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개청(의백(義伯), 곤재(困齋)) 1529(중종 24)∼1590(선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 나주 출신. 아버지는 봉산훈도 세웅(世雄)이며, 어머니는 나씨(羅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유년시에 보성군의 영주산사(瀛州山寺)에 들어가 10여 년간 성리학 뿐 아니라 천문·지리·의약·복서(卜筮) 등의 잡학을 강구하였다. 그 뒤 산에서 나와, 서울에서 박순(朴淳) 등과 종유하며 학문을 강구한 뒤, 만년에 전라도 무안의 엄담(淹潭)에 이주해 윤암(輪巖)에 정사를 짓고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특히 예학(禮學)과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당시 호남지방의 명유로 알려졌다. 1574년(선조 7) 전라감사 박민헌(朴民獻),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