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혁명 당시 전라감사로 동학군에 협조 , 일제 강점기엔 작위를 받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자]김학진[金鶴鎭 ]
김학진 [金鶴鎭]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천(聖天), 호는 후몽(後夢). 병자호란 때 청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예조 판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병교(金炳喬)이다. 1887년(고종 24) 이조 참의, 한성부 소윤,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1892년(고종 29) 외무아문 협판, 1893년(고종 30) 이조 참판, 1894년(고종 31) 승정원 도승지, 형조 판서와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전라도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기하자 김문현(金文鉉)의 뒤를 이어 전라 감사로 내려갔다. 1894년 4월 27일~5월 8일 관군과 동학군이 전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전주 화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김학진은 동학 농민군 대표인 전봉준(全琫準)과 전주 회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