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 -조병화 가을 길 ★조병화★ 맨 처음 이 길을 낸 사람은 지금 쯤 어디에 있을까. 나 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사람은 지금 쯤 어디를 가고 있을까. 이제 내가 이 길을 가고 있음에 내가 가고 보이지 않으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 있을까.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길은 이어지며 이 가을 어서 따라오라고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9.08
임진강변 돌비석 - 박광배 임진강변 돌비석 - 박광배(1959~ ) 지겹고 지겨운 전역 열흘 전 진지투입 나가서 우연히 보았네 박힌 탄환에선 녹물이 스며 나오고 찢겨지고 부스러진 채 비스듬히 모로 선 모습 누구였을까 막다른 비석에 몸을 숨겨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벌집으로 죽어갔을 바로 그 모습으로 강가 야..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9.06
추일단장(秋日斷章) - 조지훈 추일단장(秋日斷章) 조지훈 1 갑자기 산봉우리가 치솟기에 창을 열고 고개를 든다. 깎아지른 돌벼랑이사 사철 한 모양 구름도 한 오리 없는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무어라 한나절 넋을 잃노. 2 마당 가장귀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 장독대 위에 마른 바람이 맴돌 때 부엌 바닥에 북어 한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9.04
낙화 - 이형기 낙화 이형기 ===== 낙화 - 시: 이형기, 낭송: 임예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8.29
여름 휴가 - 신미나 여름 휴가 신미나 불이 잘 안 붙네 형부는 번개탄 피우느라 눈이 맵고 오빠는 솥뚜껑 뒤집어 철수세미로 문지르고 고기 더 없냐 쌈장 어딨냐 돗자리 깔아라 상추 씻고 마늘 까고 기름장 내올 때 핏물이 살짝 밸 때 뒤집어야 안 질기지 그럼 잘하는 사람이 굽든가 언니가 소리 나게 집게를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7.27
빨간 내복 - 공광규 빨간 내복 공광규(1960~ ) 강화오일장 꽃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 왜 우리 엄마들은 “빨간 내복”을 즐겨 입..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7.27
하뿔싸 -하뿔싸 하뿔싸 오탁번1943~ ) 까치설날 아침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세배를 한다 5만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세배를 하면 5만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7.19
밥 - 양동식 밥 - 양동식(1944~ ) 할머니는 평생 밥 밖에 몰랐다 아가 밥 먹어라― 밥 먹다가 동냥치 밥 주고 설거지 끝나면 개 밥 주고 벽시계 밥 먹이고 성냥골로 귓밥 파다가 감나무에 남은 까치밥 쳐다보다가 대처로 나간 큰아들 생각한다 (밥이나 먹었는지…) 밥은 생명의 줄이다. 밥 먹기가 어려웠..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6.23
누구세요 - 김혜수 누구세요 - 김혜수 칠순 넘긴 며느리가 구순 시어머니 빤스를 갈아입힌다 다리를 절뚝이며 칠순의 어머니가 할머니와 씨름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이마에 식은땀이 다 난다 귀 어두운 건 피장파장 빌어먹을 하루종일 귀청이 터지도록 소리 질러가며 승강이다 빤스 하나 갈아입히는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6.23
그가 부르시면 - 권지숙 그가 부르시면 ― 권지숙(1949∼ ) 골목에서 아이들 옹기종기 땅따먹기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한 아이 흙 묻은 손 털며 일어난다 애써 따놓은 많은 땅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