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1457

[명 장수였으나 청에 패배, 종사한 인물]홍승주[洪承疇 ]

洪承疇 (Hong Chengchou) 1593년 ~ 1665년 명나라 말기의 장군[1], 계료총독[2], 병부 상서[3] 1. 개요복건 천주(福建 泉州府 南安縣) 사람으로, 자는 언연(彥演), 호는 형구(亨九)이다. 만력 21년(1593년)에 태어났다. 명말청초의 인물로, 명나라 말기의 장수로서 농민 반란 진압과 북방의 만주 군대와 수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송산-금주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힌 이후[4] 청나라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여생을 보낸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원숭환이 죽은 이후 조문조, 노상승, 손전정 등과 더불어 명나라의 명장으로 활약하였으나, 원숭환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많이 묻힌다. 2. 관직에 몸담다.만력 43년(1615년), 23세의 나이로 향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회시에..

[한나라- 흉노에서 19년간 억류 생활을 한 인물]소무(蘇武)

소무(蘇武) BC 140? ~ BC 60. 전한 시대의 인물. 자는 자경(子卿) 1.1. 관리 시절아버지 소건(蘇建)이 벼슬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한창 나이에 소무 형제가 모두 낭관이 되었다.[1] 그 뒤로 소무는 점차 출세하여 이원(樲園)[2]의 책임자가 되었다. 당시 한나라는 쉬지 않고 흉노족을 정벌했기 때문..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호세 리살(스페인어: José Rizal)

호세 리살 José Protasio Rizal 작가 정보 출생 1861년 6월 19일(1861-06-19)[1] 라구나 주 칼람바[1] 사망 1896년 12월 30일(1896-12-30) (35세)[2] 마닐라 바굼바얀에서 총살형에 처해짐. 직업 필리핀 혁명 관련 개혁가, 독립운동가, 의사 언어 타갈로그어 국적 필리핀 학력 산토 토마스 대학교 유니버시다드..

[사도세자 구명 상소를 올렸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당해 죽은 문신] 박치륭[朴致隆]

박치륭[朴致隆]1692년(숙종 18) ~1766년(영조 42)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승(汝升), 호는 유곡(楡谷). 할아버지는 박두익(朴斗益)이고, 아버지는 박태흥(朴泰興)이며, 어머니는 홍만겸(洪萬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6년(영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740년에 사헌부지평..

[사도세자를 보호하려다가 영조에게 미움을 사서 유배당했던 문신] 윤숙(尹塾)

윤숙 (尹塾)1734(영조 10)~1797(정조 21) 본관은 파평. 자는 여수.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으나, 다음해 사도세자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영의정 신만과 좌의정 홍봉한 등을 비판하다가 영조의 미움을 사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

[사도세자를 보호하려다가 사형당한 인물]조재호(趙載浩)

조재호 영정, 〈한국명인초상대감〉 조재호(趙載浩, 1702년 , 숙종 28~ 1762년, 영조 38)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효장세자의 비 현빈 조씨의 친오빠이며, 정조의 양 외삼촌이다. 당색은 소론으로 좌의정과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본관은 풍양으로,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아들이자 풍원부원군 조현명의 조카이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조동호의 7대 방조이다. 생애당색은 소론이나 당론이 해결된 다음에 관직에 오르겠다며 번번히 사직소를 제출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홍봉한, 홍인한 등 처족과 정후겸, 홍계희, 김한구 가문 등 노론계 외척들의 감시를 받던 사도세자는 그에게 비밀리에 도움을 청했다가, 이를 빌미로 영조에 의해 위리안치되었다가 사형당했다.[위키백과]-----------------..

[일제 강점기 밀정]김달하(金達河)

김달하 (金達河) 평북 의주 출신 일제의 고급 밀정이다. 1925년 3월30일 박용만의 귀순공작을 시도한 혐의로 다물단과 의열단에 의해 피살됐다. 김달하는 외아문(통리아문) 주사 출신으로 1906년 관서지방 출신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서우(西友)학회가 조직되자 참여했다.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서북학회 총무를 지냈는데, 안창호, 이갑, 박은식, 이동휘 등이 주도한 서북학회는 기존의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해 창설했다. 회원은 서북 사람으로 국권 회복을 원하는 2300~2500명이 참여했다.[1]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1913년 조선총독부 밀정이 돼 북경에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는 초기 중화민국 총리를 지내기도 한 북양군벌의 거두 단기서의 비서로 있으면서 또 다른 고급 밀정 정운복(..

[병자호란 때 처를 비롯 5명이 죽고 아들 세 명이 납치되는 비극을 겪은 문신]이성구[李聖求]

이성구[李聖求] 출생 1584(선조 17) 사망1644(인조 22) 국적 조선, 한국 목차펼치기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汾沙). 아버지는 〈지봉유설 芝峯類說〉을 지은 수광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었고, 1608년(광해군 즉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광해군 때 검열·감찰·예조..

[독립운동가 김익상에게 암살당할 뻔한 인물,제26대 내각총리대신 ]다나카 기이치 [田中 義一]

다나카 기이치 田中 義一 일본의 제26대 내각총리대신 임기 1927년 4월 20일 ~ 1929년 7월 2일 전임: 와카쓰키 레이지로(제25·28대)후임: 하마구치 오사치(제27대)신상정보 국적 일본 출생일 1864년 6월 22일(1864-06-22) 출생지 일본 나가토노쿠니 하기 시 사망일 1929년 9월 29일(1929-09-29) (65세) 사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