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인물, 단체 183

<임진왜란 웅치전투 관련>정담(鄭湛)/변응정(邊應井)

정담(鄭湛) ?~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김제군수 본관은 영덕. 자는 언결. 아버지는 창국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해 니탕개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592년 김제군수가 되었다.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찰사 이광(李洸)을 따라 공주까지 북상했는데, 이광이 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노비 출신 풍수가>목효지(睦孝智)

노비출신 풍수사 목효지의 생애(?-1455) 목효지(睦孝智)의 출신에 대해서는 전농시 소속의 노비로 한 눈이 먼 것만 알려졌다. 목씨는 사천을 본관으로 하는 단일 성씨로서 고려말부터 중앙정계 진출이 두드려 명문 세가를 이룬다. 특히 재신 목신우의 아들 목인해(睦仁海)같은 이는 이성계..

노비출신 예학자(禮學者),시인-촌은(村隱)유희경(劉希慶)과 기생 매창, 허균 관련 이야기

[가계] 본관은 강화.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 할아버지는 유도치(劉道致)이고, 아버지는 유업동(劉業仝)이다. 유희경(劉希慶)[1545~1636]은 천인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지은 「유희경전(柳希慶傳)」에 따르면 그를 정확히 노비라고 지칭하지는 않지..

<조선-노비출신 시인>이단전(李亶佃)

이단전(李亶佃) 1755년(영조 31)∼1790년(정조 14).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운기(耘岐), 호는 필재(疋齋), 필한(疋漢), 인재(因齋).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평소에 패랭이[平凉子]를 쓰고 다녔으므로 이패랭이[李平凉]라고 불리었다. 한미(寒微)한 가문 출신이나, 시(詩)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시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청금시(聽琴詩)」에서 ‘오동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시내 안개는 적적하게 일어나네[桐葉簫簫下 溪雲寂寂生]’ 라든가 「수성동시(水聲洞詩)」에서 ‘지는 해는 여력이 없고, 뜬 구름은 절로 아름답구나[落日無餘力 浮雲自幻容]’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항상 한 말[斗]들이 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주워 담았다고..

<조선 초기 문신, 천문학자/양성 보유자 사방지와 통정한 이씨의 아버지>이순지(李純之)

이순지(李純之) 출생 1406년 조선 사망 1465년 (60세) 조선 국적 조선(朝鮮) 별칭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靖平) 학력 1425년 생원시에 합격 1427년 친시문과에 을과 급제 직업 문신, 천문학자 활동 기간 1425년 ~ 1465년 종교 유교(성리학) 배우자 신씨 부인 부모 아버지 이맹상(李孟常) 친척 할..

[조선 전기-양성을 보유하여 문제를 일으킨 인물, 천문학자 이순지의 딸]사방지(舍方知, 謝方知)

사방지(舍方知, 謝方知, ? - ?)는 조선 초기의 인물로, 남녀한몸의 대표적인 예이다. 사건 1462년 사헌부에서, 여장을 하고 이순지(李純之)의 딸이자 김구석(金龜石)의 아내인 이씨와 간통한 사방지를 취조하였는데, 승정원에서 확인한 결과 그가 이의(二儀, 남녀한몸)인 것이 밝혀졌다. 세조는 그가 "병자"인 것을 참작하여[(《세조실록》, 28권 8년(1462년) 4월 29일) 따로 국문하지 않았지만, 이 일로 인해 파직된 이순지의 집으로 보내졌다. 1467년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자, 세조는 이렇게 말하면서 사방지를 신창현(新昌縣)으로 옮겼다. “ 이 사람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 — 《세조실록》, 42권 13년(1467년)..