논문, 1984, 20쪽 참조.
3) 宋 赫, 『現代佛敎詩의 理解』, 동국대 불전간행위원회, 1978 참조.
4) 印權煥, 『高麗時代 佛敎詩의 硏究』,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3; 「高麗時代 佛敎文學硏究」, 『語文論集』 22, 高大 國語國文學 硏究會, 1982; 「佛敎詩에 나타난 自然觀」, 「高大新聞」913호, 고대신문, 1982 참조.
5) 李鍾燦, 『韓國의 禪詩』, 二友出版社, 1985 참조.
6) 權奇浩, 『禪詩의 世界』, 경북대 출판부, 1991 참조.
7) 吳經熊 著, 吳怡 譯, 『禪學的 黃金時代』, 商務印書舘, 1986 참조.
8) 金雲學, 『佛敎文學의 理論』, 一志社, 1981, 79~80쪽 참조.
9) 嚴 羽, 『滄浪詩話』, 「시변」, “論詩如論禪 大抵禪道惟在妙悟 詩道亦在妙悟.”(杜松柏,『禪學與唐宋詩學』, 424쪽 再引)
10) 邱燮友, 「唐詩中的禪趣」, 138쪽, “詩爲禪家添花錦 禪是詩家切玉刀.”
11) 黃景進, 「以禪喩詩到詩禪一致」, 『古典文學』 4집, 臺北學生書局, 1982 참조.
(2) 禪詩의 特徵
본 논고의 선시의 특징에서는 ‘反觀三昧’의 특징에 국한하여 고찰하기로 한다.12)
禪家에서는 ‘照顧脚下’라고 하여 선방의 고무신 벗는 섬돌에 많이 써 붙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발을 바르게 벗어라.’ 또는 ‘머리를 돌려 발 뒷꿈치 아래를 바라 보라.’ 라는 이 단순한 말 속에는 불교 수행의 기본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수행의 觀法은 자신의 행동 혹은 생각 등을 관찰하는 것에 있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 즉 자신의 행위을 스스로 살펴 수행하는 것이다. 불가 수행의 관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을 관하든 자신의 그 순간의 識 또는 행위을 통해 참된 나를 찾는 것이 수행이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이러한 ‘조고각하’의 수행의 실례를 禪家에 전해오는 일화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임제종의 승려 佛鑑慧懃․佛眼淸遠․佛果克勤 스님들이 五祖法演 禪師의 法門에 있을 때 하루는 정자 위에서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방장실로 돌아오니 등불은 꺼져 있었는데 오조선사가 어둠 속에서 각기 한마디씩 던져보라 하였다. 佛鑑선사는 ‘오색 봉황이 하늘에서 춤춘다.’하였고, 佛眼선사는 ‘쇠뱀이 옛길에 누었다.’하였고 佛果선사는 ‘照顧脚下’라 하니 오조선사는 ‘우리 종문을 망칠 놈은 克勤이다.’고 하였다.
어찌하여 극근선사에게 종문을 망칠 놈이라고 하였을까? 宗門을 망치는 것은 종문이라고 내세운 것까지 없애버려서 한 법도 내세운 것이 없으므로, 발밑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선의 근본 뜻을 묻는 질문에 佛道는 멀리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곳에 있음을 알아 차리라는 것이다. 道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밖의 대상에 이끌리지 않고 항상 자기를 살펴 발밑을 조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니 ‘照顧脚下’13)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 수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선종의 三祖 僧璨禪師의 『信心銘』에서 설한 禪偈의 要諦가 反觀․返照임을 볼 수 있다.
…… ……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多言多慮
전도되어 더욱 상응치 못하고 轉不相應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絶言絶慮
통하지 않는 곳 없으리라 無處不通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歸根得旨
비치는 것을 따라가면 근본을 잃나니 隨照失宗
모름지기 잠깐사이 본체를 반조하면 須臾返照
도리어 앞의 공함보다 나으리라 勝却前空
앞의 공이 굴러 변함은 前空轉變
모두 망견 때문이니라 皆由忘見
…… ……
라고 하였으니 무엇을 아무리 따져 봐도 이론에만 그칠 뿐 이치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이치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멀어져 본 마음에 계합되지 못하고 어긋나게 된다. 위없는 無上大道를 성취하려면 言語道斷 心行滅處 로 언어도 마음도 끊어진 자리에서 한마음 돌이켜 본체를 직관하는 返照를 하라는 승찬선사의 禪偈 이다.
이와 같은 反觀 은 곧 禪家의 수행법이며 그 수행의 결과인 不立文字의 경지를 표현하기 위한 不離文字 세계인 禪詩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종 선게의 특징을 수용한 우리나라 高麗의 無衣子 慧諶선사의 반관의 선시를 보면,
못가에 홀로 가만히 앉아서 池邊獨自坐
물 속에서 우연히 스님 만났네 池底偶逢僧
묵묵히 웃으며 서로 바라봄은 黙黙笑相視
그대의 말을 저절로 알아서 이네 知君語不應14)
혜심은 수행의 여가에 물가를 포행하며 물 속 자신을 들여다 보니 이것이 反觀의 수행이다. 물 속에 비치는 그림자와 서로 바라보며 묵묵히 말이 필요 없이 미소지으니 以心傳心 염화미소의 觀照의 경지를 선시로 읊고 있다.
내 마음은 가을 달 같아 吾心似秋月
반조하지 못함 없네 任運照無方
온갖 만상 드러나는 그림자 속에 萬相影現中
비추는 빛 홀로 온전히 드러나네 交光獨露成15)
백운경한 스님은 지공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 스승에게 자신의 수행과정을 선시로 바치며 점검을 받고 있다. 반관의 수행을 자연의 운행에 저절로 내맡기어 無碍自在한 경지를 번득이는 선어로 관조하였다.
백운선사의 다음시에도 반관의 선시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밝은 해라도 밤은 비출 수 없고 白日不照夜
밝은 거울도 뒷면은 비추지 못하네 明鏡不照後
어찌 나의 마음 같을 수 있으리오 焉得如我心
하여 밝으니 항상 고요히 비추네 圓明常寂照16)
라고 하였으니 아무리 밝은 해라도 밤은 비출 수가 없고 아무리 맑은 거울이라 하여도 뒷모습은 비춰줄 수가 없다. 하지만 圓融無碍한 경지의 觀照는 시간가 공간을 초월한 직관의 경계를 다함을 말하였다.
다음은 太古普愚의 「太古庵歌」에서 반관의 선시 특징을 찾아 본다.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아도 더더욱 아득하고 回光返照尙茫茫
당장 그대로 알았다 해도 자취에 막힘 있네 直下承當猶滯跡
나아가 까닭 물으면 도리어 크게 어긋나니 進問如何還大錯
여여하여 움직임 없음은 굳은 돌과 같으리 如如不動如頑石17)
선수행은 득도에 긍극의 향함이 있고 마음을 자득하는 첫걸음이 回光返照에 있다. 회고아반조를 통해 자신을 관조 할 수 있어야 하니 惺惺한 反觀으로 회광반조의 수행을 觀한다면 如如하여 행함 이전에 행함을 自得하리니 그 자리가 득도의 경지인 것이다.
다음은 청허선사의 「詠月」을 보면,
슬픔과 또 기쁨이 있고 悲悲又喜喜
옛날과 또 지금 있네 古古亦今今
하늘에 있는 밝은 거울은 天生大明鏡
몇 사람 마음 비춰줬을까 照破幾人心18)
고려때 무의자 혜심선사는 인간의 是非 美醜의 경계가 있는 것이 의심이 되어 출가를 하였다고 한다.
출가하여 십년뒤 悟道詩에서는 출가하여 깨달은 것은 본래 是非 美醜의 경계는 없는 것인데 그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라고 하였다. ‘슬픔이다.’ 또는 ‘기쁨이다.’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옛날이다.’ ‘지금이다.’ 라는 것 또한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거늘 중생심은 喜悲와 古今을 말하니 하늘의 저 밝은 달은 미혹한 중생의 마음을 몇사람이나 비춰 깨우쳐 줬을까? 하였다. 중생심을 분별심을 놓아버리고 反觀의 마음자리를 돌이킨다면 만상은 저절로 훤히 드러나리라.
이와 같이 禪家의 선수행의 결과가 빚은 결실인 선시가 선종의 初祖 四句偈로부터 그 특징에서 ‘反觀三昧’를 찾아 볼 수 있었으니 그러한 맥은 위와 같은 맥락 속에서 선시의한 특징으로 자리하여 조선시대 龍潭禪師의 『용담집』에서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瀚惺의 『龍潭集․跋文』에서 용담의 성정을 읊은 시는 이미 道를 떠나 이야기 할 수 없다면서 “용담 대사의 시를 전하는 일이 용담의 도를 전하는 길이고, 후학들이 대사의 시를 접하게 된다면 그의 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19)라고 한 것처럼『용담집』의 작품을 보면 수행에서 返觀의 성정을 노래하여 “詩禪一如․詩道一如”라는 것들에 주목 하게 된다.
『龍潭集』에서 그의 행장과 시문의 내용을 통해 佛家의 ‘反觀’ ‘返照’의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출가를 해서도 유가의 ‘克己 工夫’20)에 힘쓰고 ‘知命’21) 두 글자 공부한 것에 불과하니 부끄럽다22)고 하였다.
불가의 ‘反觀’23)과 ‘返照’24)의 수행을 통해 空사상을 크게 깨달았으니, 墨名而儒行而墨心者25)로서 ‘反觀三昧’를 두루 융섭한 禪師라 할 수 있겠다.
선사의 수행을 詩로써 道를 전한 일이라면 용담의 200여수 전체가 反觀의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담의 작품 속에 ‘觀’․‘照’․‘返觀’․‘返照’․‘反觀’의 용어가 들어 있는 작품이 27작품26)이 있다. 반관이란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내용으로 佛家에서 선 수행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삼는 바이다.
세간의 그 어떠한 말도 다 소용없고 스승이 되는 공부의 길은 반관 공부임을 말했으니 용담 자신의 수행관이다. 그의 이러한 수행의 정신은 선시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送屹上人入禪」27)을 보면 용담의 반관의 수행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고요히 앉아 마음을 관하니 靜坐觀心地
허공 또한 하나의 티끌이네 虛空亦是塵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을 本來無一物
안 연후 도에 가까워지리라 然後道方親
용담선사는 參禪에 들어 고요히 마음을 觀하니 허공도 또한 하나의 티끌일 뿐이었다. 주관⋅객관의 대립을 여의고 주객이 통일된 평등의 경지에서 眞如를 체득하는 진실의 지혜를 터득하여 개념적 사유를 넘어선 無分別智를 설하고 있다. 이렇듯 우주의 본래 모습은 분별망상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착할 만한 물건도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닌 本來無一物28)임을 이미 六祖 慧能禪師가 설파하였다.
용담은 수행을 떠나는 도반에게 이러한 見性이란 모든 존재의 실상이 본래 空한데 空하여 空마저 머뭄이 없다는 도리를 反觀하여 깨쳐야 도에 가까워 질 것이라는 空亦空을 설하였다
이에 禪家에서 수행자의 修行의 결과를 示法함에 응결된 언어의 특징으로 ‘返觀三昧’가 있음을 살펴 보았다. 이렇게 禪家에서는 늘 수행에 있어서 ‘空亦空’의 경지를 깨치고는 늘 漸修의 수행으로 返觀을 하였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선시의 특징이 드러난 선시는 어떠한 禪脈을 따라 전개되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12) 선시의 특징으로는 ‘以詩寓禪․以禪論詩․詩禪一如․詩禪一揆’ 등의 다방면의 특징을 논할 수가 있으나 본 논고에서의 선시의 특징은 ‘反觀三昧’로 국한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詩禪一如․詩禪一揆’의 선시의 특징은 필자의 선행 졸고에서 논한 바 있다.
13) ‘조고각하’의 수행 관법은 儒佛의 諸家에게서 두루 찾아 볼 수 있으나 지면상 생략한다.
14) 慧諶, 『無衣子詩集』, 「對影」.
15) 白雲, 『白雲和尙語錄』, 「呈似指空六」.
16) 白雲, 『白雲和尙語錄』, 「居山․十七」.
17) 「太古庵歌」.
18) 淸虛,『 ꡕ淸虛堂集』, 「詠月」
19) 慥冠, 『龍潭集』, 「跋文」, “詩之傳 卽師道之在師道之存 必籍詩傳庶後之學者 見詩而知師道之不偶然也.”
20)『論語』 「雍也」 註, “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
『論語』, 「雍也」 註, “又曰 先難, 克己也. 以所難爲先, 而不計所獲, 仁也.”
『論語』, 「子罕」 註, “侯氏曰 博我以文, 致知格物也. 約我以禮, 克己復禮也.”
『論語』, 「顔淵」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論語』, 「顔淵」 註, “又言克己復禮, 則天下之人皆與其仁,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論語』, 「顔淵」 註, “又曰 克己復禮, 則事事皆仁, 故曰天下歸仁.”
『論語』, 「顔淵」 註, “謝氏曰 克己須從性偏難克處克將去.”
『論語』, 「顔淵」 註, “程子曰 顔淵問克己復禮之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論語』, 「顔淵」 註,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吳.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論語』, 「顔淵」 註, “愚按: 克己復禮, 乾道也.”
『論語』, 「憲問」 註, “或曰 四者不行, 固不得爲仁矣. 然亦豈非所謂克己之事, 求仁之方乎.”
『論語』, 「憲問」 註, “夫子, 指伯玉也. 言其但欲寡過而猶未能, 則其省身克己, 常若不及之意可見矣.
『孟子』, 「梁惠王」 下 註, “學者以身體之, 則有以識其非曲學阿世之言, 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矣.”
『孟子』, 「盡心」 上, “程子曰 人能克己, 則仰不愧, 俯不怍, 心廣體胖, 其樂可知, 有息則餒矣.”
慥冠, 龍潭集ꡕ, 「龍潭大師行狀」, “益務克己工夫.”
21) 『孟子』, 「盡心」 上, “孟子曰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論語』, 「堯曰」,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論語』, 「堯曰」註, “程子曰 知命者, 知有命而信之也. 人不知命, 則見害必避, 見利必趨, 何以爲君子.”
22) 慥冠, 『龍潭集』, 「龍潭大師行狀」, “知命過二文字工夫 豈不傀哉.”
23) 慥冠, 『龍潭集』, 「答詳聰兩大禪」, “生疎於反觀工夫者 亦無能於齒人之數矣.”
24) 慥冠, 『龍潭集』, 「龍潭大師行狀」, “唯以反照爲己業.”
25)『초의 선다시』 ‘墨’은 ‘墨子’를 가리키는 말이나 異端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며, 여기서는 불교승려를 가리킨다. 韓愈가 「送浮屠文昌師序」에서 이 말을 썼다. 朝鮮後期의 文集 序․跋文에 보면, 작가의 유형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들어 보면, 李紀淵의 「月荷上人文集序」에서는 “墨名儒行”이라는 표현을 했고, 南基百의 「月荷上人遺集跋」에는 “心儒者” 라는 표현이 있다. 丁若鏞의 『與猶堂全書』1집 17권 「兒菴藏公㙮銘」에도 “墨名儒行君子” 라는 표현이 있다.
26) 『용담집』에 ‘觀’, ‘照’, ‘返觀’, ‘返照’의 용어가 들어 가는 작품이 다음의 제목으로 27작품이 있다. 이 내용을작품 세계의 연구 범위로 삼고자 한다. 「臨水偶吟」․「送屹上人入禪」․「閑居卽事」․「述懷」․「歎竹庵徽道友入禪」․「謹次冥眞和尙」․「贈寶盖山壽丈室」․「贈心印師」․「又(贈心印師)」․「贈館道友」․「贈森頭陁」․「次贈汝楞師」․「贈成上人」․「贈寶乖頭陁」․「贈香山鳳上人」․「贈達原上人」․「述懷」․
「次贈聖學沙彌」․「寄一道友病中」․「次甘露寺修道板上韻」․「又(以宗任赴嶺南時與箕城長老相和)」․「贈政上人」․「曹溪會中贈仁上人」․「屹丈室來呈信法之語感題一律勉之」․「題聽流亭孤松」․「次贈心印士」․「次贈大隱沙彌」
27) 慥冠, 『龍潭集』, 「送屹上人入禪」.
28) 六朝 慧能 揭,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3. 禪詩의 展開樣相
먼저 한국 선시의 발달 과정의 고찰에 앞서 선시의 계보를 우리나라 근대의 禪僧 石顚스님29)의 「石顚詩鈔后自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石顚은 선시의 계보를 말하며 中國 唐나라 때의 禪僧 馬祖, 石頭에서 시작된 선시를 우리나라 艸衣30)가 잇고, 그 뒤를 자신이 계승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석전시초란 무엇인가 石顚詩也鈔何爲
나뭇잎새 좀먹은 듯 볼품없는 글이라네. 蟲偶食木似摛詞
음악의 싹은 또한 말하는데서 시작된다는 樂之苗裔且言志
스승의 말씀을 일찍이 들었지. 未始不聞先覺師
내 본래 어리석어 잊기도 잘해 石素愚兮多耳食
불러도 안 오느니 더욱 마음 허전해라 呼之不來益凄其
서역에서 들어온 불법에 시를 곁들여 空法西來參詩乘
능숙히 하였던 이 그 누구신가 見說能者得其誰
탕휴스님 시의 명성 남조를 진동했고 湯休詩聲動南朝
벽운스님 뛰어난 글 모두가 흠상했지 碧雲合句諠效之
퇴고에 어린 눈물 읊조리는 소리 떨고 敲椎凝涕叫賞音
낭선의 그림자는 연못에 반쯤 잠겼네. 浪仙痕影半侵池
송대 구승들의 절묘한 시 有宋九僧何高玅
구양수도 옷깃 여미고 감탄했지. 歐九歛衽歎希奇
서악 고승인 옛 성이 강씨인 西岳高僧舊姓姜
고환은 눈살 찌프리며 시를 읊었지 古懽回首皺吟眉
초의스님 영주 가자 완당이 일어나 草衣過瀛老阮起
우리 불법 처음 듣고 늦게사 좋아했지 采吾問道晩醒嘻
백년동안 참선으로 다투질 않았고 爾來百年禪不競
시 또한 그 문에 관심 둔 이 없었네. 詩亦無門可款窺
그러나 백년 동안 선풍이 식어 시 또한 볼품없어 嵒中枯禪能記否
마조 석두 스님이 선시를 처음했지 馬祖石頭倡禪詩
내 본래 강호의 빈한한 사람으로 僕本江湖寒窶輩
구름을 벗삼아 많은 날을 보냈었지 隣雲栖石已多時31)
…… ……
위의 석전의 자서에서 한국 선시의 발달과정을 정확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선시의 계보를 말하며 馬祖道一, 石頭希遷에서 시작된 선시를 우리 나라 艸衣가 잇고, 그 뒤를 자신이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석전스님의 「石顚詩鈔后自敍」의 선시 계보를 근거로 하여 한국선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한국 선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기 위하여 한국 선시가 영향을 받은 中國 선시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에서 선시는 禪宗의 형성과 함께 唐詩의 성황을 만나 발전하였다.
즉 禪宗은 본래 중국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다. 선종은 양 무제 (普通元年 520)때 인도 수행자인 달마가 바다를 건너 중국 광주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달마로 시작된 선은 제2조 慧可․제3조 僧璨․제4조 道信을 거쳐 제5조 弘忍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당나라의 초기였다.
이러한 선종의 禪(dhyana)은 戒․定․慧 三學을 수행하는 과정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왔다.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에는 반드시 선정에 드신 후에 설한다.
즉 선정은 깨달음의 바른 지혜를 낳는 원천이며 바른 행인 계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방대한 경전을 통하여 설하신 연기법의 이치는 이 선정의 행을 통하지 않고서 체득할 수 없다.
이러한 선의 실천을 宗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중국의 선종이다. 당대의 선종의 사상적 근거는 선종의 宗旨인 ‘不立文字․敎外別傳․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고 할 수 있다. 이 四句偈야말로 선종의 사상을 대표적 으로 드러내고 있는 禪偈이다.
석전스님은 선시의 계보를 馬祖 石頭로부터 들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이렇게 선종의 初祖의 선게가 문자로 전해오는 것을 비롯하여 禪宗의 初祖인 菩提達磨의 법을 구하기 위하여 二祖 慧可가 雪中斷臂求法을 하였고 이러한 법통은 선종의 3조인 鑑智僧璨에게로 이어졌다. 승찬은 제자에게 다음의 게송으로 법을 전였으니 그 禪偈는 다음과 같다.
꽃을 심는 것은 땅을 인연하고 花種雖因地
그 땅에서 심은 꽃이 피어난다. 從地種花生
만약 씨를 심는 사람이 없다면 若無人下種
꽃을 심어 피울 수 없으리라. 花種盡無生32)
이렇게 禪思想의 要旨를 전하는데 있어 以心傳心의 禪語는 不離의 하나라 하겠다. 또한 승찬의 信心銘ꡕ은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교사상과 1천 7백의 格外의 도리 公案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至道無難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有嫌揀擇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但莫愛憎
확연히 명백해 지리라. 洞然明白33)
…… ……
라고 하였으니 선종에서 求道 悟道의 방법과 정신을 제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언어문자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4구게의 『신심명』은 禪詩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29) 석전스님(1870~1948)은 법호인 영호나 법명인 정호보다는 속명인 박한영, 또는 석전이라는 아호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근대 불교계의 講․禪․律․詩를 겸비한 대표적인 物外道人이라 할 수 있다.
30) 艸衣스님(1786~1865)은 禪師이며 그의 禪詩 文藝美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韓國 禪詩의 受容美學的 가치 또한 우리나라 불교문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31) 石 顚, 『石顚詩鈔』, 「石顚詩鈔后自敘」
32) 曺五鉉 편저, 『禪問禪答』장승, 25쪽.
33) 僧璨, 『信心銘』.
다음으로 선종의 제5조인 弘忍大師가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의 일화를 보면 홍인은 제자들에게 바른 법은 듣기가 어렵고 거룩한 모임은 만나기 어려운데 너희들이 오랫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본 것이 있으면 각자 말해보라 하니 제자 중에 神秀는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벽에 적었다.
몸뚱이는 깨달음의 나무 身是菩提樹
마음은 거울대와 같으니 心如明鏡臺
때마다 부지런히 털고 닦아 時時勤佛拭
티끌이 묻지 않게 하라 勿使惹塵埃
또한 이름을 모르는 노행자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벽에 적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거울에 또한 대가 없느니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 何處惹塵埃
노행자의 게송을 보더니 홍인은 얼른 지워버리고 얼굴에 미소만 띄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자의 불립문자의 경지인 법을 가늠해서 傳法을 함에 있서 그 경지를 나타내고 그 경지를 알아보는데 있어서는 文字를 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선가의 불립문자의 경지를 알기 위해서는 선가에 전해오는 문자를 살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두 게송은 모두 깊은 禪理를 담고 있어 禪과 詩를 하나로 융합하여 중국의 禪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 이후 石頭希遷과 쌍벽을 이룬 馬祖道一도 懷讓禪師를 만나 크게 깨치게 되었다. 회양선사는 마조도일이 진리를 담을 만한 그릇임을 알아보고 偈頌을 들려주어 전법을 하였으니
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心地含諸種
비를 만나면 모두 싹을 틔우네 遇澤悉皆萌
삼매의 꽃은 본래 상이 없는데 三昧華無相
무엇이 없어지고 이루어지고 하랴 何壞復何成34)
라고 하였다. 회양은 마조도일에게 心地法門을 배움은 그대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러하다며 거기에 무슨 생성과 파괴가 있겠는가? 라고하며 게송을 들려주자 마조도일은 마치 醍醐를 마신듯 시원하게 깨우치게 되었으니 傳法에 필수불가결한 不離의 文字세계가 빚은 禪偈이다.
다음은 생몰연대가 미상인 古靈禪師의 일화도 마찬가지이다.
戒를 준 은사스님을 시봉하며 은혜를 갚으리라 생각하고 때를 기다려도 스승은 敎學에만 매달려 좀처럼 깨달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거늘 고령은 다음과 같은 偈頌을 읊어 스승을 깨우쳐 준다.
열려져 있는 문으로 나가지 하지 않고 空門不肯出
창문을 뚫으려 하니 크게 어리석도다 透窓也大痴
백 년을 그 종이를 뚫고 나가려 한들 百年讚古紙
어느 날에 뚫고 나갈 수 있을리오? 何日出頭期
하며 고령은 깨달음의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드러나 육근․육진의 경계를 벗어나 있으니 문자에 매달린다고 터득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 드러난 참모습은 문자에 구애됨이 없고 참된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찾겠다는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그대로 부처라는 깨달음의 경지를 문자로 말하였으니 선가의 불리문자의 세계이다.
이에 중국 선종의 初祖 달마의 四句 禪偈로부터 발달된 게송은 당나라의 寒山이 지은 寒山詩ꡕ에서 본격적인 선시의 시초로 자리함을 볼 수 있다.
내마음은 가을 달 같고 吾心似秋月
연못은 맑고 깨끗하네 碧潭淸皎潔
감히 견줄 물건 없거늘 無物堪比倫
내 무얼 말할 수 있을까? 敎我如何說35)
이렇게 한산은 불립문자의 선의 경지를 전하기 위하여는 문자라는 시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禪思想의 발달과 아울러 禪詩의 발달임을 논증하여 주고 있다.
선시는 中唐, 晩唐에 접어들며 크게 성함을 보여 당대의 훌륭한 선승들이 보여준 많은 게송을 보면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시의 열기가 식을 宋代에도 선시는 冶父에 의해 성행되는 바, 그는 「金剛經頌」, 곧 「冶父頌」이라는 名作을 남겼다.
천척의 낚시줄을 아래로 드리우니 千尺絲綸直下垂
한 물결 일어나자 만 물결이 따른다 一波縡動萬波隨
밤 고요하고 물 맑아 고기 물지 않으니 夜靜水寒魚不食
배에 가득 허공 싣고 달빛 속 돌아오네 滿船空載月明歸36)
라고 하였다. 禪家의 소의경전인 금강경ꡕ을 종밀, 부대사, 혜능, 야보, 종경의 다섯 명의 대가가 해석한 책 金剛經五家解ꡕ 그 중에서 야보는 이렇게 파격적으로 선시로 주석을 붙였다.
그 무렵 雪竇 重顯(980~1052)은 선시의 定典인 頌古百則ꡕ을 저술하게 되고, 그 뒤 圜悟 克勤(1063~1163)이 『頌古百則』에 平唱․垂示․着語를 덧붙여 『碧巖錄』을 내놓았다.
삼계는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三界無法
어느 곳에서 마음을 찾을까? 何處求心
흰 구름 일산을 삼고 白雲爲蓋
흐르는 물 거문고 소리네 流泉作琴
한 곡조 두 곡조 아는 이 없으니 一曲兩曲無人會
연못에 밤비 내리어 가을 물만 깊어지네 雨過夜塘秋水深37)
이후 天童 正覺의 『百則頌古』(從容錄의 原典) 無門 慧開의 無門關ꡕ, 丹霞 子淳의 『百則頌古』등이 나옴으로써 선시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中國 선시의 흐름이 고려慧諶에게로 이어졌다.
34) 馬祖,『馬祖語錄』.
35) 『寒山詩』, 「五十」.
36) 『金剛經五家解』, 「冶父頌」.
37) 「碧巖錄第三七則公案盤山三界無法頌」.
"한 번의 極致가 가면 그 다음은 沒落이다. 선시의 극치가 冶父와 雪竇로부터 파동치고 난 그 다음, 宋에는 석양이 왔다. 동시에 선시에도 석양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때, 저 머나먼 귀퉁이 나라 고려에서 眞覺國師慧諶(1178~1234)이 돌출, 이때까지의 선시를 모조리 한 다발로 묶은 『禪門拈頌』30권을 편찬했다.38)"
라는 말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 慧諶(1178~1234)의 선시가 비로소 출현하여 韓國 선시의 본격적인 형성이 이루어졌다.39)
바람 자고 고요히 파도일지 않으니 無風湛不波
삼라만상이 눈에 그대로 비쳐드네 有像森於目
어찌 꼭 많은 말을 기대할 것인가 何必待多言
보기만 해도 뜻에 이미 족한 것을 相看意已足40)
이러한 혜심의 선시 속에는 直觀의 선사상을 들여다 보게 한다. 바람이 고요해 파도 일지 않으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보인다 하였으니 마음이 明鏡臺와 같다면 이미 득도의 경지를 자득하리라는 禪旨를 담은 선시이다.
이러한 眞覺國師 慧諶은 普照國師의 의발을 받은 曹溪山 제2조로서 普照禪을 계승한 선사였다.
그러나 知訥과는 달리 禪門에 관한 계통적인 논술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는 知訥의 사상을 이어 실천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41)
그의 『無衣子詩集』은 선적 진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함축과 상징, 초월과 역설의 선종적 시풍을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이전의 불교시와는 다른 시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이는 그의 선의 실천적 특성으로 이해되며, 理智가 원융한 시가 多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無衣子詩集』은 선시의 眞寶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慧諶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禪詩僧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아울러 慧諶의 시는 이후 나타나는 선시의 표본이 되고 있다. 慧諶 이후에 시를 남긴 高麗의 선사로는 普覺 一然(1206~1289)과 수선사 제6세인 圓鑑 冲止(1226~1293)으로 이어진다.
아침 되면 죽 먹고 朝來共喫粥
죽 먹고는 발우 씻네 粥了洗鉢盂
모든 禪客에게 묻나니 且問諸禪客
도리어 아는 이 없네 還會云也無42)
라고 하였으니 論說과 言行을 통하여 ‘道’를 알려고 하면 그 알아진 것이라도 헛된 깨달음이라는 ‘喫茶去’라는 公案으로 ‘平常心是道’를 말한 당나라의 趙州禪師의 禪風의 경지를 그대로 잇고 있는 선시이다.
그리고 沖止禪師 이후로 70여년 후에 高麗末의 三師인 白雲景閑(1299~1375), 太古 普愚(1301~1382), 懶翁 慧勤(1320~1377)이 선시를 잇고 있다. 다음 작품을 보면,
밝은 해에 강산은 아름답고 白日江山麗
푸른 봄날 화초는 무성하네 靑春花草榮
어찌 거듭 말할 필요 있을까 何須重話會
만물은 본래 圓滿具足한 것을 萬物本圓成43)
이라 하였다. 백운의 얽매임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禪이란 또한 곧 無心의 경지로 통한다.
백운의 선시에도 이러한 무심에서 얻어지는 깨우침을 선시로 남겼음을 보았으니 있는 그대로의 그곳, 그것이 바로 진여의 법계세계요, 그 자리가 바로 해탈이요, 그것이 또한 寂滅의 경지인 것이다.
마치 강산의 아름다움과 봄날 화초의 무성함은 본래 구족되어져 있는 佛性이요 또한 佛法이 아니겠는가 마음을 고요히 하여 평상심 그대로 들여다 본다면 다시는 말이 필요없는 不立文字의 경지인 것을 불립문자임을 말하기 위하여 不離文字의 禪詩로 示法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一然은 迦智山 출신으로서 知訥과 惠諶의 수선사를 직접 계승한 것은 아니지만, 閔漬가 찬한 그의 비문에 “遙嗣牧牛子”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知訥의 법을 이은 것으로 간주되며, 또한 慧諶을 직접 대면하기도 했고 慧諶의 『禪門拈頌』을 주석한 『禪門拈頌辭苑』(30권, 失傳)을 저술한 점에서 수선사의 看話禪 선풍을 계승하고 있다. 知訥의 법맥을 계승, 가지산 선풍을 확립하여 禪敎統一의 사상을 『三國遺事』에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원융한 선세계 포용을 讚詩 양식에 함축했다.
찬시는 讚佛文學 쟝르인 까닭으로 偈나 주관적 公案頌과는 다르다.
一然의 찬시 49수는 고도의 문학성을 지닌 선시로서 선시 자체의 문학성 고도의 상징과 역설이나 난해한 ‘禪理․禪典․禪迹․禪語’들을 피하고 평이한 시어를 七絶構造에 담았다.
따라서 南宗禪脈의 ‘不立文字․單刀直入․直子見性․不言階漸’ 등의 경계를 표출하였던 知訥禪風을 지양, ‘平常心是道’의 자연스러운 詩情을 계승하였다. 그러므로 一然은 『三國遺事』구조의 편목을 적절하게 조직하였으며 선과 문학의 접근을 조화했다.
이들 慧諶, 一然, 冲止의 선시는 14세기 高麗 말엽에 이르러 景閑, 普愚, 惠勤의 선시로 이어진다. 이들 高麗禪詩의 흐름은 慧諶으로부터 영향받은 韓國 선시의 발달사 속에서 臨濟風의 영향을 받은 특징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高麗에서 朝鮮으로의 불교의 흐름은 척불숭유정책으로 위축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척불정책의 역경 속에서 선가문학은 이론의 심화에 열중하여 역대 선승들의 맥락을 이어 선시가 꾸준히 산출되었다.
朝鮮初의 선시인으로는 먼저 無學의 제자인 涵虛 得通(1376~1433)을 들 수 있는데 高麗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정치이념이 바뀌는 시기에 출현, 불후의 명작 『金剛經禪詩』를 남겼다.
涵虛는 太祖 李成桂의 왕사인 無學의 제자였고, 無學은 高麗末 臨濟風 선시의 거장 懶翁의 제자였다. 그러나 懶翁의 臨濟風 선시는 無學을 거쳐 涵虛에게 와서 애석하게도 끊겨 버리고 만다. 涵虛의 시는 너무 맑고 투명하여 슬픔이 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본격적으로 배불정책이 시작되어 선승들의 활동영역이 위축되어서인지 涵虛의 선시에서부터 체념적인 정서가 한국선시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38) 釋智賢 編譯, 『禪詩』, 玄岩社, 1974, 27쪽 참조.
39) 印權煥, 『高麗時代 佛敎詩의 硏究』,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3, 52쪽 참조.
40) 慧諶, 『無衣子詩集』, 「小池」.
41) 李鍾燦, 「高麗禪詩硏究」, 한양대대학원 박사논문, 1984, 113쪽 참조.
42) 沖止, 『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 「偶書問諸禪者」.
43) 白雲, 『白雲和尙語錄』, 「居山․十三」.
이때의 선시인으로는 또한 梅月堂 金時習(1435~1493)을 들 수 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후에 출가하여 선승의 면모를 지닌 인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杜甫를 능가하는 비애풍의 유랑시를 많이 남겼다. 언어 구사력이 뛰어났던 그는 선지 또한 예리하여 시상은 거침없고 언어는 절제되어 거장다운 선시를 많이 남겼다.
다음으로는 明宗 때 활약한 선승으로 虛應堂 普雨(1515~1565)가 있다. 그는 조선 불교사에 빛나는 거승으로 禪敎一體說로 지눌 이래의 사상통일을 주장하였고, 이런 바탕 위에 유교의 理氣說까지 융섭시켜 일원적 논리를 전개하였던 사상가였으며, 문집 『虛應堂集』에서 보는 것처럼 훌륭한 선시인이었다.
남달리 열정적이던 그는 퇴락해 가는 옛 절들을 보며 개탄하는 회고시를 많이 남겼다. 『華嚴經』에도 조예가 깊어 빼어난 화엄시 여러 편을 남겼다.
普雨의 뒤를 이어 淸虛 休靜(1520~1604)에서 한국 선시는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淸虛堂 이전의 선시는 金時習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中國 臨濟風 선시의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淸虛에 와서 韓國 선시는 臨濟風에서 벗어나 한국 특유의 은둔적이며 체념적인 서정풍으로 변모해 갔으며, 청허는 서정성이 강하고 자연과의 교감력이 뛰어났던 선승으로, 그를 통하여 선시가 산중의 정서를 읊은 도가풍의 탈속한 분위기를 지닌 韓國的 선시풍으로 정착되었다.
배꽃 천만 조각이 梨花千萬片
텅빈 집에 날아드네 飛入淸虛院
목동이 피리 불며 앞산 지나는데 牧笛過前山
사람도 소도 모두 보이질 않네 人牛俱不見44)
尋牛圖 속에 몰록 들어간 無我의 선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淸虛 이후의 한국 선시는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고 있다.
淸虛에 의해서 분출된 한국 선시의 맥은 17․18세기 조선 후기로 와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찬란하게 꽃피었으니 그 주역들은 靜觀 一禪(1533~1608), 四溟 惟政(1544~1610),靑梅 印悟(1548~1623), 奇巖 法堅(1552~1634), 逍遙 太能(1562~1649), 中觀 海眼(1567~?), 鞭羊 彦機(1581~1644) 등 고승대덕들이다.
그 뒤로 편양언기의 법맥을 용성조관(1700~1762)이 불리문자의 법맥을 이어 그의 문자속에서 返觀의 수행경지를 볼 수 있다.
용담의 「以宗任赴嶺南時與箕城長老相和」이다.
헛되이 인간의 오십년을 보내고 나니 虛擲人間五十春
오경의 쇠잔한 등불에 홀로 상심이네 五更殘燭獨傷神
마음을 관함에 절로 증사객45)에 부끄럽고 觀心自愧蒸沙客
의리를 구함이 깊이 설식인46)에 부끄럽네 究義深慚說食人
순리를 받들면 무한한 기쁨 생기기 쉽고 承順易生無限喜
이치 어기면 넘치는 嗔心억제 어려우리 對違難抑有餘嗔
진리를 진실로 스승 아니면 어디 물을까? 眞源信不師何問
마음 속 돌이켜 비추니 눈물 수건 적시네 返照中情涕滿巾
용담선사가 세수 50이 되어 지난날을 돌이켜 보자니 새벽 5경이 되도록 상심이 크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모래로 밥을 짓는 증사객이요 지혜있는 사람은 살로 밥을 짓고 지혜를 얻지 못한 사람은 모래로 밥을 짓는다 하였는데 50평생의 자신을 돌이켜 보니 모래로 밥을 지은 중사객임을 返觀하며 자탄한다. 반관을 통해 얻은 진리는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요. 수행의 三毒을 없애는 것은 嗔心이거늘 이치를 어기면 진심을 막기 어려우니 늘 반관하여 순리에 순응하길 생각하자니 흐르는 눈물이 수건을 흠뻑 적신다고 하였다.
용담선사 이후 여기에 조선시대 후기의 끝으로 艸衣 意恂이 우리 나라 선시의 맥을 잇고 있다.
초의 선시를 보면,
해뜨니 새소리 떠들썩하고 日上禽聲喧
점점 붉은 안개 흩어짐 알겠네. 漸覺紅霞散
온갖 꽃이 흐드러짐을 완상하고 行玩群芳榮
봄 뜻이 가득함을 함께 기뻐하노라. 俱欣春意滿
어린 약초 무성히 흐드러지고 嫩藥藹菲菲
이름난 꽃은 향기롭게 모여있네. 名花蕤纂纂
깊이 물아일체의 정에 감동되어 深感物我情
싯구 찾는 걸음 절로 느긋하네. 覓句步自緩47)
이 시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표현한 시로 단순한 자연물과의 교감을 말함만이 아니라 ‘物我一體’의 경지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尾聯에 보이는 ‘물아일체’는『莊子』「齊物論」48)에 나오는 용어이기도 하고 唐나라 澄觀이 저술한 불가의 『華嚴經疏』49)에 나타나 보이는 一切法은 森羅萬象이라는 圓融無碍思想에 입각해 보면, 一切法은 오직 緣起에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事事無碍하여 실체가 없으면서 실체를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그것은 서로 相卽相入하여 有도 아니면서 無와도 다른 것이라 표현했다.
‘일체법은 한 법에 들어가므로 하나 가운데 무량한 것이 녹아 있으며, 한 법에 또한 일체법이 들어 있으므로 무량한 가운데 하나가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一切法’과 ‘一法’의 관계는 ‘萬物’과 ‘我’의 관계, 그리고 ‘萬物’ 속의 ‘我’, ‘我’ 가운데 ‘萬物’의 관계, 곧 ‘物我一如’의 경계라 하겠다.
이러한 불리문자의 법맥에서 艸衣의 詩․禪․茶를 통하여 도달한 경지를 수용․계승한 맥을 꼽는다면, 梵海 覺岸․石顚 映湖․萬海 龍雲을 들 수 있다.
梵海(1820~1896)는 『東師列傳』 「艸衣禪伯」에서 “스님은 어느 한 가지도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라고 하여 흠모의 뜻을 곡진히 나타내었고 艸衣의 시문학 세계와 다도를 수용 계승한 사람으로 보인다.
艸衣의 다도는 생활 속에서의 中正을 유지하여 실천하는 것을 그 본지로 하였으며 이러한 艸衣의 다선일여 정신을 梵海가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범해의 선맥은 石顚으로 이어진다. 石顚은 당대 명사들의 태두로서 존경을 한몸에 받았고 삼장강설은 물론 시문과 경사자집, 심지어 서법까지도 달인의 경지를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스님들의 무지와 교만, 타락과 변절 등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 계율과 행실이 반듯해 부족함이 없어 많은 名士들의 師表가 되었다.
백양산 四勝 가운데 운문암의 저녁 종을 읊은 선전의 선시이다.
바람결에 쇠북소리 온 골짝 울리는데 風曳噌吰萬竅鳴
흩 나는 낙엽 빼어난 돌 서리 이슬도 영롱하군 葉飛秀石露華明
큰스님 아시려나 모르시려나, 진공의 참 뜻을 闍梨頗記眞空否
범패 읊조리자 새벽달 솟아오네. 朗唫梵唄遲月生50)
울리는 쇠북소리와 흩날리는 낙엽, 빼어난 돌, 서리의 영롱한 이슬은 속인에겐 전혀 무관한 별상일 뿐이다. 또 범패를 읊는 일과 달이 뜨는 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진공의 세계에서는 이 또한 별개의 일이 아닌 緣起이자 總相이다. 종소리는 그 소식을 전해주고, 달은 그 이치를 현현해 주는 이른바 장엄한 자연의 경건함 바로 그것임을 시의는 함축하고 있다.
물론 큰스님이야 모를 까닭이 없지만 그것이 시문학의 뉘앙스가 아니겠는가?
선의 경지는 이렇게 분별과 차별을 떠나며 유정과 무정을 하나로 융섭하는 일원론 속에서 만유일체, 불이법문으로 총상화한다. 진솔한 시의 경지 역시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한국 선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니 佛家의 禪을 傳法하는데 ‘敎外別傳․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 하였지만 文字라고 하는 것을 통하지 않을 수 없는 不離文字였으니 이것이 바로 禪詩이다.
이와 같이 禪의 오도의 경지를 詩를 통해 말하였으니[以詩寓禪] 詩와 禪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詩禪一如․詩禪一揆] 선가의 不二思想과 함께 전개되어온 선시의 뚜렷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불가의 反觀三昧의 특징을 갖고 전개되어온 선시가 갖는 佛敎文學史的 位相을 찾아 보고자 한다.
44) 『淸虛堂集』, 「人境俱奪」.
45) 初發心自警文, “有智人 所行 蒸米作飯 無智人 所行 蒸沙作飯.”
46) 『능엄경』, “今日乃知雖有多聞 若不修行與不聞等 如人說食終不能飽.”
47) 『一枝庵詩藁』 1, 「今和」.
48) 『ꡕ莊子』, 「齊物論」,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49) 澄觀, 『華嚴經疏』, “一切法入一法 故一中解無量 一法入一切法 故無量中解一也 所以能得互相入者 展轉互爲鏡影而生 非實而生故無障碍.”
50) 『石顚詩鈔』下, 「雲門暮鍾」.
4. 佛敎文學史的位相
위와 같이 본 논고에서는 禪詩의 특징과 전개양상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종래로 선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不立文字]’고 하였지만 깨달음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수레가 곧 禪이고 이 선의 깨달음의 宗旨를 전하려면 어쩔 수 없이 文字를 통하지 않고는 전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가에서 문자란 이러한 선지를 전하고 전하여 받는 도구이며 단지 이 도구인 문자에 집착하거나 하면 그것은 바로 달이라는 진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고 한치 앞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달을 본다는 망상에 잡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불립문자를 내세운 것이지 아예 문자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닌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선가의 득도의 경지인 불립문자의 경지로 가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불리문자의 세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오며 특히 ‘반관삼매’의 선시 특징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선시의 특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선가의 不立文字가 不離文字의 절대적인 세계 속에 들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었으니 선과 시는 불리 될 수 없는 不二의 세계로 많은 선시가 파생 되어 있음을 선시의 전개양상 고찰 과정에서 고증해 볼 수 있었다.
먼저 선시의 개념을 정리하면서 시와 선이 不二의 위치에서 드러난 선가의 法脈을 고찰하고 불리문자의 계보 속에서 禪詩의 확고한 位相을 찿아 낼 수 있었다.
근대의 선승 石顚禪師가 「石顚詩鈔后自敍」에서 선시의 계보를 말하며 中國 唐나라 때의 禪僧 馬祖, 石頭에서 시작된 선시를 우리나라 艸衣가 잇고, 그 뒤를 자신이 계승하였다고 말한 자료에서 선시 위상의 근거를 잡아 볼 수 있었다.
이에 한국 선시는 고려때 무의자 혜심선사가 꽃피워냈다. 그러한 한국 선시의 수용경로 및 전개양상을 중국 선종의 初祖 四句偈로 거슬러 올라가 그 맥을 짚어 왔다. 선종의 종통은 달마로부터 제2조 慧可․제3조 僧璨․제4조 道信을 거쳐 제5조 弘忍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며 宗旨를 전수 받는자가 法統의 傳法者가 됨에 그 과정에서 不立文字의 禪旨를 示法하게 된 것이 선시로 발달하게 되었다.
三祖 승찬스님의 ꡕ신심명ꡕ은 중국 선시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부터 신수와 혜능은 선과 시를 하나로 한 선시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되어 졌다. 이후 회양선사의 心地法門, 고령선사의 六根․六塵을 벗어난 게송, 이후 당나라에서 본격적 선시의 시초로 자리 잡은 한산자의 선시가 있으며 이러한 중국 선종의 선시의 계보가 우리나라에 고려 혜심을 통하여 수용 되어 전개 되었다.
이러한 중국 선종의 선시 전개양상에서 그 특징을 ‘反觀三昧’의 一面에서 고찰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수용된 선시는 혜심에게서 본격적으로 형성이 되어져 一然․冲止․慧勤 등을 통하여 활발히 전개되어 조선시대로 들어와 涵虛․普雨․淸虛․龍潭․艸衣․石顚의 계보를 따라 전개되어진 양상을 고찰하고 그 속에서 파생된 선시와 반관의 禪法이 선시의 특징으로 드러난 부분을 선시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았다.
이에 한국 선시에서 선수행자의 수행과정과 작품 내용을 고찰하며 큰 특징으로 返觀을 통한 禪思想의 체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이 본 논고의 논지전개 속에서 불리문자를 통해 한국 불교 사상사적 특성을 조명하며 返觀三昧의 수행관 및 문학관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선사의 수행 결과로 빚어낸 한국 선시는 불교사상 및 불교문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어져 그 위상을 정립시킬 가치와 필요성이 선가의 불립문자가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상을 더욱 확고히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사료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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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0. 1. 23
심사시작일 2010. 2. 8
심사완료일 2010. 2. 23
Abstract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al aspects of zen poetry
Kim, Mi-Sun
In this thesis,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al aspects of zen poetry are investigated. In zen tradition, it has been taught 'not to depend on language for enlightenment', however, zen is an essential vehicle to reach enlightenment and the core meaning of zen could on ly be conveyed through language in the form of zen poetry. I inquired into this seemingly contradictory notion.
I have kept deep interest in the meaning of 'not depending on language for enlightenment' and communication without language and paid a special attention to the characteristics of zen poems which are comparative concentration. In the course of studying, I realized that communication through language and communication without language were interrelated and zen and zen poetry were not two separable things. I think it is necessary and important that the meaning of 'not depending on language for enlightenment' of zen tradition in buddhist cultural history should be clearly understood through extensive study of zen poems which are the result of practices of zen masters in the field of buddhist literature.
Keyword : zen poems, not depending on language for enlightenment, buddhist literature, comparison, concentration/absor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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