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1457

[삼국 시대 - 후한 말~위 관료]원환(袁渙)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요경(曜卿) 원패의 사촌형, 원민의 형, 원간(袁侃)[1], 원우(袁寓)[2], 원오(袁奧)[3], 원준의 아버지. 자는 요경(曜卿). 진군 부락현 사람. 아버지 원방은 한나라에서 사도를 지냈으며, 사촌 동생으로는 원패(袁覇)[4], 원휘, 원민(袁敏)[5] 조카로 원량이 있다. 훗날 남조의 대표적인 문벌귀족 가문인 진군 원씨(陳郡袁氏)는 원환의 후손들이다. 2. 정사 어렸을 때 주위의 세도가의 자제들이 모두 법을 지키지 않아 자신들의 뜻대로 지냈는데, 원환은 청아하고 고요한 태도를 지키면서 반드시 예법에 따른 것으로 이름이 높아 군에서 그를 공조로 삼았다. 간사한 관리들이 모두 스스로 사직한 다음에 떠날 정도였으며, 후에 공부로 불려가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추..

[삼국 시대-촉, 위의 정치가]황권(黃權)

황권(黃權, ? ~ 240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 시대의 촉나라, 위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공형(公衡)이며 익주(益州) 파서군(巴西郡) 낭중현(閬中縣) 사람이다. 생애 유장 휘하 일찍이 군리가 되었고 후에 익주목 유장(劉璋)이 주부(主簿)로 발탁했다.[1] 익주별가 장송(張松)이 유장에게 좌장군으로 형주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유비(劉備)를 맞아들여 한중의 오두미도 세력(당시 천사는 장로(張魯))을 공격하라는 건의를 했다. 황권은 유장에게 간언하여 말했다.[1] “ 좌장군(유비)은 용맹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더라도, 부하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으로 접대한다면 주인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 같은 위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단지 국경..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동남아 지역에서 약탈한 재화를 필리핀 지역에 감췄다고 하는 도시전설]야마시타 보물(골드)

야마시타 도모유키, 1945 지치부 야스히토 왕자 야마시타 보물(영어: Yamashita treasure, 일본어: 山下財寶 やましたざいほう[*], 타갈로그어: Kayamanan ni Yamashita) 또는 대중적인 명칭인 야마시타 골드(영어: Yamashita's gold, 타갈로그어: Ginto ni Yamashita)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에 의해 동남아시아에서 약탈된 전리품들이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패전 직전에 동굴이나, 터널 그리고 지하 단지에 은닉된 보물을 일컫는 도시전설이다. ‘야마시타’라는 이름은 ‘말라야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 중장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비록 필리핀의 모처에 은닉되어 있다는 설명이 50년동안 수 많은 보물사냥꾼들을 유혹하기는 했..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낙남 명문가…禍 피해 영남으로 내려온 세 집안, 역경 딛고 명문가로 뿌리 내려

m.yeongnam.com/view.php?key=20201211010003910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낙남 명문가…禍 피해 영남으로 내려온 세 집안, 역경 딛고 명문 경상도는 따뜻하고 살기가 좋아 옛날부터 수도에 사는 선비들은 경상도 집안으로 장가 들어 처가고을에 세거했다. 조선 초 정난(靖難)이나 사화에 연루돼 가문에 위기가 닥치자 경상도로.. m.yeongnam.com 경기도 광주가 본관인 광주이씨는 조선 초 대표적인 훈구파 집안으로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서 당대 최고의 벌족으로 꼽았다. 성종 때 극자 돌림 사촌 8명이 당상관으로 어전회의에 참석해 '8극'으로 불린다. 하지만 갑자사화 때 멸문의 화를 당한다.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간 형방승지가 일족임에 발단돼 40여 명이..

[박정희가 가장 존경했다는 인물]세지마 류조(瀬島 龍三)

세지마 류조(일본어: 瀬島 龍三, 1911년 12월 9일 ~ 2007년 9월 4일)는 일본의 군인, 기업가이다. [was a Japanese army officer and business leader].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초급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후에 이토추 상사의 회장이 되었다. 생애 초기와 태평양 전쟁 도야마현 출신으로 1932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일 전쟁에 초급장교로 참전하였다. 이후 1938년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1939년 만주의 관동군 참모로 부임하였고, 일본으로 돌아와 태평양 전쟁이 게시되자 일본 육군의 각종 작전을 입안하였다. 1945년 7월 다시 만주로 파견되었으나, 소련군의 대일참전 이후 소련군에게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서 11년간 포로생활을 하였다...

[일제 패망 후 자국 일본으로 돌아간 타국 거주 일본인의 총칭]히키아게샤

1. 개요 히키아게샤(일본어: 引揚者,ひきあげしゃ)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1945년 일본 제국의 패망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만주, 대만 등에서 거주했다가 귀국한 일본인을 이르는 표현이다. 이들 중의 일부분은 해당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이다. 한국어 독음으론 인양자라고 읽는데, 한국어에서 인양이라는 표현은 침몰한 배 등을 끌어올릴 때로 한정해서 쓰는 말이다.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자면 귀향자, 귀국자. 직설적으로 번역하자면 (몸을)빼 낸 사람 정도가 된다. 관동군이나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일본인들은 엄밀히는 히키아게샤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은 재향군인으로 분류되는데, 정작 관동군 중 상당수는 일본군이 해체되는 바람에 민간인 자격으로 귀국한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아니면 소련군..

[노래 夜來香(야래향)의 원 가수]리샹란(李香蘭:야마구치 요시코)

리샹란 李香蘭 Shirley Yamaguchi 야마구치 요시코(일본어: 山口淑子, 1920년 2월 12일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푸순 출생 ~ 2014년 9월 7일[1] 일본 도쿄에서 별세.)은 만주(현재 중국 대륙 동북부)에서 출생한 가수, 배우이다. 생애 2차 대전 전까지는 리향란(李香蘭 Lǐ Xiānglán[*], 리샹란)이란 예명으로 국민정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땅에서 살았다.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푸순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펑톈과 일본 사가현 기시마를 거쳐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만저우 지방 펑톈 성 랴오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25년 이후..

[아버지를 살해한 군벌 쑨촨팡을 암살하여 원수를 갚은 철혈여인]스젠차오(施谷蘭)

시곡란(施谷蘭) [1905년 청나라 안휘성 동성현 ~ 1979년 8월 27일 중화인민공화국 장쑤성 쑤저우시 ] 1. 개요 봉천군벌의 일원인 장쭝창의 부관 시종빈의 딸.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인 직예군벌의 쑨촨팡을 10년 만에 암살함으로서 원수를 갚은 것으로 유명하다. 쑨촨팡을 암살한 뒤 자수하여 7년간 감옥에 수감되는 처벌을 받았으나 1년만에 사면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여성 공산당 간부로서 활동했다. 2. 생애 2.1.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소녀 스젠차오는 안휘성 동성현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동시에 두부를 판매하는 상인이었지만, 아버지와 삼촌은 군대에 입대해 장교가 되면서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시종빈은 15세에 북양군에 입대하여 초장,..

[제국 일본 총기 개발자]남부 기지로(南部 麒次郎, Nanbu Kijirō)

난부 기지로(일본어: 南部 (なんぶ) 麒次郎 (きじろう) 난부 키지로우[*], 1869년 4월 2일 ~ 1949년 5월 1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총기 설계자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중장이며 훈2등 공학박사. 주로 메이지 시대 말기에서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일본 육군이 사용한 총기들을 개발한 기술장교이다. 현재도 일본 경찰관들이 제식 채용하고 있는 뉴 난부 M60 권총의 이름은 난부 기지로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위키백과] 난부 키지로[2010.03.29] 난부 키지로 (南部驥次郞) 1869년 4월 2일 생 - 1949년 5월 1일 사망 난부 키지로(남부 기지로라고도 표기한 자료도 있음, 본인은 원음에 가깝게 쓴 표기를 적용했음)는... blog.naver.com/mirejet/11008343583..

[고흐 등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에도 말기 우키요에 화가]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우타가와 구니사다가 그린 히로시게의 그림 (1858년) 우타가와 히로시게(일본어: 歌川広重, 1797년 ~ 1858년 음력 9월 6일)는 에도 시대 말기의 우키요에 화가이다. 본명은 안도 시게우에몬(安藤重右衛門)으로, 안도 히로시게(일본어: 安藤広重)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위키백과] '우키요에' 유파에 속하는 채색 목판화의 마지막 대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풍경화 구성에 대한 그의 천재성을 서양에서 맨 처음 인정해준 것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연작 판화 〈도카이도 53역참〉(1833~34)은 그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다. 1811년경 우키요에의 대가인 우타가와 도요히로 문하에 들어, 그의 수수하고 세련된 취향의 영향을 받았다. 1832년 그는 도카이도를 따라 에도에서 교토까지 여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