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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리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양팔이 잘리고 끝내 죽임을 당한 독립운동가]문용기[文鏞祺]

목차 접기 내용 문용기(1878-1919) 1878(고종 15)-1919. 독립운동가. 내용 전라북도 익산 출신.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박도현(朴道賢)·장경춘(張京春) 등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3월 26일 이래 격렬히 전개되어온 만세시위운동을 이리 장날인 4월 4일에 다시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사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약속된 장날 이리 장터에는 기독교인 등 30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은 그의 지휘에 의하여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지고 대열을 지어 시가를 행진하였다. 점차 군중이 1,000여명으로 늘어나고 그 기세도 오르자 일본헌병대가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시위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거창양민학살 관련]당시 빨갱이 색출을 주도한 신원면장 박영보 관련 내용

6.25 전쟁의 한복판을 지나오던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은 피폐했다. 그리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적의 총에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적의 총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결국 아군의 총탄에 쓰러져가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빨갱이’라는 오명과 함께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중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피해자들이 포함돼 있다. 거창사건은 한 겨울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1951년 2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었다. ‘견벽청야’란 작전명에 따라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 주민을 적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모두 토벌한다는 명에 따라 이뤄졌다. 당시 군인들은 민간인들을 안전지역으로 피난시킨다는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을 인근 초등학교 건물로 모이..

[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공헌한 한국인 독립운동가]양칠성 (梁七星)

양칠성 (梁七星, 일본식 이름: 일본어: 梁川七星 야나가와 시치세이[*], 인도네시아어: Komarudin, 1919년 5월 29일 ~ 1949년 8월 10일) 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공헌한 한국인 독립운동가이다. 생애양칠성은 1919년 전라북도 전주군 삼례면 삼례리(현 완주군 삼례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평양 전..

[식민사관을 반박한 사회주의 경제학자]백남운(白南雲)

백남운(白南雲, 1894년 2월 11일 ~ 1979년 6월 12일) 일제 강점기의 경제학자, 교육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학자, 정치인이다. 연희전문학교의 경제학 교수와 조선공산당의 경제이론가였고, 이순탁과 함께 일제 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경제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해방 후 김두봉, 허정숙, 최창익 등과 연결, 남조선신민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의 남북 협상차 김구, 김규식, 장건상 등과 함께 월북한 후 내려오지 않았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문교상과 이후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생애 생애 초기 출생 1894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1912년 19살 나이에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수업료가 무료였고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팔산[八山]

도자기는 정말 매력적인 상품이다. 아시아에서 유래되었으나 지금은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재질의 그릇들이 나오고 있지만 도자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은 유럽의 명품 도자기들에 열광하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는 반대였다. 동양 도자..

[정조대에 반역 혐의로 사형당한 노론의 핵심 인물]구선복[具善復 ]

구선복[具善復 ] 1718(숙종 44)∼1786(정조 10).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초(士初).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성필(聖弼)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48년(영조 24)에는 황해도수군절도사에 취임하였으며, 2년 후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757년 포도..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인 음악가]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년 4월 5일 ~ 1916년 8월 6일) 는 1899년 이후의 일본의 국가로 인정된 기미가요와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의 음악가이다. 생애 독일 시절 프란츠 에케르트는 1852년 프로이센 슐레지엔 주 발덴부르크(Waldenburg)의 노이로데(Neurode, Nowa Ruda)에서 법원 관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