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일본 > 247

[가마쿠라 막부 시대-비구니 쇼군이라 불린 여인]호조 마사코(北條 政子)

호조 마사코 호조 마사코(일본어: 北條 政子, 호엔(保元) 2년(1157년) - 가오(嘉應) 원년 음력 7월 11일(1225년 8월 16일))는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92~1333년(고려 23대고종 원년~ 27대 충숙왕 18년)] 초기의 여성이다.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정실 부인으로, 이즈 국(伊豆國)의 호족이자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싯켄(執權)이 된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의 맏딸이다. 요리토모와의 사이에 요리이에(賴家), 사네토모(實朝) 두 아들과 오오히메(大姬), 산만히메(三幡姬)의 두 딸을 두었고, 형제자매로는 무네토키(宗時), 요시토키(義時), 도키후사(時房), 아와노쓰보네(阿波局), 도키코(時子) 등이 있다. 이즈의 유인..

[도쿠가와(에도) 막부 설립의 계기가 된 전투]세키가하라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일본어: 関ヶ原の戦い세키가하라노 다타카이[*])는 1600년 음력 9월 15일(10월 21일) 일본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일어난 유명한 전투이다. [읽기 전에 참고할 내용] 이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서군) 편에서 싸운 모리 데루모토는 죠수번의 번조,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쓰마 번의 초대 번주 시마즈 이에히사의 아버지이며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죽게 한 인물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두 가문의 후손들이 1868년에 일어난 메이지 유신의 주도 세력이라는 점이다. 이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뒤 268년 만에 도쿠가와 가에게 복수한 것도 된다. 1592년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 편에 서서 싸운 주력 가문-모리 가, 시마즈 가-의 후손들이 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

[메이지유신의 핵심 역할을 한 사쓰마 번을 부강하게 만든 번주]시마즈 나리아키라

이치키 시로에 의해 찍힌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다게레오타이프 (1857년) Shimazu Nariakira 시마즈 나리아키라(일본어: 島津斉彬, 분카 6년 ~ 안세이 5년)는 에도 시대 후기부터 막말까지의 도자마 다이묘이자 사쓰마번(현 일본 가고시마현)의 제11대 번주 (재임:1851년 ~ 1858년))이다. 시마즈 가문의 제28대 당주. 사쓰마 번의 부국강병을 성공시킨 명군으로 평가받았다. 막말사현후 중 한명.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한 막말의 인재를 길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April 28, 1809 – August 24, 1858) was a Japanese feudal lord (daimyō) of the Edo period, the 28th in the line of Shimazu clan lor..

[전국시대 : 주군 오다노부나가를 배신해 죽게한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 細川ガラシャ (1563년 ~ 1600년 8월 25일, 음력 7월 17일) 1. 개요 져야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 되고 사람도 사람이 된다. (散りぬべき 時知りてこそ 世の中の 花も花なれ 人も人なれ) - 가라샤의 사세구 일본 전국시대 인물 아케치 미츠히데의 셋째 딸로 원래 이름은 타마코(玉子). 후에 가톨릭에 귀의해 가라샤(ガラシャ[1])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현재와 달리 혼인 후에도 부인은 원래 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크리스천 중에서는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있어 가라샤도 남편의 성을 따랐다. 그래서 아케치 타마코, 호소카와 가라샤로 구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전국시대의 소문난 미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갖추고..

[오키나와 전투-미군에게 항전하다가 권총 자살한 인물]오타 미노루(大田 実,Minoru Ōta)

오타 미노루( 大田 実 , 1891년 4월 7일 ~ 1945년 6월 13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제국 해군의 군인이다 오키나와 전투-오로쿠 반도 지역-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전사했을때 계급은 해군 소장이며 사후 해군 중장으로 추서되었다.[위키백과] [Minoru Ōta (大田 実, Ōta Minoru, 7 April 1891 – 13 June 1945) was an admiral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during World War II, and the final commander of the Japanese naval forces defending the Oroku Peninsula during the Battle of Okinawa.] Japanes..

[오키나와 전투-사령관의 명령으로 할복을 못하고 미군에게 포로가 된 인물]야하라 히로미치(八原 博通, Hiromichi Yahara)

야하라 히로미치 대령 야하라 히로미치(일본어: 八原 博通, 1902년 10월 2일 ~ 1981년 5월 7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오키나와 전투 당시에 일본군의 고급 참모로 활약했다.[was the senior staff officer in charge of operations of the 32nd Japanese Army at Okinawa during the American invasion of that island during World War II.] 1902년 돗토리현의 요나고시에서 태어나 최연소로 일본 육군대학에 입학하였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미국에 주재한 경험이 있어서, 대전국인 미국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시에는 일본 육군 제15군 참모로서 버마 (지금의 ..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까지 시종장으로 보좌한 인물]도쿠다이지 사네쓰네(徳大寺実則)

도쿠다이지 사네쓰네(일본어: 徳大寺実則, 1840년 1월 10일(덴포 10년 12월 6일) ~ 1919년(다이쇼 8년) 6월 4일)는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활동한 공경(公卿)이자 관료이다. 메이지 천황의 시종장을 역임하였다.[a Japanese statesman and Lord Keeper of the Privy Seal of Japan in the Meiji period.] 생애 [Tokydaiji Sanetsune was born to a branch of the Fujiwara court nobility in Kyoto. His father was Tokudaiji Kin'ito, and his brother was Saionji Kinmochi, later Prime Minister of Ja..

[메이지 천황의 생모]나카야마 요시코[中山慶子]

나카야마 요시코[中山慶子] 1836년 1월 15일 ~ 1907년 10월 5일 (71세) 고메이 덴노의 측실(후궁)이자, 일본의 근대화 시대를 이끌었던 메이지 덴노의 친어머니이다. 아버지는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걸쳐 공가, 정치가였으며 메이지 정부의 의정이기도 했던 나카야마 타다야스(中山 忠能)이고, 어머니는 현재 나가사키현 부근의 번이었던 히라도 번(平戸藩)의 번주 마츠우라 키요시의 11녀인 마츠우라 아이코(松浦 愛子)이다. 2. 생애 1836년, 교토의 이시야쿠시(石薬師)에서 태어났다. 17세가 되었을 때 전시(典侍)로 궁중에 들어가게 되면서 '아에(安栄)'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후, 고메이 덴노의 총애를 얻어 회임해서 1852년 11월 3일 친정 나카야마 저택에서 황자이자 훗날 메..

[메이지유신 정부군에게 참살당한 신센구미의 사실상 창시자]곤도 이사미(近藤勇)

곤도 이사미(일본어: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년 11월 9일 ~ 1868년 5월 17일)는 일본 신센구미의 국장이다. 이사미는 통칭으로, 휘는 마사요시(昌宜)이다. 게이오 4년(1868년)부터는 오쿠보 쓰요시(大久保剛)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이후 오쿠보 야마토(大久保大和)라 칭하였다. Birthplace of Kondo Isami in Chōfu 농부 미야카와 규지로와 어머니 미야카와 미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적 이름은 가쓰고로(勝五郎)였다. 출신지는 무사시노쿠니 다마 군으로, 지금의 도쿄도 조후시에 해당한다. 가에이 원년(1849년), 천연이심류 검술 도장인 시위관에 입문하였다. 도장을 운영하던 곤도 슈스케는 이사미의 실력을 인정하여, "천연이심류를 이사미가 계승하게 하고 싶다"고..

[에도시대 말기 조직된 친막부 무사 조직]신센구미(新選組)

신센구미(일본어: 新選組)는 에도시대 말기인 1863년에 조직된 무사 조직이다. 원래는 교토로 가는 쇼군의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나 이후 교토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웠다. 이후 막부 체제가 붕괴하자 막부군의 일원으로 정부군에 저항하는 무진 전쟁에 참전하였다. 원래 에도에서 조직될 당시에는 '浪士組'(로시구미)라고 칭하였으나 이후 신센구미로 바꾸었다. 한자로는 '新撰組'라고 표기된 자료도 있으나 국장인 곤도 이사미도 '選'과 '撰'을 모두 썼다. 엄한 규율 유지를 위해 도입한 국중법도로 숙청을 하거나, '誠' 한 글자로 만든 깃발, 소매 부분에 톱니모양의 무늬를 넣은 독특한 하오리(羽織 - 일본옷 위에 입는 짧은 겉옷)복장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유명하게 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