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윤관 장군(?~1111)이 7세 때 지은 시-일명 '뽕나무'시

Bawoo 2018. 5. 19. 22:25


葉養天蟲防雪寒[엽양천충방설한]뽕잎은 누에를 길러 추위를 막게하고

 

枝爲强弓射犬戎[지위강궁사견융]가지는 굳센 활 만들어 오랑캐를 무찌르리

 

名雖草木眞國寶[명수초목진국보]이름은 비록 초목이라도 참으로 국보로다

 

莫箭莫折誡兒童[막전막절계아동]자르거나 꺽지 못하게 아이들을 훈계하리

 



 

* 파주시 분수리에 있는 윤관장군 묘역 홍살문 왼쪽에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후손들이 500년이 지난 임진왜란 이후까지 장군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방치하여 청송 심씨에게 묘자리를 뺏겼다가 장군 사후 650년이 지난 영조대(1764년 6월 영조 실록)에 와서야 영조의 명으로 겨우 묘자리를 찿고 이후, 400년간 묘지

다툼을 하다가 2008.4.15~2008.6.20까지 청송심씨 묘 19기를 이장해 간 것으로 긴 분쟁이 끝났다고 한다.

조선조 왕비를 4명이나 배출한 명문 파평 윤씨의 중시조인 윤관 장군이 사후 천여년이 지나서야 겨우 안식을 찿은 것이다.

윤관 장군에게는 웅단이란 이름의 여진족 출신 애첩이 있었는데 전장에 나가는 윤관 장군과 '싸움에서 이기면 붉은 깃발,지면 흰 깃발'을 꽃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윤관장군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전쟁에서 이기고도 흰깃발을 꽂고 돌아오는 바람에 웅단은 장군이 전사한 줄 알고 개울 위 절벽에서 떨어져 자결을 했다고 한다..지금의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330번지 윤관장군의 별장이 있던 상서대 옆 개울가라고 하는데 후손들이 낙화암이란 비석을 세워 그녀의 절의를 기려주고 있다고 한다.  

 

*출처:'한국 명문가의 문화유적'이란 책 윤관 장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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