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日村居
-李烓(이계)
斗屋炊煙暑氣烘(두옥취연서기홍) : 오두막에서 밥짓는 연기 더운 기운 쬐는 듯 하여
樹陰箕坐待遙風(수음기좌대요풍) : 나무그늘 밑에 두 다리 뻗고 앉아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기다리네
浮雲自作他山雨(부운자작타산우) : 구름은 다른 산에 비 뿌리고
返照俄成薄暮虹(반조아성박모홍) : 되비치는 빛은 문득 황혼 무지개를 만드네.
過客不來談世事(과객불래담세사) : 나그네 오지 않아도 세상사 이야기하고
野人相見念農功(야인상견념농공) : 시골 사람 만나면 농삿일 생각한다.
前溪水淺漁梁涸(전계수천어량학) : 앞 개울 물 얕아 통발에 물 마르니
白鷺飜飛占別叢(백로번비점별총) : 백로는 다시 날아 다른 떨기 차지하네
涸:물마를 학 ① 물이 마르다 ② 물을 말리다 ③ 막다 ④ 엄하다
虹 무지개 홍 ① 무지개 ② 어지럽히다 ③ 흐트러짐 ④ 기(旗)
[서예 습작]
이계 (희원(熙遠), 명고(鳴皐))
1603(선조 36)∼1642(인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원(熙遠), 호는 명고(鳴皐). 효령대군 보(孝寧大君補)의 8대손이며, 경율(景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愖)이고, 아버지는 사인(舍人) 진영(晉英)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지중추부사 식(湜)의 딸이다.
내용
1621년(광해군 13) 유학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4년(인조 2) 사정에 출사하였으며,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637년 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 1638년 수찬(修撰)·집의, 1639년 필선·사간 등을 지냈다. 그는 간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주화파로서 척화파 김상헌(金尙憲) 등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다.
1641년말 선천부사로 있을 때에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가 청나라에 발각되어 의주에 구금, 청나라 장군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으로 처형을 받게 되자 구명책으로 최명길(崔鳴吉)·이경여(李敬輿)·신익성(申翊聖)·
이명한(李明漢) 등이 명나라와 밀통한다는 사실과 또 우리 나라의 음사(陰事) 12조를 고하였다.
청나라 장군은 이 사람이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하고 우리 나라에서 처단하도록 연락하여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정석문(鄭錫文)을 보내어 1642년에 그를 참수하였다. 문장과 시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소대기년(昭代紀年)』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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