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화상 같은 시] 뒤에 서는 아이 - 이태진 뒤에 서는 아이 - 이태진(1972~)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4.23
혹 ― 손기섭 혹 ― 손기섭(1928∼ ) 언제부턴가 내 등에 점점 커가는 콩알만 한 혹 하나가 생겼는데 손이 닿지 않아 만질 수도 없고 거울로 비쳐봐도 잘 보이지도 않고 가끔 가려운 듯하면서 신경을 긁는다 손수 칼 잡을 때 같으면 친구 이리 와 그까짓 것 문제없어 하고 손쉽게 떼어내 줄 것 같은 것..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4.08
삼랑진 역 - 이우걸 삼랑진역 - 이우걸(1946~ ) 낙엽이 쌓여서 뜰은 숙연하다 노인 혼자 벤치에 앉아 안경알을 닦는 사이 기차는 낮달을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기차역은 우리의 인생이 사실상 ‘유랑’이며 모든 현재가 ‘정주(定住)’의 삶이 아님을 지시하는 메타포이다. 그 길에 때로 낙엽이 쌓이고 유랑..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3.17
코를 가져갔다 - 이정록 코를 가져갔다 ―이정록(1964∼) 누구나 죽지. 똥오줌 못 가리는 깊은 병에 걸리지. 어미에게 병이 오는 걸 걱정 마라. 개똥 한 번 치워본 적 없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지극정성으로 몸과 마음 조아리다보면 감기가 올 게다. 감기가 코를 가져가겠지. 냄새만 맡을 수 없다면, 넌 내 사타..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3.14
워낭 - 김솔 워낭 - 김솔(1965~) 늙은 소의 잔등 위에 막걸리 한 병 얹어놓고 괜히, 또 쓸데없이 그걸 쓰다듬는 저놈의 노을 한바탕 붉게 울먹이는 건 또 뭐람 “늙은 소”는 오랜 세월의 고된 노동을 상징한다. 늙은 소가 있으면 그것과 함께 살아온 농부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몸뚱이 하나로 서..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27
[중앙시조백일장] 2월 수상작 기록삭제 | 검색어 저장 끄기 [중앙시조백일장] 2월 수상작 이 달의 심사평 노숙의 곤곤한 내면 감각적으로 형상화 봄 채비를 하듯, 2월의 투고작이 풍성하다. 이태균의 ‘허물의 안쪽’을 장원작으로 올린다. ‘허물’은 노숙의 밤을 견디는 존재의 외피에 해당한다. 투고자는 그 외피를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26
길 - 김기림 길 ―김기림(1908∼?)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 )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26
한솥밥 - 문성해 한솥밥 -문성해 作 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 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 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냐 핀잔을 주다가 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25
속구룡사시편 - 오세영 속구룡사시편 ―오세영(1942∼ ) 한 철을 치악에서 보냈더니라. 눈 덮인 멧부리를 치어다보며 그리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빈 가지에 홀로 앉아 하늘 문 엿보는 산 까치같이, 한 철을 구룡에서 보냈더니라. 대웅전 추녀 끝을 치어다보며 미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흰 구름 서 너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19
[스크랩] 서정홍, 이장님 정든 것 끼리, 쌀밥 서정홍 시(1) 이장님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 예순이 넘도록 단 한번도 딴마 음 먹지 않고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이장님은 다 안다. 솔 숲 아래 할미꽃 피는 무덤은 누구네 무덤인지, 언덕아래 풀만자란 저 밭은 누구네 밭인지, 잔칫날 돼지 잡을 때 쓰 는 긴 칼은 누구네 집에 있는지, 해마다 .. ♣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201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