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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家 禪詩의 美意識
金美善
目 次
1. 硏究의 範圍
2. 佛家 禪詩의 背景
3. 佛家 禪詩의 美意識
4. 맺음말
1. 硏究의 範圍
본 논고에서는 「佛家 禪詩의 美意識」1)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불가 선시를 남긴 내용의 근거가 될 수 있는 형성배경을 돌아보고 그 속에 드러난 다양한 미의식의 세계를 불교의 수행관법 중 하나인 照顧脚下에서 反觀의 美를 중심으로 연구 범위를 삼고자 한다.
‘佛家詩’와 ‘佛敎詩’란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혹은 혼용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佛家詩라고 하면 창작 주체가 승려인 詩僧이 된다. 佛家의 禪僧이 남긴 漢詩라는 말부터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게 된다. 종래로 불가의 선 수행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하여 ‘不立文字’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不立文字의 세계인 佛家에서 禪語의 位相을 찾는 일이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이러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佛家의 불립문자에 대한 입장을 짚어보면, 불가에서 불립문자로 禪의 세계를 표방하는 이유는 언어라는 어떠한 틀에 가두어 버리면 이미 생명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眞空妙有의 선의 세계는 어떠한 언어나 문자도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형식적인 틀도 거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의 수행세계와 언어 美學의 상관성은 不立文字이면서 不離文字의 관계성을 거부 할 수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시 속에 드러난 禪僧들의 美意識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 되어져야 할 문제이다. 선시 문학에 드러난 미의식은 또한 불가의 禪宗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러면서도 불가문학이 불가사상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그 원형을 상실할 우려도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필자는 불가의 득도의 경지인 不立文字의 경지로 가는 과정에서 不離文字로 언어의 美學을 추구하는 선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불가 선시의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修行 衲子들의 선시에 드러난 美意識을 고찰하여 불가의 많은 禪僧들이 남긴 禪詩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초로 삼고자 한다.
*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1) 본 학회에서 「韓國漢文學의 美學的接近(Ⅱ)」라는 기획 주제 아래 필자가 받은 발표문 제목은 「佛家漢詩의 美意識」이다. 이전까지의 佛敎漢詩에 대한 관심에서 佛家漢詩로 구체적으로 좁혀진 기획주제가 불가시에 대한 관심을 짐작케 한다. 아직 미개척 분야인 불가시의 내용이 우리 한문학의 범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한문학 연구에 있어서 불가시에 대한 관심은 지속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본 논고에서 이렇게 미개척 분야인 불가 한시의 미의식 이란 개념을 전개함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그간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선시의 내용에서 찾아 본 美의식을 바탕으로 「佛家禪詩의 美意識」으로 본 논고의 범위를 좁혔음을 밝혀 둔다. ‘佛家漢詩의 美意識’의 범위는 본 논고를 바탕으로 보충하여 후고로 미루기로 한다.
2. 佛家 禪詩의 背景
본고에서는 불가 선시의 미의식에서 反觀의 美意識을 연구범위로 하여 고찰할 것을 위의 연구범위에서 밝혔다. 이에 불가 선시에 드러난 전반적이 미의식의 특징을 조명하기 위하여 불가 선시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2)
禪이 본래 佛陀에서 연원하지만 하나로 크게 성황을 이룬 것은 중국에 와서 이다. 중국에 禪法을 전한 菩提達磨의 뒤를 이어서 6代를 내려와 6祖慧能에 이르러 비로소 禪宗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어 무수한 禪語錄에 의하여 禪文學이 이루어 졌다. 이러한 선문학의 세계에서 가장 주목 되어지는 분야는 禪詩라 할 수 있겠다.
中國의 禪詩는 禪宗의 형성과 함께 唐詩의 성황을 만나 발전하였다. 禪은 戒․定․慧 三學 가운데 하나로 중요시 되어 왔다. 부처님이 방대한 경전을 통하여 연기법을 설하신 내용은 3장 12분교3)로 나누는데 이러한 경전에 대단한 문학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 중에서 禪文學에 가까운 것으로 韻文形式을 하고 있는 應頌과 諷誦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뒤에 선종이 일어나면서 많은 어록이 만들어 지고 게송이 남겨지는 연원이 되었다.
이렇듯 깨달음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수레가 곧 禪이다. 이러한 선의 실천을 宗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중국의 선종이다. 당대의 선종의 사상적 근거는 선종에서 표방하는 보리달마의 「四句偈」4)이다.
문자로 세울 수 없어서 不立文字
경전 밖에 별도로 전하니 敎外別傳
곧 발로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성품을 보고 성불하라. 見性成佛
위의 달마의 게송은 선시의 미의식이 들어있는 대표적 게송이라고 할 수 있다. 달마는 “나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니 문자로 세울 수 없느니라.”고 하였으니 禪이란 언어문자의 뜻을 가지고 선을 말하거나 나타내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金剛經』 5)에도
무릇 모양 있는 것은 凡所有相
모두 허망한 것이니 皆是虛妄
만약 모든 모습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若見諸相非相
곧 부처를 볼 것이다 卽見如來
라고 하였다. 言語라는 相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였으니 말의 뜻을 가지고 그 말에 얽매여서는 禪의 도리를 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달마는 혜가에게 법을 전수하며 다음과 같은 「傳法偈」6)를 남겼다.
내가 본래 여기에 온 것은 吾本來玆土
법 전해 중생 제도키 위함이라 傳法求迷情
한 송이 꽃 다섯 잎이 피어나리니 一花開五葉
열매는 저절로 자연스레 맺히리라. 結果自然成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온 것은 불법을 널리 전파해서 중생들을 구제하자는 것으로 한 송이 꽃에서 다섯 개의 꽃잎이 피어나서 불법이 장차 크게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 송이의 꽃은 달마를 의미하고 다섯 개의 꽃잎은 달마 이후의 慧可·僧瓚·道信·弘忍·慧能을 의미하기도 하고 혜능 이후의 五家, 곧 위앙종·임제종·조동종·운문종·법안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달마의 禪偈야말로 선종의 사상을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로 숭앙 받고 있는 菩提達磨의 법을 구하기 위하여 慧可가 雪中斷臂를 하고 중국선종의 3조인 鑑智僧璨이 제자에게 게송으로 법을 전한다. 이렇게 禪思想의 要旨를 전하는데 있어 以心傳心의 禪語는 不離의 하나라 하겠다.
또한 승찬의 「信心銘」은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교사상과 1천 7백의 格外의 도리 公案전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종에서 不立文字라고 하였지만 求道 悟道의 방법과 정신을 제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언어문자라는 도구를 사용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4句偈의 「신심명」은 禪詩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당나라로 들어와 寒山이 지은 ‘寒山詩’는 본격적인 선시의 시초가 되고 있다.
寒山은 불립문자의 선의 경지를 전하기 위하여는 문자라는 시를 통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佛敎思想의 발달과 아울러 佛家 禪詩의 발달임을 논증 하여 주고 있다.
佛家禪詩는 中唐, 晩唐에 접어들며 크게 성함을 보여 당대의 훌륭한 선승들이 보여준 많은 게송을 보면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宋代에도 선시는 冶父에 의해 성행된 바, 그는 『金剛經頌』, 곧『 冶父頌』이라는 名作을 남겼다. 禪家의 所依 經典인『金剛經』을 宗密, 傅大士, 慧能, 野父, 宗鏡의 다섯 명의 대가가 해석한 책 『金剛經五家解』 그 중에서 야보는 파격적으로 선시로 주석을 붙였다.
이러한 中國佛家禪詩의 흐름이 고려 眞覺國師慧諶에게로 이어져 韓國佛家漢詩가 본격적으로 形成하게 되었다. 韓國佛家禪詩의 대표적 詩僧과 시세계에 드러난 美意識8)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大覺義天(1055~1101) 無爲自然→眞覺慧諶(1178~1234) 流麗禪→圓鑑冲止(1226~1292) 禪情→白雲景閑(1298~1374) 得道→太古普愚(1301~1382) 長篇詩歌→懶翁惠勤(1320~1376)臨濟風禪→涵虛得通(1376~1433)淸淨→碧松智嚴(1464~1534)禪智→虛應普雨(1515~1565)懷古→淸虛休靜(1520~1604)山情→靜觀一禪(1533~
1608)道家的禪→浮休善修(1543~1615)禪淨→靑梅印悟(1548~1623)公案→奇巖法堅(1552~1634)直觀→逍遙太能(1562~1649)自在→中觀海眼(1567~?)平常禪→雲谷冲徽(?~1613)仙家風→詠月淸學(1570~1654)訓古風→鞭羊彦機(1581~1644) 山水→翠微守初(1590~1668) 禪風→虛白明照(1593~1661) 絶唱→白谷處能(1617~1680)山水自然→月峰策憲(1624~?)無位眞人→栢庵性聰(1631~1700)耽味禪→雪巖秋鵬(1651~1706)無常→龍潭慥冠(1700~1762)照顧脚下→草衣意恂(1786~1866)禪茶→梵海覺岸(1820~1896)眞空妙有→石顚映湖(1870~1948)詩禪一揆→萬海龍雲(1879~1944)의 求法으로 우리나라 고려시대에서 근대까지 佛家의 禪詩僧과 선시에 드러난 미의식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불가 선시의 미의식에서 본고에서는 反觀의 美意識을 연구범위로 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먼저, 慧諶이 이은 우리나라 불가 한시의 맥락을 보면 삼국시대 中國으로부터 문물이 수용되면서 전래된 불교는 불가문학 발달을 촉진시키면서 불교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불교의 발달과 불가의 수행자들에 의해 불가 한시가 창작되었던 것이다.
2) 본 학회의 「韓國漢詩의 特徵과 展開Ⅲ」이라는 기획 주제에서 발표한 졸고, 「禪詩의 特徵과 展開樣相」(동방한문학 제42집, 동방한문학회, 2010.)에서 본 논고의 선시의 미의식에 대한 논지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선시의 전개과정을 참조 하였다.
3) 3장 12분교 : 經․律․論3장과 契經․ 應頌․ 記別․ 諷頌․ 無問自說․ 因緣․ 譬喩, 本事, 本生, 方廣, 未曾有法, 論議의 12분류를 말한다. 종래에 9분교였던 것을 뒤에 12분교로 나눈 것이다.
4) 達磨, 「四句偈」: 이 게송은 달마(? ∼528)조사의 시로 알려져 있다. 조사는 남인도 香至國의 셋째왕자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보리다라이며 동인도 승려 般若多羅(? ∼ 457)의 제자로 40년 동안 스승을 섬겼다고 한다.
5)『金剛經』 , 「如理實見分第五」
6) 達磨, 「傳法偈」.
7) 生存年代 未詳. 唐代著名 詩僧 居浙江 天台寒岩 因稱寒山子 或寒山 與國淸寺 僧拾得友善 好吟詩唱偈 有詩三百餘首 後人輯爲.(『寒山子詩集』三卷)
8) 석지현, 선시감상사전 과 동국역경원, 『韓國佛敎全書』를 토대로 정리하였음.
11세기 후반의 大覺國師 義天은 승려로서는 최초로 시문집을 남겨 다양성과 문예성을 갖춘 불교시의 새로운 전기를 이루었다. 이후 義天의 제자인 戒膺과 惠素를 비롯해서 시문에 능한 시승들이 출현하여 문사들과 교유하면서 시단의 한 분야를 구성하였으며, 무신집권기에 이르러서는 武臣들의 비호아래 선종이 불교의 주도권을 잡았고, 이것의 영향을 받아 더욱 풍성한 선시가 창작되었다.
이러한 불교시의 전통을 이어 高麗 중엽 知訥의 선사상을 배경으로 그의 법맥을 이은 慧諶으로부터 한국 선시의 본격적인 형성이 이루어졌다9).
그의 『無衣子詩集』은 선적 진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이러한 자기 反照를 통하여 함축과 상징, 초월과 역설의 선종적 시풍을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이전의 불교시와는 다른 시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이는 그의 선의 실천적 특성으로 이해 된다. 이렇게 高麗 佛家漢詩의 흐름은 慧諶으로부터 영향 받은 韓國 禪詩의 배경 속에는 ‘照顧脚下’의 禪旨가 곧 시로 표현된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
高麗에서 朝鮮으로의 불교의 흐름은 척불숭유정책으로 위축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척불정책의 역경 속에서 불가문학은 이론의 심화에 열중하여 역대 선승들의 맥락을 이어 불가 한시가 꾸준히 산출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선시는 본격적인 禪理詩나 示法詩보다는 자연취향의 禪趣詩나 생활시가 많은 것은 그 시대적 여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朝鮮初의 선시인으로는 먼저 無學의 제자인 涵虛 得通(1376~1433)을 들 수 있는데 송나라 선승 야보도천 못지않은 청정한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홍자성은 『菜根譚』에서 야보도천이『金剛經五家解』에 주석으로 쓴 禪句를 들어서 선가의 ‘應無所住而生其心’ 10)의 경지를 儒家에도 있음을 말하였다.
대 그림자 뜰 쓸어도 티끌 움직이지 않고 竹影掃階塵不動
달이 못 속을 뚫어도 물결은 흔적도 없네.月輸潭沼水無痕 11)
흐르는 물 급하여도 주위는 항상 고요하고 水流任急境常靜
꽃잎 번거롭게 떨어져도 마음 절로 한가하네.花落雖頻意自閑 12)
라고 하여 直觀的인 禪的 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야보도천의 조고각하의 관조 의식을 禪詩僧 涵虛의 「般若歌」13)에서 본다.
마음 내어 찾는 곳엔 원래 자취도 없고 有心求處元無迹
의심을 버린 마음에는 언제나 역력하네 不擬心時常歷歷
앉고 눕고 하는 가운데에 다니다 보면 於中坐臥及經行
모름지기 의심을 버려야 분명해 지리라.不須擬心要辨的
라고 하였으니 함허의 거침없는 禪旨가 선시 속에 표현되었다. 반야란 지혜를 일컬으니 지혜를 터득 하는 일은 사리 분별을 가지고 증득하는 것이 아니요, 모름지기 알음알이를 버리면 저절로 조고각하의 자리에 역력히 드러남을 말하였다. 行住坐臥 어느 순간이든 반야는 返照되어 짐을 설하였다.
다음으로는 虛應堂 普雨가 있다.
그는 조선 불교사에 빛나는 거승으로 禪敎一體說로 지눌 이래의 사상통일을 주장하였고, 이런 바탕 위에 유교의 理氣說까지 융섭시켜 일원적 논리를 전개하였던 사상가였다.
문집 『虛應堂集』에서 보는 것처럼 훌륭한 선시인으로 화엄사상을 바탕으로한 ‘一中一切多中一’의 不二의 선사상이 그의 선시에 미의식으로 돋보인다.
普雨의 뒤를 이어 淸虛休靜에서 한국 선시는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淸虛堂이전의 선시는 中國臨濟風선시의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淸虛에 와서 한국 선시는 臨濟風에서 벗어나 한국 특유의 서정풍으로 변모해 갔으며, 청허는 서정성이 강하고 자연과의 직관력이 뛰어났던 선승으로, 그를 통하여 선시가 탈속한 분위기를 지닌 觀照的禪詩風으로 정착되었다.
淸虛에 의해서 분출된 한국 선시의 맥은 17․18세기 조선 후기로 와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찬란하게 꽃피었으니 그 주역들은 靜觀一禪․四溟惟政․靑梅印悟․奇巖法堅․逍遙太能․中觀海眼․鞭羊彦機등의 詩僧이다.
西山이후 또 한 사람의 뛰어난 선시인은 無竟子秀이다. 그의 선시는 예지로 가득차 있으며 유려한 시상이 막힘이 없이 굽이치고 있어 조선조 중기 이후의 한국 선시에 千變萬化하는 예지의 관조적 미의식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후 艸衣의 선시에서 이러한 반관을 통한 詩禪一味의 선시가 태어나고, 후대로 와서 艸衣의 詩․禪․茶를 통하여 도달한 경지를 수용 계승한 맥을 꼽는다면, 梵海覺岸․石顚映湖․萬海龍雲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찰한 불가 선시의 형성 배경을 보면 佛家의 禪을 傳法하는데 ‘敎外別傳․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 하였지만 文字라고 하는 것을 통하지 않을 수 없는 不離文字였으니 이것이 바로 禪詩이다.
이러한 선시의 배경 속에서 美意識을 불가의 선풍 속에 면면히 전해져 온 ‘反觀’ 수행을 통한 反觀의 美意識을 觀物의 美意識·觀我의 美意識으로 대별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9) 印權煥, 『高麗時代佛敎詩의 硏究』 ,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3. 52쪽 참조.
10) 『金剛經』
11) 洪自誠, 『菜根譚』 63장. “高德云 竹影掃階塵不動 月輸穿沼水無痕”
12) 洪自誠, 『菜根譚』 63장. “吾儒云 水流任急境常靜 花落雖頻意自閑”
13) 涵虛, 『涵虛堂得通和尙語錄』 , 「般若歌」.
3. 佛家 禪詩의 美意識
불가 선시 속에 드러난 다양한 미의식의 세계를 본고에서는 ‘照顧脚下’ 14)에서 反觀의 美意識를 찾고자 한다. 먼저 불가 선시에 나타난 반관의 미의식에서 觀物反觀과 觀我反觀으로 대별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14) 照顧脚下: 禪家에서는 ‘照顧脚下’라고 하여 선방의 고무신 벗는 섬돌에 많이 써 붙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발을 바르게 벗어라' 또는 ‘머리를 돌려 발 뒷꿈치 아래를 바라 보라' 라는 이 단순한 말 속에는 불교 수행의 기본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수행의 觀法은 자신의 행동 혹은 생각 등을 관찰하는 것에 있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 즉 자신의 행위을 스스로 살펴 수행하는 것이다. 불가 수행의 관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을 관하든 자신의 그 순간의 識또는 행위를 통해 참 나를 찾는 것이 수행이다. 이것이 바로 ‘조고각하’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1) 觀物의 美意識
觀物反觀은 선시의 조고각하의 선 수행과정에서 객체의 물을 관조하여 眞如를 찾는 과정을 선시로 표현한 속에 드러난 미의식이다. 불교경전 능엄경에 觀物의 要諦를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너희들은 오히려 인연하는 마음으로 법을 듣고 있으니, 이 법도 인연일 뿐, 법의 본성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어찌 달만 잃었겠느냐. 손가락도 잃었느니라. 왜냐하면 가리킨 손가락을 밝은 달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었다고 하겠느냐. 밝음과 어둠도 모른다고 하리라.
왜냐하면 손가락 자체를 달의 밝은 성질로 여겨서, 밝고 어두운 두 성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5)
15) 능엄경 .
“汝等尙以緣心聽法 此法亦緣非得法性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若復觀指以爲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亦亡其指
何以故 以所標指爲明月故
豈唯亡指 亦復不識明之與暗
何以故 卽以指體爲月明性 明暗二性無所了故
汝亦如是 若以分別 我說法音爲汝心者 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
라고 하였으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은 그 손가락의 뜻이 달에 있고 말로써 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말이 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만을 귀담아 듣고 도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손가락만을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극한 도를 아는 사람은 항상 언어 밖의 소식을 묘하게 깨닫고 형상 이전의 실재를 얻게 된다는 설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무의자혜심의 「禪堂示衆」16)에서 관물의 미의식을 찾아 보기로 한다.
맑은 눈으로 푸른 산을 마주하니 碧眼對靑山
티끌도 그 사이에 용납되지 않네 塵不容其間
저절로 맑은 기운 뼛속에 이르니 自然淸到骨
어찌 다른 곳서 열반을 찾을까? 何更覓泥洹
무의자 혜심이 禪院에서 大衆에게 보인 禪偈이다.
시의 전반부에서 맑은 눈으로 청산을 마주 대하자니 그 사이에 티글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맑은 눈과 그 눈으로 비춰보는 대상 사이에 티끌 하나 끼어들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禪境을 말로 해석하는 인간의 언어란 모두 티글을 일으키는 부질없는 바람에 불과 한 것이다. 이곳이 言語道斷 不立文字의 경지인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이러한 선원에서 선정삼매에 들면 저절로 맑은 기운이 뼛속에 스며든다는 선의 체득을 설하였다. 이러한 경지는 뼛속으로 스미는 그 자체의 一味이거늘 그것을 말로 한다면 티끌 앞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맑은 기운으로 청산을 마주 대한 觀物의 관법에서 이미 涅槃樂의 法悅에 가득하니 어디 따로 극락을 찾을 것인가? 하는 觀物禪語의 미의식이 드러나 있다.
다음은 白雲景閑의 「居山· 三 」 17)이다.
골짜기의 흐르는 물은 쪽빛 물들인 것 같고 洞中流水如籃染
문 밖의 푸른 산은 그림으로 그릴 수 없네 門外靑山畵不成
산 빛과 물 소리는 그대로가 드러나건만 山色水聲全體現
그 속에서 누가 무생의 이치를 깨달을까? 個中誰是悟無生
물소리에 귀 씻고 산 빛에 눈 씻는 禪師의 삶이다.
시의 전반부에서 골짜기의 흐르는 물은 쪽빛을 물들여 놓은 듯 선사의 禪觀의 경지에 비쳐진 모습 그대로 이다. 문 밖의 푸른 산은 아무리 솜씨 좋은 화공이라 해도 그려 낼 수 없다고 하였으니 본래의 면목을 觀하는데 마음에 집착이 되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떠나게 됨을 설파하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산 빛과 물소리는 그대로 전체를 드러내고 있다.
無心의 경지에서 觀하면 모든 경계가 滅하는 경지인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그대로 아무런 경계 없이 전체를 드러내고 있건만 이 안에서 無生의 이치를 깨달으려 하는 마음조차도 버려야 하는 관물의 미의식을 읽을 수 있다.
다음은 太古普愚의 「愼齊」18)에서 照顧脚下觀物의 미의식을 찾아보기로 한다.
녹음방초에 봄비가 내리고 芳草三春雨
단풍나무엔 서리가 내리네 丹楓九月霜
마음 비우고 변화를 관하니 虛心觀物變
아무일 없이 모두가 일체네.無事但平等
보우는 수행이란 봄에는 봄 인줄 알고 가을에는 가을 인줄 아는 것이라 한다.
‘虛心觀物’의 수행을 통하여 ‘平常心是道’를 禪語로 전하는 속에 조고각하의 반조의 미의식이 들어 있다.
起句에서 봄이 되어 綠陰芳草에 봄비가 내리는 이치를 말하고, 承句에서는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고 찬 서리가 내리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觀照하였다.
이 모두는 虛心의 止觀에 如如히 드러나는 현상이고 이것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수행임을 말 하였다.
結句에서 마음을 비우고 모든 만물을 그대로 관하면 일체의 분별심을 떠나게 된다는 선수행의 결과를 선어로 표현한 내용에서 관물반관의 시적 미의식을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淸虛休靜의 「曲池」19)이다.
맑은 연못의 수면 텅 비어 있으니 淸潭一面虛
산 그림자 맑은 거울 위로 비치네 山影生明鏡
산의 새를 보고 물 속 고기를 보니 觀鳥又觀魚
날고 잠기는 것이 또한 본성대로네.飛潛亦本性
라고 하였다. 선가의 觀法 수행은 明鏡에 만상을 비춰보는 것이다.
起句에서 맑은 연못에 수면이 텅 비어있는 듯 고요하다고 하였으니 마음의 번뇌 망상이 끊어진 삼매의 경지이다. 承句에서 수면이 고요하니 주변의 삼란 만상이 그대로 비춰오니 그 자리를 그대로 관하는 것이 眞如를 바로 보는 것이라 하였다.
轉句에서 觀物의 대상을 鳥·魚에서 찾으니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속에 잠기는 이치가 그대로서 본성의 行인 것을 觀하였다.
다음은 龍潭慥冠의 「次贈聖學沙彌」20)이다.
성불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要知成佛道
꼭 육근 육진을 비춰보아라 恰恰照根塵
오늘의 일 하지 말 것이니 莫作今日事
옛사람 만나기 어렵느니라 難逢舊時人
개미의 꿈은 가련할 뿐이고 可憐蟻子夢
옥루의 봄 헛되이 져버렸네 虛負玉樓春
이렇게 서쪽으로 가는 길에 且持西歸路
홍련 덕수 물가에 피어나리. 蓮紅德水濱
성학 사미승에게 주는 시이다. 덕수물가의 紅蓮을 법제자에게 觀物의 수행 대상으로 비유하였다.
사미승은 출가를 하여 아직 구족계를 수계하지 못한 어린 승려를 말하니 용담은 당부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으리라. 성불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육근 육진을 返照하라고 하였다.
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이 청정하면 色聲香味觸法의 육진이 人身에 들어가 육근을 혼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육진을 떨쳐 육근이 청정하면 그 자리가 성불자리인 것이다.
성불로 가는 서방극락정토 길에 한갓 개미의 꿈을 꾸거나 백옥루의 지나는 봄에 한눈 팔고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말하니 이렇게 수행하다보면 한 송이 홍련이 덕수 물가에 피어나리라 했다.
중국 선가의 公案 중에 덕산스님의 일화를 들어보면 덕산 스님은 금강경을 항상 강설하였는데 길가의 떡 파는 노파가 금강경 뜻을 묻는 것에 답을 하지 못하고 그 노파가 알려주는 龍潭崇信에게 가서 귀의해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붉은 연꽃이 덕수 물가에 피어나리라고 하였으니 부질없는 꿈 져버리고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내는 수행을 할 것을 당부하는 善知識의 가르침을 불리문자인 언어로 전함에 선시에 들어 있는 관물의 미의식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위와 같이 객체의 물을 관조하여 眞如를 찾는 과정을 선시로 표현한 속에 드러난 관물의 미의식에서 찾아 보았다. 다음에서는 관아의 미의식을 고찰하기로 한다.
16) 慧諶, 『無衣子詩集』 , 「禪堂示衆」.
17) 白雲, 『白雲和尙語錄』 , 「居山·三」.
18) 普愚, 『太古和尙語錄』 , 「愼齊」.
19) 淸虛, 『淸虛堂集』 , 「曲池」.
20) 慥冠, 『龍潭集』 , 「次贈聖學沙彌」.
(2) 觀我의 美意識
觀我反觀은 자신을 통해 진여의 깨달을 찾는 止觀의 과정을 선시를 통해 설한 내용이다.
자신을 禪定智慧를 균등하게 담는 수행법으로 물이 그치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치듯 모든 번뇌를 그치는 것이고 그 속에서 觀은 자신의 본래 마음을 관찰하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것을 말한다.
초기 불교부터의 수행법으로서 천태종의 개창자인 智顗21)는「摩訶止觀」에서 止觀의 종류를 漸次止觀, 不定止觀, 圓頓止觀의 3가지로 나누는 등 지관의 수행법을 설하였다.
불교경전 『觀無量壽經』에서 서방극락 세계를 관하는 방법으로 13가지의 관법22)을 설하였다.
이와 같은 13觀法에 의해 무량겁 동안 더럽혀진 생사의 죄를 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禪家의 중요한 관법수행이다. 여기 13관법 중두번째 水想觀은 맑은 물을 보고 물을 변화시켜 유리와 같은 정토의 대지를 관하는 관법으로 물을 본다는 것은 止觀의 수행이며 觀我觀法임을 선시의 미의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觀我觀法의 선수행이 선시에 드러난 미의식으로 고려때 無衣子慧諶선시 「對影」23)을 본다.
연못가에 홀로 나와 앉아 있자니 池邊獨自坐
연못 속에서 우연히 스님 만났네 池底偶逢僧
묵묵히 바라보며 미소만 짓는 건 默默笑相視
말 할 것 없음 그대 알아서 이네. 知君語不應
『增一阿含經』에서 “진리에 공양하는 사람은 즉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요, 진리를 본 사람은 곧 나를 본 것이니라. 이미 진리가 있으면 내가 있느리라.”24) 라고 하였다.
즉 삼라만상의 萬法을 관하는 것은 곧 자신을 관하는 것이요. 삼라만상의 법을 아는 사람은 곧 나를 아는 것이다. 무의자 스님은 연못가에 홀로 앉아 水想觀의 삼매에 들어 있다.
연못속에서 우연히 스님을 만나니 물속 스님과는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이 도리를 안다면 萬法歸一自他一如의 觀法에서 無心一道의 禪悟의 경지를 어찌 허공에 그리겠는가? 이렇듯 본래 禪旨는 말로 할 수 없으니 不立文字라고 하였다.
혜심은 물 속 자신을 들여다보고 以心傳心의 三昧경지에서 자신을 照顧脚下하고 있는 미의식이 그의 선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음은 백운경한의 「居山·十一」25)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니 飢來喫食困來眠
한 생각 가라앉아 모든 경계 한가롭네 一種平懷萬境閑
시비를 가져 와서 날 분별하지 말게나 莫把是非來辨我
뜬세상의 인간사는 간섭하지 않는다네. 浮生人事不相干
백운화상은 시의 전반부에서 배고파오면 밥 먹고 곤해지면 잠을 청하는 자체를 觀我觀法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관조하여 모든 경계를 떠나버리면 마치 하나의 파도가 쉬어 온 바다의 물결이 쉬어지듯 한 생각 쉬어 모든 경계가 저절로 쉬어 진다고 하였다.
시의 후반부에서 어떠한 시비에도 망상을 일으키지 말 것이고 또한 덧없는 번뇌 망상을 쉬어 마음을 滅하는 觀我를 설하였다. 이에 백운의 선시에서 無念無想의 관법을 자신을 관조하는 미의식으로 표현한 선어를 고찰하였다.
21) 中國天台宗의 開祖. 자는 德安속성은 陳. 中國南北朝시대의 승려. 약 10년 도안 천태산에서 修道하였고 隋煬帝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智者大師의 호를 받았음. 著書 摩訶止觀 이 있음.
22) 13觀法은 다음과 같다.
① 日想觀: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정토의 존재와 아름다움, 자기 죄업을 관함.
② 水想觀: 맑은 물을 보고 물을 변화시켜 유리와 같은 정토의 대지를 관함.
③ 寶地觀: 유리와 대지 위에 있는 황금의 길, 누각 등을 관함.
④ 寶樹觀: 정토에 있는 칠보의 나무와 그 나무로부터 나오는 광명을 관함.
⑤ 寶池觀: 여덟 가지 공덕수가 충만한 칠보의 연못을 관하고, 그 물이 흘러 개울이 되고, 연화의 꽃이 피고, 흐르는 물소리는 무상 무아의 법을 설하고 있음을 관함.
⑥ 寶樓觀: 정토의 칠보 누각에서 천인이 연주하는 음악이 모두 삼보를 염하도록 설하고 있음을 관함.
⑦ 華座觀: 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좌가 찬란하게 정토를 비추고 있음을 관함.
⑧ 像想觀: 하나의 큰 연화 위에 빛이 찬란한 아미타불의 앉아 계신 모습을 관함.
⑨ 眞身觀: 아미타불의 상호에서 광명이 비춰 중생을 섭수하고 계심을 관함.
⑩ 觀音觀: 관세음보살의 몸이 광명으로 빛나는 영락을 두루고 있음을 관함.
⑪ 勢至觀: 아미타불, 관음, 세지의 3존이 정토에 모여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며 고통 받는 중생을 인도 하시는 것을 관함.
⑫ 普觀: 불보살이 허공에 가득한 정토에 왕생한 것을 관함.
⑬ 雜想觀: 잡다한 불신을 관하는 것으로 정토의 보배 연못에 있는 불상이 시방세계에 몸을 변현 시켜 여러 가지 몸으로 일체를 교화함을 관하는 것이다.
23) 慧諶, 『無衣子詩集』 , 「對影」.
24)『 增一阿含經』 . “其有供養法恭敬我己其觀法者觀我其有法有我”
25) 白雲, 『白雲和尙語錄』 , 「居山·十一」.
다음은 용담조관의 「贈濶師之求」26)에 드러난 관아관물의 미의식이다.
복성공부는 無漏緣27)에 달려 있으니 復性工夫在靜緣
가히 무루의 법과 조사선을 관하라 可觀無漏祖師禪
마음을 바루어 부침을 여워 버리면 凝心倘得離沈棹
제불이 어찌하여 현전치 않으리오? 諸佛如何不現前
공자의 제자 안연이 克己復禮28)에 대한 질문을 하자 공자는 四勿29)로 대답을 해준다.
용담선사는 闊師스님에게 성품을 회복하는 공부를 마음을 고요히 하여 청정한 법신을 회복할 것을 말하며 無漏法과 祖師禪을 觀法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무루법은 번뇌의 때를여윈 청정한 법을 말하며 三乘의 성인이 얻는 戒·定·慧와 열반을 말한다.
이러한 청정한 法身을 회복하면 生滅또한 벗어날 것이니 무루법을 관하여 復性을 하라고 한다.
또한 祖師禪을 觀할 것을 당부하니 조사선을 如來禪이라고 하며 不立文字 敎外別傳의 祖師가 傳來한 禪을 말한다. 佛性을 회복하는 공부 방법으로 이렇게 자신의 성품을 反觀함에 무루법과 조선선의 방편을 제시하였으니 유가의 학업으로 克己復禮의 수신 덕목을 닦아 무루법 조사선의 관법으로 불성을 회복하고자 함이 곧 바로 佛家의 사상이라 할 수있고 선시에 드러난 관아관물의 미의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용담조관의 「臨水偶吟」30)이다.
걸어 나가 시냇가에 닿으니 步出臨溪上
맑은 물 쉬지 않고 흐르네 淸波逝不休
가만 보니 머무르는바 없고 細觀無所住
천지는 하나의 물거품이어라.天地一浮漚
불교의 13관법 수행 중의 하나인 水想觀法을 통한 선사의 수행관을 찾아본다.
참선의 여가에 行禪이다. 걸어서 물가에 이르니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니 그 자체가 삼라만상의 본연의 자리인 것이다. 물속을 들여다보며 바로 자신을 관한다. 관아관법에서 머무는바 없는 자리의 無常을 바라보니 이러한 무상 속에서 무엇을 꿈꾼단 말인가? 바로 천지간 모든 만물은 흐르는 물위에 잠시 생겼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물거품인 것이다.
용담선사는 이러한 선의 이치를 觀하여 언어로 남겼으니 그 속에서 선시의 미의식을 또한 찾아 낸다.
다음은 용담조관의 「送屹上人入禪」31)이다.
고요히 앉아 마음을 관하니 靜坐觀心地
허공 또한 하나의 티끌이네 虛空亦是塵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을 本來無一物
안 연후 도에 가까워지리라. 然後道方親
용담선사는 起句에서 靜觀을 말하였다.
고요한 자리는 본래의 자리, 어느 무엇도 일으키지 않은 진여의 자리이다.
承句에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觀我하니 천지만물도 보이지 않는 티끌에 불과한 것이다. 본래 이러한 관아관법이 진여를 찾는 길이고 본래면목을 아는 길이라 하였다.
禪定에 드는 일은 본래 한물건도 없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니 여기에는 바로 나라고 하는 것도 없는 것이기에 觀我觀法을 통하여 無我의 道에 가까이 간다 하였다.
이와 같이 詩僧의 선시를 통해 선가의 外的 사실을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함에 ‘照顧脚下 ’ 즉 ‘反觀’을 바탕으로 한 미의식을 觀物觀法·觀我觀法으로 선가의 시세계에 드러난 美意識의 일면을 고찰하였다.
26) 慥冠, 『龍潭集』 , 「贈濶師之求」.
27) 無漏緣: 98隨眠가운데 滅·道2諦에 속하는 6惑은 무루법을 연하는 것으로 無漏緣이라 이름 한다. 그 밖의 92隨眠은 모두 유루법을 연하므로 有漏緣이라고 이름 한다.
28) 『論語』 「顔淵」.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29) 『論語』 「顔淵」.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請事斯語矣”
30) 慥冠, 『龍潭集』 , 「臨水偶吟」.
31) 慥冠, 『龍潭集』 , 「送屹上人入禪」.
5. 맺음말
위와 같이 佛家 禪詩의 美意識을 고찰하였다. 논의 된 내용을 정리하고 후고의 문제를 제기하여 맺음말로 삼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불가 선시의 미의식에서 反觀의 美意識을 연구범위로 하여 고찰할 것을 연구범위에서 밝혔다. 이에 불가 선시에 드러난 전반적이 미의식의 특징을 조명하기 위하여 불가 선시의 배경을 한국 佛家의 禪僧의 法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에 선시를 이룬 禪詩僧과 그들의 선시 속에 드러난 미의식의 특징을 검토하여 본고에서 그 특징 중 반관의 미의식을 연구 범위로 하였다.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교사상과 1천 7백의 格外의 도리 公案 전체가 불립문자의 宗旨에서 문자를 떠나지 못한 결과물로 남겨진 것이다. 선종에서 不立文字라고 하였지만 求道 悟道의 방법과 정신을 제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언어문자라는 도구를 사용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불가의 많은 선사들이 남긴 선시의 자취를 들여다 보니 중국 선종의 시조로 숭앙 받고 있는 菩提達磨로부터 慧可․僧璨이 제자에게 게송으로 법을 전하였다. 여기서 得道의 경지를 언어라는 틀에 가두어 버리면 이미 생명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불립문자라고 하였지만 언어를 떠날 수 없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眞空妙有의 선의 세계에서 어떠한 언어나 문자도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형식적인 틀도 거부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의 선의 세계와 언어 美學의 상관성은 不離文字의 관계성을 거부 할 수가 없었음을 고찰 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선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시 속에 드러난 禪僧들의 美意識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 되어져야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불가 선승의 照顧脚下의 기초 수행 관법을 통한 선시와 禪의 오도의 경지를 시를 통해 말한 미의식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우선 우리나라 불가 선수행사상이 선시에 투영된 내용을 ‘照顧脚下’의 불가 관법 수행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不立文字 · 敎外別傳 · 直指人心 · 見性成佛’의 경계를 표출하였던 禪의 입장에서 ‘平常心是道’의 자연스러운 조고각하 반관의 수행관을 관물관아 관아관물의 미의식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① 觀物의 美意識에서 선시 속에서 선가의 外的 사실을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함에 ‘照顧脚下’ 즉 ‘反觀’을 바탕으로 한 미의식을 볼 수 있었다. 불립문자가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不着文字의 뜻이지, 不用文字는 아니라는 관점을 통하여 문자로 말미암은 장애를 일으키지 않고 그 妙理를 전달한 선시이다. ‘虛心觀物’의 수행을 통하여 ‘平常心是道’를 禪語로 전하는 속에 조고각하 관물의 미의식이 들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② 觀我의 美意識에서 觀我反觀은 자신을 통해 진여의 깨달음을 찾는 止觀의 과정을 선시를 통해 설한 내용임을 고찰하였다. 禪定에 드는 일은 본래 한물건도 없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다. 여기에는 바로 나라고 하는 것도 없는 것이니 觀我觀法을 통하여 無我의 道를 증득한 禪語의 悟道詩에서 관아의 미의식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이 ‘照顧脚下’의 선수행을 통해 남긴 禪語에서 불가의 禪詩에 드러난 美意識으로 반관의 미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본 논고를 계기로 이외의 불가 선시에 드러난 미의식의 특징을 폭넓게 고찰하는 범위는 후고의 과제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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