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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멸망 후 일보에 정착, 대일본사 편찬에 기여한 유학자]쥬지유(朱之瑜)혹은 주순수(朱舜水)

주지유 출생 1600년 11월 17일 명나라 저장 성 위야오 사망 1682년 5월 24일 일본 에도 사인 병사 국적 명나라→일본 다른 이름 주순수 종교 유교 쥬지유(朱之瑜, 1600년 ~ 1682년)는 명나라의 문신이다. 일명 주순수(朱舜水)라고도 한다. 나중에 일본에 정착하였다. 명말청초의 과도기 속에서 한..

하카인(客家, Hak-kâ)

하카인(客家, Hak-kâ) 인구 약 3000만~4000만 거점 중화인민공화국 광둥 성 중화인민공화국 푸젠 성 중화인민공화국 장시 성 중화인민공화국 광시 성 홍콩 중화민국 타이완 언어 하카어, 현지어 종교 불교, 유교, 도교 관련민족 한족 하카 또는 객가(客家)는 한족의 여러 민계(民系,Han Chinese subgroup) 중의 하나이다. 원래 화북의 황하 유역, 중원이라 부르는 지역에 살고 있던 후한 시대 한족 ‘명문 귀족’의 자손이라 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하카어(객가어)는 일찍이 중원에서 쓰였을 것이라 생각되는 고대 북방 중국어의 일종으로, 그 때문에 숫자의 발음 등이 현재의 일본어 독음에 가깝다는 말도 있다. 서진의 영가의 난을 피해 중원에 살던 한족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하여 광둥 성, ..

[춘추전국 시대 春秋戰國時代]

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요약 ] BC 770~476년 춘추시대에는 주왕실이 약해지자 100여 개국의 제후들이 반독립적 상태로 활약하면서 균형을 위한 싸움과 회맹을 거듭하였다. BC 475~221년인 전국시대에는 제·연·진·초·한·위·조 7개 국가가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이중 진이 강성했는데 나머지 나라들이 남북으로 동맹하는 합종책으로 대항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진은 각각과 동맹하는 연횡책을 써서 합종을 방해하면서 우위를 차지하다가 BC 221년 중국을 통일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과 우경의 출현으로 농업생산력을 현저히 증대했으며 상공업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발전이 있었다. 유가 도가 등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천문·역법·수리·토목·건축·공예에서도 전례 없는 발전을 보였다. 개요 춘추전..

[청- 건륭제에게 처형당한 대신]눌친(訥親)

건륭은 눌친(訥親)이라는 인물을 파견했고, 건륭 시대의 장수들인 부이단, 악종기를 각각 내정대신, 사천총독으로 임명해 대금천 전쟁을 지원토록 했습니다. 문제가 또 생긴것은, 건륭이 파견한 이 눌친이라는 인물이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옹정 말년부터 정계에 등장한 눌친은, 건륭제 초기에 황제가 전략적으로 키우던 대신으로, 나이가 젊고 민첩하고 청렴결백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때문에 건륭도 일부러 그를 밀어주면서 장정옥, 오르타이 등의 노신들을 견제했고, 건륭 10년에는 엄청나게 그를 밀어주어 3워에는 협판대학사, 5월에는 국사관 총재와 보화전 대학사로 임명되었고, 오르타이가 사망하자 즉시 군기처 영반대신으로 임명, 장정옥보다도 서열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당사자인 눌친 스스로도 놀라 사양할 정..

[청 건륭제 시기 부패관리]뉴호록화신鈕祜祿和珅

뉴호록화신 화신의 초상화 출생 1750년 7월 1일 청나라 북경 서성 사망 1799년 2월 22일 청나라 북경 자택 (지금의 공친왕부) 직업 정치인 작위 공작, 남작, 충양백(忠襄伯) 칭호 수석군기대신, 정황기 영시위내대신, 문화전 대학사, 내무부총관, 어전대신, 통솔흠차대신, 정백기영도통 종교 불..

명나라를 망친 임금들

명(明)나라는 이어진 혼군들의 실정으로 서서히 망했던 대표적인 나라다. 혼군시대의 문을 연 정덕제(正德帝)부터 가정제(嘉靖帝)·만력제(萬歷帝)·천계제(天啓帝) 등을 거쳐 마지막 숭정제(崇禎帝)까지 명나라 역사 절반인 139년 동안 민생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끝에 망했다. 군주들은 잔혹하지 않았지만 다양하게 어리석은 방식으로 나라를 망쳤다. 이 중 으뜸으로 꼽히는 이가 만력제다. 사가들이 “명나라는 숭정제가 아니라 만력제 때 망했다”고 할 정도다. 그가 나라를 망친 방식은 ‘태업’과 ‘결정장애’였다. 그는 집권 48년 중 30여 년간 몸이 아프다며 틀어박혀 조정에 나가지 않았고, 신하들과 대면해 국사를 논하지도 않았다. 주요 쟁점들은 편지로 오갔는데 왕은 거의 결정하지 않았다. 인사난맥상은 극에 달했다..

[한무제시 재정 권력을 휘두른 인물]상홍양(桑弘羊)

상홍양(桑弘羊, 기원전 152년 ~ 기원전 80년) 전한 중기의 관료로, 하남군(河南郡) 낙양현(&#38610;陽縣) 사람이다. 무제(武帝) 때 균수법(均輸法) · 평준법(平準法) · 전매제 등을 실시하여 재정면에서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다. 생애 상홍양은 본디 장사꾼의 자식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셈에 ..

[명 말기-이자성 반군에게 패하여 전사한 장군]손전정(孫傳庭)

손전정(孫傳庭/1593~1643) 명 말기의 장군. 이자성 반란군에게 패하여 전사함 1619년 진사 합격하고 영성(永城) 지현으로 부임함. 1621년 북경에서 이부(吏部) 험봉주사(驗封主事)로 발령을 받음. 1623년 낭중(郎中)으로 근무 중 위충현(魏忠贤)의 독재에 불만을 품고 귀향함. 1635년 가을에 다시 낭중으로 임명 받음 1636년 - 1637년 농민반란군의 토벌군에 합류하여 대승을 거둠. 당시 이자성은 반란군들 중 주요인물이 아니었음. 1639년 5월에 장헌충이 봉기하자 대반란의 불길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자성도 재기하여 하남을 중심으로 전전하였다. 이 해에 손전정(孫傳庭)은 양사창(楊嗣昌)의 탄핵을 받아 숭정황제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힘. 1641년 2월 세력을 확대시킨 이자성 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