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로, 「지스락물」 윤한로 「지스락물」 장마 끝나고 뙤약볕 쏟아지누나 똥구멍이 찢어져라 가난한 오막살이라고 피지 말란 법 있댜 돼지울 개구랑창 흰 도라지 분홍 도라지 한창이고 저녁 새때 웬 눔의 초학에 더우까지 잡숫더니 시나브로 까부라지던 성님 썩은새 추녀 끝 장근 보름 고인 지스락물 뚜욱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5
김명인, 「각별한 사람」 김명인 「각별한 사람」 그가 묻는다,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언제쯤 박음질된 안면일까, 희미하던 눈코입이 실밥처럼 매만져진다 무심코 넘겨 버린 무수한 현재들, 그 갈피에 그가 접혀 있다 해도 생생한 건 엎질러 놓은 숙맥(菽麥)이다 중심에서 기슭으로 번져가는 어느 주름에 저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5
이태수, 「먼 불빛」 이태수 「먼 불빛」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는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배달하며 바람과 먼지? 누..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5
황학주, 「만년(晩年)」 황학주 「만년(晩年)」 조용한 동네 목욕탕 같은 하늘 귀퉁이로 목발에 몸을 기댄 저녁이 온다 만년은 갸륵한 곳 눈꺼풀 처진 등빛, 깨져간다 눈꺼풀이 맞닿을 때만 보이는 분별도 있다 저녁 가장자리에서 사랑의 중력 속으로 한번 더 시인이여, 외침조차 조용하여 기쁘다 하늘 귀퉁이 맥..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3
신경림,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신경림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3
우영창, 「풍경」 우영창 「풍경」 포대기로 아이를 들쳐 멘 젊은 엄마, 버스정류장에서 발뒤꿈치를 든다 한 손에 보따리 한 손에 교통카드 든 지갑 있구나 저물녘의 바람이 차 아가는 엄마 등에 뺨을 붙이고 담배를 문 남자는 저만치 떨어져서 선다 착한 곳으로 가는 버스는 걸음도 느려 추수가 끝난 너른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3
이경교, 「겨울 금파리에 가야겠네」 이경교 「겨울 금파리에 가야겠네」 금파리에 가야겠네 금파리는 언제나 낯빛 파리하게 질려 있어 마음 헐거워져 몸이 삐걱거리는 날은 금, 금파리가 생각나 임진강 물길은 구불구불 지탱하기 힘겨운 추위에 떠밀리며, 정신만 새파랗게 응고되어 있으리 흔들리며 언 강물 위에 텅 빈 손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3
민영, 「기차를 잘못 내리고」 민영 기차를 잘못 내리고 날이 저물어 초저녁인데 사람이라곤 없는 시골 정거장, 모자에 금테 두른 역장이 나와 차표를 살펴보며 말을 걸었다. 손님이 내릴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아직도 몇 정거장 더 가야 하지요. 그런데 역장님, 왜 이렇게 힘이 들지요? 의자가 망가져서 치받는 것도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3
정현종, 「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 정현종 「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 청계산 능선을 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홀연히 눈앞이 빛 천지다! 진달래꽃 때문이다. 천지에 웃음이 가득, 이런 빛 녈반이 어디 있느냐. 이런 시야(視野)가 어디 있느냐. (모든 종교들, 이념들, 철학들 그것들이 펼쳐 보인 시야는 어떤 것인가) 이런 시..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2
정끝별, 「처서」 정끝별 「처서」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 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시_ 정끝별- 1964년 전라남도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