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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家 禪僧의 萬行詩 考察
金美善*
目 次
1. 序論
2. 佛家 萬行詩의 認識 背景
3. 禪僧의 萬行詩 特質
4. 萬行詩의 位相 및 맺음말
1. 序論
본 논고는 「佛家 禪僧의 萬行詩 考察」이다. 본고의 연구범위로 불가의 四家大乘 1]의 하나로 禪僧의 일체 수행 行法 속에서 만행의 求道를 통해 남겨진 萬行詩 2]를 범위로 삼기로 한다. 연구사 검토에 드러난 선시의 연구 결과물은 많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불가의 만행시에 대한 고찰은 더욱 드러나지 있지 못한 실정이다.
우선 불가에서 만행이라고 하면, 安居를 마친 뒤 雲水行脚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 안거는 원래 부처님 당시에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 밖으로 나와 걸어 다닐 때 알게 모르게 살생을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서 우기 동안 수행을 하는 것을 안거라고 했다. 이후 북방불교로 전파 되며 이 곳 지역들은 겨울의 추위를 피해 수행 하는 음력 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 冬安居를 하였다.
夏安居는 음력 4월 15일에서 7월 15일까지 부처님 당시처럼 우기 또는 더운 석 달 동안을 피해 수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안거에는 結制와 解制가 있는데 안거의 시작을 결재라고 한다. 석 달 결재에 들어가기 전에 은사 스님으로부터 공부의 과제를 받거나, 자신이 공부의 목표를 정하여 시작하는 것을 결재라고 한다. 이렇게 석 달이 지나 결재가 끝나는 날을 해제라고 하여 해제일에 선승들은 곧바로 바랑을 짊어지고 만행에 들어선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3] 이라 하여 허공의 구름이 머무는바 없이 기멸 하듯,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無住’․‘無着’을 증득 하여야 한다. 이것이 선수행자의 증득 자리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같은 나무 밑에서 3일 이상 정진을 하지 말라 설하였다. 머물면 집착이 생기고 집착이 생기면 팔만사천 번뇌가 일기 때문이다. 이렇게 석 달 안거를 선승들은 3일 정진으로 생각하고, 안거가 끝나면 만행을 떠난다. 무주 무착의 행으로써 善知識을 찾아 나서 자신이 공부한 것을 점검 받는 것이다.
이러한 萬行僧을 雲水行脚僧이라고 한다.
안거 기간 중 禪房에는 ‘禁足’이라고 써 붙여 놓고 있다.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금하여 안으로 화두를 참구하여 수행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수행은 無我法을 증득하기 위한 것인데 자칫 한 곳에 머물면 집착이 생길 수 있기에 부처님께는 머물지 말고 雲水行脚하라고 하였다.
불가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傳法의 상징으로 鉢盂를 전한다. 만행 선승의 바랑에 발우 하나만 넣어 길을 떠나는 것은 바랑이 크면 소유와 집착이 일어나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승의 만행 결과로 빚어진 내용을 고찰하고자 하는 본고의 연구 방향은 먼저, 宋나라 廓庵禪師의 尋牛頌에서 佛家 禪僧의 萬行詩 認識 背景을 검토하기로 하겠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불가 만행시를 고찰하고, 그 내용적 특질을 1. 以行喩禪의 求法 2. 行禪不二의 任運으로 양분하여 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고찰해서 논지에 드러난 불가 선승의 만행시 위상을 가늠해 보기로 하겠다.
*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1]華嚴宗․天台宗․眞言宗․禪宗의 하나로 선종의 일반 승려를 가리킴.
2]韓國佛敎全書編纂委員編, 『韓國佛敎全書』(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석지현, 『한시감상사전』(민족사, 1997)을 底本으로 한다.
3] 『金剛經』.
2. 佛家 萬行詩의 認識 背景
불가 선승의 만행시 배경을 먼저, 심우송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심우송은 尋牛圖에 지은 게송으로 송나라 확암선사가 가장 먼저 심우도를 그리고 심우송을 남겼다고 한다. 심우도는 尋牛․見跡․見牛․得牛․牧牛․騎牛歸家․忘牛在人․人牛俱忘․返本還源․入廛垂手의 10단계로 동자가 심우를 하는 만행을 선화로 그려낸 것이다.
심우도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사찰을 가든 만나볼 수 있는 대웅전 벽화에 많이 그려져 있다. 그 내용은 소를 치는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났다가 돌아오는 만행의 과정을 선승이 自性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 인식하여 비유하였다.
선승이 본성을 찾고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목동의 만행 과정을 이에 묘사하였다. 심우에 비유 된 소는 선승이 찾고자 하는 본성이요, 목동은 수행자인 선승에 비유된다고 하겠다. 이에 목동의 만행 과정을 살펴보면, 첫 번째 소를 찾아 나서는「尋牛」이다.
망망한 풀 숲 헤치며 따라가 찾자니 茫茫撥草去追尋
물 넓고 산 먼데 길은 더욱이 험하네 水闊山遙路更深
힘 다하고 정신 지쳐 찾을 길 없는데 力盡神疲無處覓
단풍나무서 늦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但聞楓樹晩蟬吟
「尋牛」 4]
동자가 소를 찾으러 집을 나서는 길이다. 처음 길을 나서서는 소는 보이지 않고 산 깊이 덤불만 가득 한 곳에 가서 소를 찾기도 하고, 강을 건너기도 하며 소를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몸과 정신만 지쳐 갈뿐 찾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늦여름 매미소리 한 자락에 마음을 위로 받고 있는 동자이다.
수행자로 비유하면, 疑情을 일으켜 발심을 하는 초기 단계인 것이다. 아직 法이 무엇인지 수행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공부를 하여 득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만행에 나서는 것이다.
다음은 소의 발자욱을 발견하는「見跡」이다.
물가의 나무아래에 자취 많건만 水邊林下跡偏多
꽃다운 풀을 헤치고 보았는가? 芳草離披見也麽
비록 깊은 산 더 깊은 곳이라도 縱是深山更深處
하늘 덮히는 코를 어찌 감추랴? 遼天鼻孔怎藏也
「見跡」 5]
소를 찾기 위한 만행에서 소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소의 발자욱을 찾은 단계이다. 소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만행을 하다 보니, 단박에 찾을 수는 없어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얻은 것이다. 수행자가 찾고자 하는 본성의 자리를 어렴풋이 보게 되었으니, 일념으로 정진하면 의정의 실마리를 보게 된다는 상징적 단계이다.
다음은 소를 발견한 「見牛」이다.
금빛 꾀꼬리 가지 위서 온통 지저귀고 黃鶯枝上一聲聲
날씨 따스하니 언덕엔 버들이 푸르네 日暖風和岸柳靑
다만 이에 더 이상 회피 할 곳 없지만 只此更無廻避處
위풍당당한 쇠뿔은 그려내기 어려워라. 森森頭角畵難成
「見牛」 6]
소의 자취를 따라 가는 길은 금빛 꾀꼬리 지저귀며, 따스한 날씨에 푸른 버들 늘어진 언덕 이다. 이 모든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영원한 자리이다. 그곳에서 만난 소는 이제 더 이상 달아날 곳이 따로 없지만, 그렇다고 소가 한 손에 바로 잡혀 지지도 않는 상태이다.
동자의 만행이 여기에 이른 것은 수행자가 그간의 오랜 漸修를 통해 본성을 알아 차릴 수 있는 단계에 가까이 왔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아직은 무엇이 참된 본성인지 마음 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다. 다음은 소를 잡아서 고삐를 쥔 「得牛」이다.
힘과 정신을 다 쏟아 소를 잡았으나 竭盡精神獲得渠
마음과 힘 강해 끝내 제어키 어렵네 心强力壯卒難除
어느 땐 막 높은 산위 이르렀나하면 有時纔到高原上
다시 안개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네. 又入煙雲深處居
「得牛」 7]
득우는 소를 잡기는 하였으나, 힘이 강한 소를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소가 어느 때는 높은 산위에 있다가도, 느닷없이 안개구름 속에 들어간다. 수행자가 깨달음의 본체를 발견하긴 했지만, 그간의 三毒 貪․嗔․痴의 習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계로 번뇌 망상과 업장을 녹이기 위해 용맹정진 해야 하는 때이다. 다음은 소를 길들이는 과정인 「牧牛」이다.
채찍과 고삐를 늘 몸에서 떼지 못함은 鞭索時時不離身
맘대로 걸어 진애로 갈까 두려워서네 恐伊縱步入埃塵
장차 잘 길러내서 온순하게 된다면은 相將牧得純和也
고삐 매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 따르리. 羈鏁無拘自逐人
「牧牛」 8]
동자가 소를 붙잡아 소를 치는 단계이다. 붙잡았지만 자칫하면 놓쳐 버릴까봐 채찍과 고삐줄을 몸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소르 잘 길들인다면 그때는 채찍을 쓰거나 고삐를 잡아매는 일 없이도 온순하게 사람을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이는 수행자의 業을 바꾸는 대 용맹정진이 따라야 하는 시점이다.
붙잡은 소를 놓치게 되면, 그때는 다시 찾아 붙잡기 어려워지듯 공부를 증득 시켜야지 하던 공부를 중도에 폐기하면, 다시 하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다음은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騎牛歸家」이다.
소를 타고 길 따라 집으로 가노라니 騎牛迤邐欲還家
오랑캐 피리소리 저녁놀에 전송하네 羌笛聲聲送晩霞
한 박자 노래 한 가락의 무한한 뜻을 一拍一歌無限意
곡조를 아는 이가 어찌 말로 다할까? 知音何必鼓脣牙
「騎牛歸家」 9]
동자가 소를 찾아 잘 길들여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납게 날뛰지도 않고, 소 잔등에 올라 탄 동자는 구멍 없는 한자락 피리를 불어보니, 소와 ‘人牛一體’가 되어 만행에서 본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동자의 피리 소리 한 자락 한 자락에 실린 만행의 무한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말로 할 것 없을 터이지만, 누가 그 경지를 알고 또 말로 할 수 있겠는가?
동자가 불어보는 구멍 없는 피리는 현상적으로 보고 감지하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본성의 깨달음 소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음은 소는 없고 동자만 남은 「忘牛在人」이다.
소를 타고 이미 집으로 돌아오니 騎牛已得到家山
소는 간데없고 사람만 한가롭다 牛也空兮人也閑
붉은 해 높이 솟도록 외려 잠자니 紅日三竿猶作夢
채찍 부질없이 띠집에 던져 두네. 鞭繩空頓草堂間
「忘牛在人」 10]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만행을 통해 애써 찾은 소는 간데없고 동자만 남아 있다.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려야지, 배를 등에 메고 산으로 올라 갈 수 없는 이치이다. 소는 결국 집에 돌아오게 하는 도구였으니,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소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본래의 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본성을 찾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執着으로 본성이 익지 않은 자리이다. 이제는 소도 없고, 동자승도 없는 「人牛俱忘」이다.
채찍과 사람 소 모든 것이 다해 공 하니 鞭索人牛盡屬空
푸른 하늘 멀고 넓어 소식 통하기 어렵네 碧天遠闊信難通
붉은 화로 불꽃 위 어찌 눈을 용납 하랴? 紅爐焰上爭容雪
여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조사에 합치되네. 到此方能合祖宗
「人牛俱忘」 11]
동자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채찍, 사람, 소 모든 것을 잊고 텅 빈 空 즉, 不二의 圓象이다. 심우라는 객관적 대상인 소와 소를 찾는 주관적인 대상인 자기 자신이라는 我相을 떠난 자리이다. 여기에 몰록 ‘自他一如․自他不二’의 자리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返本還源」이다.
근원으로 돌아옴에 온갖 노력 기울였으나 返本還源已費功
어찌 당장에 장님 귀머거리 같단 말인가? 爭如直下若盲聾
암자 안에서 암자 앞 물건 보이지 않아도 庵中不見庵前物
물 절로 잔잔하고 꽃 절로 붉게 피어나리. 水自茫茫花自紅
「返本還源」 12]
본성을 찾아 근원으로 돌아 온 자리는 따로 보고 들을 것이 없는 장님 귀머거리처럼, 소도 자신도 텅빈 圓相에 있는 그대로 비친 동자의 묘사이다. 견성한 수행자가 암자에 들어 앉아 암자 앞의 한 물건도 따로 보고 듣지 않아도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절로 붉게 피어남을 알 듯,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참된 성품 즉 지혜를 증득한 경지인 것이다. 다음은 만행의 마지막 단계인 세상에 나아가 중생을 제도 하는 「入廛垂手」이다.
가슴을 드러내고 맨발로 자리에 들어서니 露胸跣足入廛來
흙먼지 더러운 곳이나 웃음 얼굴 가득하네 抹土塗灰笑滿顋
이는 신선의 참된 비결을 쓴 것이 아닌데 不用神仙眞秘訣
바로 고목으로 하여금 꽃을 피게 하는구나. 直敎枯木放花開
「入廛垂手」 13]
입전수수는 六道 14] 중에 하나인 중생의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上求菩提․下化衆生 15] 의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가슴을 드러내고 맨발로 거리에 나가니, 흙먼지 이는 더러운 곳이지만 사람들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하다. 이곳이 신선의 경지인 것이다.
신선의 별다른 비결을 쓴 것도 아닌데 고목에 꽃을 피게 하니 모든 중생을 제도 하는 華嚴極樂淨土 16]의 성불 단계로 만행은 귀결이 되어 진다.
이와 같이 확암선사의『심우송』을 통하여 佛家 禪僧의 萬行詩 認識 背景을 고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서 禪僧의 萬行詩 特質을 논의하기로 한다.
4]李喜益 註解, 『禪宗四部錄』, 寶蓮閣刊, 1972.
5] ~12] 상동
13] 李喜益 註解, 『禪宗四部錄』, 寶蓮閣刊, 1972.
14]六道 : 1. 天上, 2. 人間, 3. 阿修羅, 4. 餓鬼, 5. 畜生, 6. 地獄. 善惡의 業 Karma에 따라서 輪回하는 길.
15]上求菩提․下化衆生 :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보살핀다.’라는 의미이다. 불교 수행자의 指標.
16]華嚴極樂淨土 : 華嚴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 정토안락국.
3. 禪僧의 萬行詩 特質
상구보리․하화중생이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라면, 불교문학의 목표 역시 동일하다고 하겠다.
불교의 목적인 깨달음을 위한 정신적 수행 방법이 또한 禪이라면, 미혹과 번뇌로 인해 가려진 불성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불가 선승의 치열한 구도를 만행시를 통하여 一面 접근해 보고자 한다.
1. 以行喩禪의 求法과 2. 行禪不二의 任運을 만행시의 특질로 고찰하기로 한다.
(1) 以行喩禪의 求法
만행의 행을 통하여 선의 경지를 터득하고자 하는 구법의 내용이다. 걸을 줄 알면 머물지 말고 떠나라는 만행승의 행각이다. 먼저 구법승 慧超禪師 17]의 구법순례 만행기인 『往五天竺國傳』18]에서 「冬日在吐火羅逢雪述懷」를 본다.
차디찬 눈 내려 얼음 위로 쌓여 있고 冷雪牽氷合
찬 바람 땅을 쪼갤 듯 사납게 부네 寒風擘地烈
거대한 바단 얼어 흙손질한 단 같고 巨海凍墁壇
강줄기는 낭떨어지가 침식된 듯하네 江河凌崖囓
용문에는 폭포마져 얼어서 끊어졌고 龍門絶瀑布
물 어귀도 똬리 튼 뱀처럼 얼어있네 井口盤蛇結
횃불 들고 층층 언덕 올라 노래하며 伴火上陔歌
어떻게 저 파미르 고원을 넘어 갈까? 焉能度播蜜
「冬日在吐火羅逢雪述懷」 20]
혜초선사의 『왕오천축국전』에는 四首의 만행시가 실려 있다. 그 중 한 작품이다.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이 작품의 배경은 혜초의 구법순례 경로 21] 에서 어느 날 吐火羅 [토카리스탄]에서 눈을 만나 회포를 술회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혜초는 구법만행의 대장정을 펼치며 『왕오천축국전』에 토화라에 이르러 이곳의 풍습이나 종교 등에 대해 기록하고 소승불교를 배경으로 했음을 밝히며, 위의 작품을 남겼다. 22] 首聯에 보면, 주변의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알 수가 있다.
빙설의 대지에 부는 바람은 얼어붙은 땅을 쪼갤 듯이 불어 닥친다고 하였다. 만행의 고행, 구법을 위한 선승이 자신을 온통 던져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다. 頷聯에서도 마찬가지 바다도 강물도 모두 얼어붙은 이역만리에서 멈출 수 없는 길의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도 용문 폭포도 얼고,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井口도 얼어붙어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은, 추위 속에 밤낮없이 멈출 수 없는 구도의 길을 한밤 중 횃불을 밝혀 설산 빙하를 걷는 수행자는 저 파미르 고원을 어찌 넘어 갈까? 하며 순례자의 고단한 모습을 술회하고 있다.
넘어야 할 파미르 고원은 혜초선사에게 득도를 향한 만행 길 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唐新羅義湘傳」에 보이는 元曉 23] 의 만행에서 남겨진 오도송 24] 이다.
17]16세에 불교를 배우러 당나라에 간 혜초는 20세였던 723년 천축, 지금의 인도로 求法 여행을 떠났다. 배를 타고 도착해 천축의 다섯 나라를 거친 혜초는 걸어서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까지 40개국을 누비고 다녔다.
18]『往五天竺國傳』은 1906∼1909년 사이에 프랑스 학자 Pelliot에 의해 발굴 됨.
19]석지현, 『선시감상사전』에 ‘囓’이 ‘嚙’로 誤記 되어 있음.
20]志安 譯註, 『往五天竺國傳』, 불광출판사, 2010.
21]‘하빈의 묘동에서 출발 →불서국→ 사자국→ 동천축 →폐사리국→ 구시나국→ 피라날사국 → 마게타국→ 중천축구 수도 갈나급자→ 남천축국 →서천축국→ 사란달라→ 탁사국→ 신두고라국 →사란달라→ 가섭미라국→ 건타라국→ 오장국→ 구위국 →건타라국→ 람파국 →계빈국→ 사율국→ 범인국→ 토화라→ 파사→ 대식 →토화라→ 호밀국→ 소륵국 →구자국→ 언기국→ 돈황 →난주→ 장안 도착’ 志安 譯註, 『往五天竺國傳』, 불광출판사, 2010. 참조.
22]“호밀 왕은 군사가 적고 약해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없어서 대식의 관할 하에 있다. 해마다 비단 3,000필을 세금으로 보낸다. 주거지가 산골짜기여서 처소가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 옷은 가죽 외투와 모직 적삼이며, 왕은 비단과 모직 옷을 입는다. 빵과 보릿가루만을 먹는다. 이곳은 매우 추워 다른 나라들보다 추위가 훨씬 더 심하다. 언어도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양과 소가 나는데 아주 작고 크지 않다. 말과 노새도 있다. 스님들도 있고 절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왕과 수령 백성들 모두가 불교를 섬기며 외도에 귀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나라에는 외도가 없다. 남자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으나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주거지가 산속이기는 하나, 그 곳 산에는 나무와 물 그리고 풀조차 없다.
此胡蜜王 兵馬少弱 不能自護 見屬大寔所管 每年輸稅絹三千疋 住居山谷 處所狹小 百姓貧多 衣着皮裘氈衫 王着綾絹疊布 食唯餠麨土地極寒 甚於餘國 言音與諸國不同 所出羊牛 極小不大 亦有馬騾 有僧有寺 行小乘法 王及首領百姓等 總事佛 不歸外道 所以此國無外道 男並剪除鬚髮 女人在頭 住居山裏 其山無有樹水及於百草”참조. 志安 譯註, 『往五天竺國傳』, 불광출판사, 2010.
23]元曉(617∼686) :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 뛰어난 學僧이면서 無碍의 大聖師.
24] 「唐新羅義湘傳」에 기록 되어 있는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又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는 원효가 求法의 만행에서 得道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인해서 불가에서는 원효의 悟道頌으로 전해오고 있다.
마음이 일어나서 온갖 법이 일어나는 것이고 心生故種種法生
마음이 사라지니 감실과 무덤이 둘 아니라네 心滅故龕墳不二
삼계는 오직 마음에 달려 있고 三界唯心
만법은 오직 알음알이 일 뿐이네 萬法唯識
마음 바깥에 법이 따로 없으니 心外無法
어찌 별도로 구할게 있으리오? 胡用別求
「悟道頌」 26]
원효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며 의정을 풀지 못하여 출가를 하였다. 출가를 하여도 그 의심은 풀리지 않아 넒은 곳 많이 스승이 있을 入唐의 만행을 결심하였다. 근원을 찾아 근원으로 돌아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만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의상대사와 당나라 구법의 만행 길에서 하룻밤 길에서 유숙하며 ‘一切唯心造’의 깨달음을 증득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27] 이 세상 만법은 오직 한 마음 번뇌를 일으키는 데서 시작 된 것이지, 번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마음을 버리면 팔만사천가지 번뇌는 일순간 사라지는 것임을 만행 도중에 터득하였다.
三界 有情의 생존상태라는 것도 오직 마음이 일으킨 것이고, 모든 법은 그러한 마음을 일으킨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제자리에 있으면 이미 법은 구족된 것, 어찌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할 것이 있나? 하는 깨달음은 원효성사의 만행 길에서 증득 된 것이다. 그 길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며, 一身의 業을 참회하고, 千村萬落을 누비며 대중을 교화하던 만행의 無碍法을 펼치고 發心․ 修行․敎化를 일평생 만행을 통해 실천하였다. 다음은 逍遙禪師의 「賽一禪和之求․其五」에 드러난 구법만행이다.
가히 우습구나 소를 탄 그대여 可笑騎牛子
소 타고 있으며 다시 소를 찾네 騎牛更覓牛
그림자가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斫來無影樹
바닷 속 거품 다 태워 버리리라. 銷盡海中漚
「賽一禪和之求․其五」 29]
도가 어디에 있나 찾아 나서는 일선선사의 구법에 소요선사는 자신의 심우 만행정진에서 깨달은 한 소식을 전한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지만, 소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 타고 있으며, 타고 있는 그 사실을 미쳐 모르고 찾는 것이다. 이에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는다는 것이 이와 같다고 비유 하는 것이다.
이미 도가 마음속에 구족되어 있기에 찾아 나설 줄 아는 일이고, 벌써 그 찾으려는 소가 하는 일이거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선자여, 우습도다! 라고 하였다. 다음은 涵虛禪師 30] 의 「江上」이다.
강가서 들려오는 누구의 젓대소리인가? 聲來江上誰家笛
달빛 물 속에 비치고 인적도 끊겼는데 月照波心人絶跡
무슨 일로 이내 몸은 여기까지 와서는 何幸此身今到此
뱃전에 기대앉아 멀리 허공만 보는가? 倚船孤坐望虛碧
「江上」 31]
24] 「唐新羅義湘傳」에 기록 되어 있는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又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는 원효가 求法의 만행에서 得道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인해서 불가에서는 원효의 悟道頌으로 전해오고 있다.
25] 三界 : 欲界․色界․無色界.
26]『四庫全書․子部』, 「四卷 唐新羅義湘傳」.
27]백련선서간행회편, 『林間錄』(장경각, 1989) 참조.
28]逍遙(1562∼1649) : 조선 승려. 太能의 法號.
29]逍遙, 『韓國佛敎全書․逍遙堂集』,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30]涵虛禪師(1376∼1433) : 조선 高僧. 태조 이성계의 王師인 무학대사의 제자.
31]涵虛, 『韓國佛敎全書․涵虛堂得通和尙語錄』,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함허선사는 만행에서 어느 강가의 젓대 소리를 듣고 있다. 기구에서 한 밤중 강가에 배를 대고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듣고 있다. 승구에서 파도에 부서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구법의 실체를 일깨우고 있다.
강과 하늘은 두 개이면서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불가의 不二思想인 것이다.
전구에서 이러한 상황 속에 ‘나’라고 하는 我相을 인식하며, 결구에서 다시 허공을 바라다보는 ‘一切無一物’의 도리를 강가에서 一喝해보니, 마치 “그 누가 태고적의 줄 없는 거문고를 가져다가, 지금 이 구멍 없는 피리 소리에 화답을 할까?” 32] 라고 노래한 太古禪師 33] 의 無孔笛 소리가 만행구도 속에서 터져 나온다.
다음은 淸虛禪師 34] 의 「人境俱奪」이다.
하얀 배꽃 천만 조각 꽃잎이 梨花千萬片
맑고 터엉 빈 집에 날아 드네 飛入淸虛院
목동 피리 불며 앞산 지나나 牧笛過前山
사람과 소 모두 보이질 않네. 人牛俱不見
「人境俱奪」 35]
청허선사가 심우도 속에 몰록 들어간 無我禪의 경지이다. 臨濟禪師 36] 가 설 하신 근본적인 四料簡 37] 에 보면, “어떤 때는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으며, 어떤 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으며, 어떤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고, 어떤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38] 라고 하였다.
첫 번째는 만법 밖에 자기를 인정치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세계가 하나의 자신임을 映現 시키는 것이요,
세 번째 주객의 私見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요,
네 번째 주객의 각각의 견해를 그대로 두는 것이다.
청허선사는 만행의 구법에서 밖의 경계인 객관과 안의 경계인 주관을 모조리 지워 버린 진공의 경지인 ‘인경구탈’의 오도를 不離文字 하였다.
32] 「太古庵歌」 “誰將太古沒絃琴 應此今時無孔笛”, 太古, 『韓國佛敎全書․太古和尙語錄』,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33]太古禪師(1301∼1382) : 고려 승려, 우리나라 임제종의 초조.
34]淸虛禪師(1520∼1604) : 휴정의 법호. ‘一切 衆生悉有佛性’을 증득.
35]淸虛, 『韓國佛敎全書․淸虛堂集』,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36]臨濟禪師(?∼867) : 중국 당나라의 선승. 저서 『臨濟錄』.
37]당나라 임제선사가 『임제록』에서 機에 맞고 때에 맞게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교도한 네 가지 본보기.
38]『臨濟錄』“有時奪人不奪境 有時奪境不奪人 有時人境俱奪 有時人境俱不奪” 참조. 선림고경총서12, 장경각, 1989.
(2) 行禪不二의 任運
행과 선이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경지, 선가에서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任運 39] 騰騰․騰騰任運’이라고 말한다. 물이나 달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대로에 내 맡기고 그대로 받아 들여서 아무런 作爲 없음을 ‘無碍自在, 또는 任運無作’의 妙用이라고 한다. 진공묘유의 실체인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주 무착하여 임운 할 수 있다면 그 자리가 득도의 자리라고 하였다. 이에 무주․무착․임운의 행이 바로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 같은 운수행각 만행인 것이다.
그 자리를 또한 ‘照顧脚下’ 40]라 하였다. 수행의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지금 자신의 가장 가까이를 바라보는 일이다.
39]「寒山」 “一住寒山萬事休 更無雜念卦心頭 閑於石室題詩句 任運還同不繫舟” 寒山子, 『寒山子 詩集』, 경서원, 2005.
40]照顧脚下 : 禪家에서는 ‘照顧脚下’라고 하여 선방의 고무신 벗는 섬돌에 많이 써 붙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발을 바르게 벗어라’ 또는 ‘머리를 돌려 발 뒷꿈치 아래를 바라 보라’ 라는 이 단순한 말 속에는 불교 수행의 기본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수행의 觀法은 자신의 행동 혹은 생각 등을 관찰하는 것에 있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 즉 자신의 행위을 스스로 살펴 수행하는 것이다. 불가 수행의 관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을 관하든 자신의 그 순간의 識 또는 행위를 통해 참 나를 찾는 것이 수행이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金美善, 「佛家 禪詩의 美意識」, 『동방한문학』49집, 2011. 12. 참조.
이에 운수행각승의 임운 만행시를 청허선사의 「過古寺․二」에서 본다.
꽃이 지도록 스님은 문을 닫고 있으며 花落僧長閉
봄 찾은 나그네도 돌아 갈 줄 모르네 春尋客不歸
바람이 잠든 학 둥지 그림자를 흔들고 風搖巢鶴影
구름은 참선하는 스님 옷자락 적시네. 雲濕坐禪衣
「過古寺․二」 41]
청허선사가 봄날 만행을 떠났다. 기구에서는 오래된 옛 절에 들렀는데 수행 정진하는 절의 스님은 봄이 오는지 꽃이 지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임운 그대로 이다. 승구에서 만행 중인 나그네도 돌아갈 길도, 돌아갈 때도, 정해 있지도 기억하지도 않는 遮照同時 45] 의 임운이다.
아마도 문을 닫아건 스님도 나그네도 자신의 만행 한 일면의 반조인 듯하다. 이러한 임운의 묘용은 轉句, 바람이 잠든 학 둥지 그림자를 흔들고, 結句 구름이 참선하는 衲子의 禪衣를 적시는 경지로 드러났다. 이쯤이면 鐵牛가 獅子吼를 두려워하는 경지인가?
菩薩은 三昧에 들었을 때 설산에 앉아 코끼리 떼가 恒河江을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데 청허선사의 임운 만행이다. 다음은 浮休禪師 43] 의 「贈某禪子」이다.
스승 찾아 도 배움 별도로 있는 것 아니고 尋師學道別無他
다만 소 타고 스스로 집 돌아가는 것 이네 只在騎牛自到家
백척간두에서도 능히 활보 할 수만 있다면 百尺竿頭能闊步
수 많은 부처들도 눈앞 환영이 될 것 이네. 恒沙諸佛眼前花
「贈某禪子」 44]
부휴선사는 도를 구하려 만행을 통해 선지식을 參訪했으나, 결국 소를 타고 스스로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하였다. 은산철벽에서도 진일보하는 임운에 맡기는 것이 본래의 자리이며, 이렇게 무애하게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그대로 나아갈 수 있다면, 수많은 부처들은 다 환영이며 木佛은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는 禪機가 번득인다. 다음은 松桂禪師 45]의 「行脚僧」이다.
인간의 무한한 근심 다 흩어 버리려 散盡人間無限愁
바람처럼 이 몸 한가로이 자적하네 飄然身世任閑遊
백년토록 천지간에 표주박 풀어 놓고 百年天地一瓢釋
자연을 읆조리자니 흥 절로 한가하네. 詠月吟風興自悠
「行脚僧」 46]
송계선사가 행각하며 임운자재의 경지를 묘사하였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선사는 무한한 근심을 다 풀어버리려 바람처럼 자연의 법도에 맡겨 걸림 없이 자유자재한 임운의 경지를 말하였다. “홀로 행하며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7]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임의대로 흐르게 하는 경지에서 천지간에 바릿대 풀어놓고 무애가를 부르며 法喜禪悅에 가득하다. 다음은 雪潭禪師 48] 의 「訪芙蓉庵」이다.
산은 어진 사람에게 길을 열고 山開仁者路
물은 지혜로운 이 맘 씻어주네 水洗智人心
맑은 경쇠소리 어디서 들려오나? 淸磬從何處
작은 암자는 숲 속 가려 있겠지. 小庵隱樹林
「訪芙蓉庵」 49]
부용암을 찾아가는 운수행각에서 피어난 만행의 꽃 우담발화이다. 수행자는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어디에도 집착하는 바 없이 四時 만행을 떠난다. 흐르는 강물은 달려야할 일이 없고, 깜깜한 어둠은 옷 입을 일이 없고, 밝아 오는 새벽은 서두를 일이 없고, 물드는 단풍은 치장할 일이 없고, 하얗게 내린 눈은 빛깔을 원할 일이 없듯, 우리의 마음자리는 이미 구족되어 있는 것이다. 작은 바랑 하나 지고 산을 들어서는 마음, 물 따라 내 맡기는 임운의 발길 설담선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경쇠 소리를 알아차린다. 부용암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솔숲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이미 선사는 放下着! 만행을 통해 한마음 내려놓는다.
41]浮休禪師(1543~1615) : 조선 중기의 고승, 저서『청허당집』.
42]遮照同時 : 虛란 일체가 끊어진 雙遮를 의미하고, 明이란 일체를 비추어 다 살아나는 것으로서, 즉 雙照를 말한다. 虛가 明을 비추고 明이 虛를 비춰서 부정과 긍정인 遮照가 同時가 된다는 뜻. 우리에게 본래 갖추어진 자성의 묘한 작용이므로 마음의 힘으로써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의미.
43]浮休禪師(1543~1615) : 조선 중기의 고승.
44] 浮休, 『韓國佛敎全書․浮休堂大師集』,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45]松桂禪師(1684∼1765) : 조선 승려.
46] 松桂, 『韓國佛敎全書․松桂大師文集』,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47]법정 역, 『숫타니파타』, 이레, 2006.
48]雪潭禪師(1741∼1804) : 조선 승려, 鼎馹의 법호.
49]雪潭, 『韓國佛敎全書․雲潭林間錄』,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4. 萬行詩의 位相 및 맺음말
이상과 같이 「佛家 禪僧의 萬行詩 考察」을 하였다. 서론에서 제시한 연구범위․연구사 검토․연구 방향을 토대로 불가의 선승이 수행하는 일체의 행법 속에서 만행의 구도를 통한 오도시를 살펴보았다.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하여 ‘무주․무착’을 증득 하여야 그 자리가 본래 진면목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만행을 떠났고, 그러한 과정의 오도경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무주 무착의 행에서 나온 만행시 이다.
이러한 선승의 만행 결과로 빚어진 내용을 송나라 확암선사의 심우송에서 선가 만행시의 인식 배경을 검토하였다. 심우송은 심우․견적․견우․득우․목우․기우귀가․망우재인․인우구망․반본환원․입전수수의 10단계로 동자가 심우를 하는 만행을 선화로 그려내고 게송을 붙인 것이다. 그 내용은 소를 치는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났다가 돌아오는 만행 과정을 선승이 자성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 인식하여 비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선승의 치열한 구도의 만행시를 1. 以行喩禪의 求法과 2. 行禪不二의 任運을 만행시의 내용으로 고찰하여, 그 특질로 이행유선의 구법과 행선불이의 임운으로 밝혀 만행시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1. 이행유선의 구법에서는 혜초선사의 구법순례 만행기인 『왕오천축국전』에 실려 있는 만행시를 따라 실크로드를 넘은 듯하다. 이어 원효성사가 만행의 무애법을 펼치며 발심․수행․교화를 일평생 만행을 통해 실천한 ‘일체유심조’의 행에 절로 발심을 얻었다. 소요선사는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사람처럼, 도가 이미 마음속에 구족되어 있음을 만행 속 증득한 내용에서 짚어 볼 수 있었다. 함허선사는 무공적 소리가 만행구도 속에서 터져 나왔다. 청허선사는 만행을 통해 주관을 모조리 지워 버린 진공의 경지인 ‘인경구탈’의 오도를 불리문자의 경지에 드러내었음을 고찰하였다.
2. 행선불이의 임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그대로에 내 맡기고, 그대로 받아 들여서 아무런 작위 없음을 무애자재, 또는 임운무작 묘용이라고 하는 진공묘유의 실체를 遮照同時의 임운으로, 부휴선사의 은산철벽에서도 진일보하는 임운, 송계선사의 천지간에 바릿대 풀어놓고 무애가를 부르며 법희선열을 드러낸 임운으로 만행시 일면의 위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운담선사의 운수행각에서 만행의 꽃 우담발화를 피워낸 임운의 위상을 각각 짚어 볼 수 있었으니, 한문학의 많은 내용에 차지하는 불교문학은 매우 중요한 범위에 있는 대상이라 하겠다. 또한 그 안에서 불가 선승의 만행시는 항하사 속 하나의 모래알 같지만, 불교문학을 다각도로 접근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겠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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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松栢, 『禪與詩』, 臺北: 弘道書局, 民國65.
杜松栢, 『禪學與唐宋詩學』, 臺北: 黎明文化事業公司, 民國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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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桂, 『松桂大師文集』.
雲潭, 『雲潭林間錄』.
李喜益 註解, 『禪宗四部錄․十牛圖』, 寶蓮閣刊, 1972.
志安 譯註, 『往五天竺國傳』, 불광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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涵虛, 『涵虛堂得通和尙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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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庫全書․子部』 「四卷 唐新羅義湘傳」.
金美善, 「佛家 禪詩의 美意識」, 『동방한문학』49집, 동방한문학회, 2011.
투고일 2014.4.29 심사시작일 2014.5.8 심사완료일 2014.5.23
A Study of Buddhism Zen Priest(佛家 禪僧)'s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萬行詩)
Kim, Mi-seon
This study is as ⌜a study of Buddhism Zen Priest(佛家 禪僧)'s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萬行詩)⌟. The study range of this study was selected to leave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 through searching right road(求道) of finding true in walking in the manner of learning of Buddhism from effort all Buddhism Zen Priest who was on e of the four family of Daeseung (四家大乘). Zen poetry study results which revealed in view of study history didn't cover the much scope but a study of Buddhism Zen priest's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 much more didn't revealed real conditions.
‘Eungmusoju isenggisim (應無所住 而生其心)' means likely air decreasing of claude in empty sky so it produces mind of nothing staying. In order to do that it should realize to increase as muju muchak(‘無住’․‘無着’). This is the position of realizing of increasing from Zen ascetic exercises person. For this, Buddha said to "Do not devote yourself over 3 days under the same tree" If staying, tenacity takes place and if tenacity takes place, there are bringing forth the agony of 8 ten thousand and 4 thousands. Like this Zen priests who think 3 days devoting themselves about three months tranquil life and if tranquil life finishes, they depart to find true in walking. Through the practice of muju muchak, they search to good knowledge(善知識) and check their study themselves. This priest of finding true in walking called to wunsuhaenggakseung(雲水行脚僧).
In the Buddhism, when the master communicates his disciple, he teach Balwu(鉢盂) as the symbol of Jeonbop(傳法). It seemed that Zen priest of finding true in walking had on ly on e balwu in knapsack. If the knapsack was big, there was taking place the possession and tenacity so there were hindrance of ascetic exercises. Through study of results contents of Zen priest, in this study's research direction at first, I viewed Buddhism Zen priest's background of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 recognition from Simwusong( 尋牛頌)by Whuakamseonsa (廓庵禪師)in Song(宋) country. With this basis, I studied our nation Buddhism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 and I divided into two contents traits, both 1. desiring of Buddhism of Ihaengyuseon(以行喩禪) and 2. Imwun(任運) of Haengseonbuli(行禪不二). Finally I took aim that the phase of poems of finding true in walking by Zen priest in Buddhism which revealed in this direction study's point of an argument.
Keyword Zen Priest, Simwusong(尋牛頌), Whuakamseonsa(廓庵禪師), good knowledge(善知識),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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