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중국 > 349

[삼국시대(촉한)-모반을 꾀하다가 처형된 인물]팽양(彭羕)

팽양(彭羕, 178년[1] ~ 214년[1])은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영년(永年)이며 익주 광한군 사람이다. 생애 유장(劉璋)과 유비(劉備)를 섬겼다. 익주의 서좌(書佐)가 되었을 때, 참언을 들은 유장은 그에게 머리를 깎고 항쇄(項鎖: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를 채우는 곤겸형(髠鉗刑)에 처해져 노역수가 된다. 훗날 서촉정벌 때 유비의 모사 방통(龐統)을 찾아갔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아 방통(龐統)과 법정(法正)의 주선으로 유비의 진영에 합류하였다. 팽양은 자신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기 때문에 유비는 그를 중용하였으며, 유장을 토벌한 후 익주의 치중종사(治中從事)로 삼았다. 하지만 팽양은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제갈량(諸葛亮)은 유비에게 "팽양은 야심이 큰 자이니, 편히 쓰실 수 없을 겁니..

[삼국시대(촉한)-부인과 왕(유선)의 관계를 의심하여 스스로 무덤을 판 인물]유염(劉琰)

劉琰(? ~ 234)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 자는 위석(威碩). 예주(豫州) 노국(魯國) 사람으로 유비가 예주에 있을 무렵에 종사로 일했으며, 성이 같고 풍류가 있으면서 담론을 잘해 유비와 친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서 고릉태수로 삼았다. 유선이 황제가 되자 도향후가 되었으며, 매번 이엄에 다음 가는 반열로 위장군, 중군사가 되었다. 이후 후장군을 역임하고 거기장군으로 승진했지만 국정에 참여하지 않고 제갈량을 따라 풍자하거나 건의할 뿐이었다. 매우 사치스런 생활을 했고 231년에 이엄을 탄핵하는 제갈량의 표문에 연명했으며, 232년에 전군사 위연과 불화한 일로 제갈량에게 질책을 당해 사죄하고 관위를 유지한 채 성도로 보내지는 처분을 받았다. 234년 정월에 유염의 처 호씨(胡氏)가 태후(목황후..

[삼국시대(촉)- 제갈량의 남방 정벌을 만류한 인물]왕련[王連]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문의(文儀). 형주 남양군 사람. 2. 정사[편집] 유장이 익주목일 때 촉군으로 들어가 재동현의 현령이 되었으며, 유비가 가맹에서 병사를 일으켜 남쪽으로 진군하자 성문을 닫고 항복하지 않았다. 유비는 의로운 마음에 감동해 무리하게 핍박하지 않았으며, 성도가 유비에게 평정되자 십방현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가 광도현으로 옮겨졌고 임지마다 공적을 세웠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왕련이 오래도록 유비를 섬겨 왔기에 논공행상을 해 주어야만 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익주에 기반이 있는 호족이어서 회유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인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외지에서 온 뜨내기이자 한때 유비와 적대했던 자의 부하였을 뿐. 그런데도 유비는 그를 높이 보아 중책을 맡겼는데 그게..

[삼국시대(촉)-청빈, 유능했으나 지나치게 엄해 신망을 잃은 인물]여예[呂乂]

여예[呂乂](? ~ 251년)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계양(季陽). 남양군 사람. 2. 정사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며, 독서와 북을 치고 거문고 타는 것을 좋아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여 염부교위를 두어 소금과 철의 이익을 따지게 했는데, 후에 교위 왕련이 청하여 전조도위로 임명되었다가 신도, 면죽의 현령에 승진했다. 이때 그의 마음이 선량하고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도왔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칭찬해 주에 있는 성읍에서 최고의 정치라고 평가했다. 파서태수로 승진했고 승상 제갈량이 해마다 출군하여 여러군에서 조발[1]했는데, 많은 이들이 서로 돕지 못하였다, 여예는 (제갈량의 명령으로) 병사 5천 명을 모아 제갈량이 있는 곳에 다달랐고, 이들을 위로하고 타일러 점검하고 제어하였으므로 도망치는 자가 없었..

[삼국시대- 환관 황호를 중용하여 촉한 멸망의 단초를 만든 고위관료]진지(陳祗)

진지(陳祗, ? ~ 258년)는 촉한의 관료로, 자는 봉종(奉宗)이며 예주 여남군 사람이다. 유선의 대에 동윤의 뒤를 이어 시중(侍中)에 올랐다가, 여예가 죽은 뒤에는 상서령 겸 진군장군이 되었다. 당시 대장군 강유보다 직책이 낮았으나, 유선에게 깊이 신임과 총애를 받아 강유보다 실권이 더 컸다. 충후(忠侯)라는 시호를 추증받았다. 환관 황호와 더불어 촉한 멸망의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생애 진지의 생애는 진수(陳壽)의 삼국지 촉서 동윤전에 기술되어 있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허정의 집에서 자랐다가 약관의 나이에 출사하여 선조랑(選曹朗)이 되었다. 연희 7년(244) 동윤이 죽고 난 뒤, 비의(費禕)는 그를 높게 평가하여 동윤의 뒤를 이어 시중의 직책에 있도록 하였다. 진지는 동윤 대신 시중이 ..

[삼국 시대- 촉, 위의 인물. 방통의 동생]방림(龐林)

龐林 생몰년 미상 삼국시대 촉한과 조위의 인물. 방통의 동생, 습씨의 남편. 촉나라에서 형주 치중종사를 지내다가 황권을 따라 221년 이릉대전에 참전해 오를 정벌하러 갔다가 촉군이 패하면서 황권과 함께 위나라에 항복했다. 위나라에서 열후에 봉해졌다가 관직이 거록태수에 이르렀다. 그의 부인 습씨는 같은 군 사람인 습정의 누이동생이었는데 조조가 형주를 점령할 때 방림은 습정과 함께 유비를 따라 가게 남쪽으로 쫓기게 되면서 부인과 10여 년 동안 헤어지게 되었다. 습씨는 오랫동안 수절하면서 어린 딸을 길렀는데 방림이 위나라에 항복하면서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며 조비가 이를 듣고 습씨에게 침상의 휘장, 의복 등을 하사해 그 의절을 칭찬했다.[나무위키] ---------------------------..

[삼국 시대-촉한, 서진의 정치가]동궐(董厥)/번건(樊建)

동궐(董厥, ? ~ ?) 삼국시대 촉한과 서진의 정치가. 자는 공습(龔襲). 의양 출신으로 제갈량이 승상으로 있을 때 승상부 영사가 되었으며, 제갈량이 그를 칭찬해 동영사는 훌륭한 선비다. 내가 매번 그와 말해보면 생각이 신중하고 조리에 맞구나. 라면서 주부로 삼았다가 제갈량이 죽은 후 승진해 상서복야에 이르렀다. 그 후 진지를 대신해 상서령이 되었다가 보국대장군이 되어 후임으로 상서령은 번건이 되었다. 261년에는 제갈첨과 함께 평상서사가 되어 제갈첨, 번건과 함께 염우로 대체할 것을 건의하지만 거절되었으며, 끝내 황호가 권세를 농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263년에 위나라에서 촉 정벌군을 일으켰을 때 황호의 농간에 속아 뒤늦게 알게 된 유선은 동궐과 장익을 함께 지원부대가 되어 양안관구로 향하..

[삼국 시대 - 후한 말~위 관료]원환(袁渙)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요경(曜卿) 원패의 사촌형, 원민의 형, 원간(袁侃)[1], 원우(袁寓)[2], 원오(袁奧)[3], 원준의 아버지. 자는 요경(曜卿). 진군 부락현 사람. 아버지 원방은 한나라에서 사도를 지냈으며, 사촌 동생으로는 원패(袁覇)[4], 원휘, 원민(袁敏)[5] 조카로 원량이 있다. 훗날 남조의 대표적인 문벌귀족 가문인 진군 원씨(陳郡袁氏)는 원환의 후손들이다. 2. 정사 어렸을 때 주위의 세도가의 자제들이 모두 법을 지키지 않아 자신들의 뜻대로 지냈는데, 원환은 청아하고 고요한 태도를 지키면서 반드시 예법에 따른 것으로 이름이 높아 군에서 그를 공조로 삼았다. 간사한 관리들이 모두 스스로 사직한 다음에 떠날 정도였으며, 후에 공부로 불려가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추..

[삼국 시대-촉, 위의 정치가]황권(黃權)

황권(黃權, ? ~ 240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 시대의 촉나라, 위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공형(公衡)이며 익주(益州) 파서군(巴西郡) 낭중현(閬中縣) 사람이다. 생애 유장 휘하 일찍이 군리가 되었고 후에 익주목 유장(劉璋)이 주부(主簿)로 발탁했다.[1] 익주별가 장송(張松)이 유장에게 좌장군으로 형주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유비(劉備)를 맞아들여 한중의 오두미도 세력(당시 천사는 장로(張魯))을 공격하라는 건의를 했다. 황권은 유장에게 간언하여 말했다.[1] “ 좌장군(유비)은 용맹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더라도, 부하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으로 접대한다면 주인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 같은 위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단지 국경..

[아버지를 살해한 군벌 쑨촨팡을 암살하여 원수를 갚은 철혈여인]스젠차오(施谷蘭)

시곡란(施谷蘭) [1905년 청나라 안휘성 동성현 ~ 1979년 8월 27일 중화인민공화국 장쑤성 쑤저우시 ] 1. 개요 봉천군벌의 일원인 장쭝창의 부관 시종빈의 딸.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인 직예군벌의 쑨촨팡을 10년 만에 암살함으로서 원수를 갚은 것으로 유명하다. 쑨촨팡을 암살한 뒤 자수하여 7년간 감옥에 수감되는 처벌을 받았으나 1년만에 사면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여성 공산당 간부로서 활동했다. 2. 생애 2.1.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소녀 스젠차오는 안휘성 동성현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동시에 두부를 판매하는 상인이었지만, 아버지와 삼촌은 군대에 입대해 장교가 되면서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시종빈은 15세에 북양군에 입대하여 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