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하나
백무산(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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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
이십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
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봐
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봐
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없는 이문 없는
세상에
하루에도 몇 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
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
가서 한 삼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은 사람들
멀고 먼 타국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일생을 보내는 일에 대해, 이십대에 들고 왔던 가방 하나를 들고 칠순 할머니가 된 두 수녀님들이 우유 사러 가듯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없는 이문 없는 세상에서 두 분이 ‘살아냈을’ 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동이 사람을 오래도록 숙연하게 만든다. 가서 한 삼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다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과 함께. <황병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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