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1457

[존왕양이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사상가]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齊)

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齊)(1782~1863) 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齊]라고도 한다. 그의 저작들은 1868년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무너뜨리고 덴노 권력을 회복시킨 운동에 사상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토 한[藩]은 도쿠가와 가문의 한 분파로서 당시 유학과 존왕(尊王) 운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서양과의 접촉이 점차 확대되면서 유교적 전통이 위협을 받게 되자 미토 한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양의 선박들이 일본 해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19세기초 아이자와는 저술 활동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야만인들'을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서양의 군사기술을 받아들여 군비와 방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양과의 무역이 일본을 잠식하게..

[인도 마지막 총독]루이 마운트배튼

제1대 마운트배튼오브버마 백작 루이스 프랜시스 앨버트 빅터 니콜라스 마운트배튼(영어: Louis Francis Albert Victor Nicholas Mountbatten, 1st Earl Mountbatten of Burma, KG, GCB, OM, GCVO, FRS, 1900년 6월 25일~1979년 8월 27일)은 영국의 귀족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이다. 생애 초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루이스와 헤센 공녀 빅토리아의 자녀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그리스 왕자비 앨리스, 스웨덴 왕비 루이즈, 제2대 밀퍼드헤이븐 후작 조지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에든버러 공작 필립은 루이스의 조카이다. 루이스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인이 되었으며 해군 제독(최종계급 원수)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

[인도 총독을 역임한 인물]아치볼드 퍼시블 웨이벌(Archibald Percival Wavell)

완전한 군복 차림의 아치볼드 웨이벌 육군 원수 제1대 웨이벌 백작 아치볼드 퍼시블 웨이벌(Field Marshal Archibald Percival Wavell, 1st Earl Wavell, 1883년 5월 5일 – 1950년 5월 24일)은 영국 육군의 주요 고참 장교 중 1명이다. 그는 제2차 보어 전쟁, 바자르 계곡 전역,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 활약했다. 그는 중동 사령부의 사령관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이후에 이탈리아 왕국을 상대로 서부 이집트와 동부 리비아에서 1940년 12월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독일 국방군에 의해 1941년 4월 패퇴한다. 이후 그는 1941년 7월부터 1943년 6월까지 인도 사령부에서 복무했고, 이후 1947년 2월 퇴임까지..

[전국시대- 우에스기 가문의 가로]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Naoe Kanetsugu 나오에 가네쓰구 초상화 나오에 가네쓰구 直江 兼続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1560년 1619년 1월 23일 요로쿠 (아명) 히구치 가네쓰구→가네쓰구→(시게미쓰) 나오에 야마시로노카미 또는 나오에 조슈 (통칭) 達三全智居士 英貔院殿達三全智居士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 마쓰미사키 신사, 린센 사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묘신 사 종오위하, 야마시로노카미, 증 종사위 에도 막부 우에스기 가게카쓰 데와 요네자와 번 나카하라 히구치 씨 → 후지와라 나오에 씨 아버지: 히구치 가네토요 어머니: 오후지 오쿠니 사네요리 히구치 히데카네 여동생 3명 센(나오에 가게쓰나의 딸) 가게아키 오마쓰 (혼다 마사시게의 정실) 세이유 아자리 (출가) 아코 (혼다 마사시게의 후실) 양자: 혼조 나..

[인도- 급진적 독립운동가]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수바스 찬드라 보스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벵골어: সুভাষ চন্দ্র বসু, 오리야어: ସୁଭାଷ ଚନ୍ଦ୍ର ବୋଷ), 1897년 1월 23일 ~ 1945년 8월 18일)는 인도의 급진적 독립 운동가로, 인도 국민회의 총재와 자유 인도 임시 정부의 국가 주석 겸 인도 국민군 최고 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벵골인으로, 지도자라는 의미인 네타지 (नेताजी, Netaji) 라는 경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를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하였다.[위키백과] ------------------------------------------------------------------------------------..

[인도- 도쿄 전범재판에서 일본 전범을 옹호한 변호사]라다비노드 팔

벵골 주 출신 인물,1886년 출생,1967년 사망,친일파 법조인 Radhabinod Pal 1886년 1월 27일 ~ 1967년 1월 10일 1. 개요 인도 제국의 법률가. 2. 이력 1886년에 인도 벵골 주에서 태어났다. 법률가의 길을 지망하여 캘커타 대학을 졸업하고, 1920년에 법학 석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등록했다. 1924년에 캘커타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커타 대학 법학부 교수를 지내면서, 1941년에는 캘커타 고등법원의 판사로 취임했다. 1944년에는 캘커타 대학 총장에 취임하여 1946년까지 재직했다. 태평양 전쟁 중 찬드라 보세가 일본군과 협력한 사실이 인도에 알려지자 이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1946년 5월에 극동국제군사재판 인도 대표 판사로 ..

[영국령-노예생활 경험을 자서전으로 쓴 인물]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

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1750~1796 Equiano by Daniel Orme, frontispiece of his autobiography (1789) 노예로 팔려갔다가 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강경한 노예폐지론자의 입장을 표방하는 동시에 베냉에서의 생활을 흥미 있고 상세하게 묘사한 자서전 〈올로다 에퀴아노 생애의 재미 있는 이야기, (우리말 번역: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해례원 | 2013.10.3.)또는 아프리카인 구스타프 바사 The Interesting Narrative of the Life of Olaudah Equiano, or Gustavus Vassa, the African〉(1789)는 대단한 인기를 얻어, 1794년까지 영어판으로 8판에 이르렀으며 미국에..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 매장한 인물]양팽손(梁彭孫)

양팽손(梁彭孫, 1488년(성종 19년) ~ 1545년(인종 1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화가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이다. 1510년(중종 5)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다. 현량과(賢良科)에 발탁되어 정언(正言)·전랑·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하기도 하였다. 정언으로 재직할 때 이성언(李誠言)을 탄핵한 일로 인해 대신들의 의계(議啓)로써 직책이 갈렸지만, 조광조·김정(金淨) 등 신진 사류들로부터는 언론을 보호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1519년 10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김정 등을 위해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 이 일로 인..

[아이티- 혁명지도자, 초대 황제]장자크 데살린(Jean-Jacques Dessalines)

19세기에 제작된 장자크 데살린의 초상화 장자크 데살린(프랑스어: Jean-Jacques Dessalines, 1758년 9월 20일 ~ 1806년 10월 17일)은 아이티의 국민적 영웅들 중의 한 명. 프랑스로부터 나라의 자유를 찾아 그 첫 지도자가 되었다. 현재의 아이티 그랑드리비에르뒤노르(Grande-Riviere-du-Nord)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군의 장교로 복무하였고, 1791년 생도맹그(Saint-Domingue) 프랑스 식민지에서 노예들의 자유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가 주도한 자유 운동은 1793년 그곳의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투생 루베르튀르 장군 아래에서 영국·스페인의 군대들과 싸웠다. 나중에 그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아이티..

[안동 권씨의 시조]권행(權幸)

권행(權幸, 생몰년 미상)은 고려(高麗)의 공신(公申)이자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흔행(昕幸)으로 기록되어 있다.[1] 생애 930년 고려 태조(高麗 太祖 13년)에 고창군(古昌郡)에서 왕건(王建)이 후백제왕(後百濟王) 견훤(甄萱)과 전투를 벌였을 때 고을 사람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태조 왕건(太祖 王建)을 도와 전공을 세우면서 대상(大相)으로 임명되었다. 각주 ↑ 고려사 卷八十二 志 卷第三十六 ↑ 고려사 권57 지 권제11 ---------------------------------------------------------------------------- 안동 권씨의 시조로 후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인물이다. 원래 신라 왕실의 후예였으며 본명은 김행(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